모피 팔던 사장님 재벌 회장 됐다…'코스닥 1위' 성공의 비밀 [안재광의 대기만성's]

에코프로, 1998년 창업후 25년 만에 대기업으로
배터리 양극재 분야 독보적인 경쟁력 갖춰
지난해 매출 5조 넘겨…올해는 10조원 목표
▶안재광 기자
코스닥 시장 '대장주', '1등 기업'을 혹시 아시나요? 에코프로BM 이란 곳입니다. '아니, 이걸 몰라?' 하는 분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에코프로를 들어본 적도 없으실 겁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소재, 양극재를 만드는 회사죠.
에코프로BM은 원래 작년에도 1등이었는데, 올 들어 주가가 급등해 '넘사벽' 수준으로 월등한 1등이 됐어요. 2위와 격차가 엄청 커요. 여기에 코스닥 시가총액 4위가 에코프로BM의 모기업 에코프로 입니다. 두 회사 시가총액 합하면,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사 삼성물산과 엇비슷할 정돕니다.
에코프로 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분류하는 대기업 집단, 재벌의 기준인 자산총액 5조원도 넘겼습니다. 조만간 재벌로 공식 지정될 예정이에요.
또 에코프로의 창업주 이동채 회장은 재산 평가액이 1조원을 넘었죠. 이 정도면 재벌 맞습니다. 한국에서 네이버, 카카오 같은 IT, 게임 회사나 셀트리온 같은 바이오를 제외하면 정통 제조업으로 근래에 대기업 반열에 오른 곳은 에코프로가 유일합니다. 이번 주제는 배터리 신흥 재벌의 탄생, 에코프로 입니다.
에코프로는 1998년 설립된 회삽니다. 25년 됐어요. 이 회사 창업 스토리가 조금 독특해요. 창업주 이동채 회장은 배터리 전문가도 아니고, 심지어 엔지니어 출신도 아니에요. 상고 나와서 은행 다니다 15년 간 회계사를 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사업을 하게 됐는데, 배터리 소재가 아니라 생뚱맞게 모피 의류 사업이었어요. 동서의 빚 보증을 섰다가 맡게 됐다고 합니다. 근데, 모피 코트를 팔아본 적도 없고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회계사 출신이 잘 했을 리가 없죠. 1997년 외환 위기까지 닥쳐서 회사가 망합니다.
빚도 다 못갚고 재기하려고 알아보다가 시작한 게 배터리가 아니라, 환경 사업이었어요. 환경 사업 하게 된 계기도 좀 웃겨요. 새 사업 뭐 할까 고민하면서 잡지 보다가 교토의정서에 대한 내용을 읽었대요. 이거 보고 환경 사업 하기로 정했다고 해요. 교토의정서가 체결되면 지구 온난화 관련 사업이 성장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은 것이죠. 교토의정서 주요 내용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거든요. 환경 사업을 위해 설립한 것이 에코프로 입니다.
이동채 회장이 대단한 것은 추진력인데요. 기술도 없고 사업 경험도 없으니까 무작정 대전의 대덕연구단지로 가서 연구원들을 만났대요. 온실가스 뭘 해야 돈 벌수 있을까 하고. 2년 간 연구원들 술 사 먹이고, 밥 사 먹이면서 함께 고민을 했대요. 그러다 온실가스의 한 종류인 PFC를 저감하는 장치를 만들자 하는 결론에 이릅니다.
PFC란 것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한국이 이 분야 세계 1위니까. 뭔가 돈이 될 것 같다, 하고 기술 개발에 나섭니다. 그리고 실제 제품 수주를 본격 것은 2017년 이에요. 거의 20년 간 기술만 개발한 거죠.
그럼 그 전까지 뭐 먹고 살았냐. 정부 R&D 과제 수주해서 먹고 살았대요. 정부가 연구개발 과제를 주고 기업이 여기에 응모해서 뽑히면 돈을 주거든요. 배터리 소재를 하게 된 것도 이 정부 과제 때문이에요. 2004년에 과제 하나를 따냈는데, 이게 현재 배터리의 표준이 된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 사업이었어요. 근데 여기서 운명 처럼 제일모직을 만나게 됩니다.
제일모직은 당시 삼성그룹 내에서 배터리 핵심 소재인 전구체, 양극재 개발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내부적으로 이걸 접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답니다. 당시에는 전기차는 너무 먼 얘기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매각할 대상을 물색합니다. 어차피 버리는 사업이니까 헐값에 팔았다고 해요. 이동채 회장이 이 사업을 받아서 한거죠. 남들 안 하는 것 해야 돈 번다. 이런 생각을 예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했던 것 같아요.
에코프로BM의 현재 양극재 최대 고객사가 삼성SDI인데요, 이 때 삼성과 맺은 인연이 큰 성과로 이어진 것이죠. 근데 실제로 매출이 크게 발생한 것은 이로부터 10여년 뒤였고. 그 전까진 돈을 거의 못 벌었어요.
매출이 거의 없는 동안 이동채 회장은 늘 돈에 쪼들렸죠. 돈 구하러 다니는 게 일상이었대요. 담보가 없으니까, 은행 돌면서 매번 사업 설명 하고 퇴짜맞고. 간신히 대출 나오면 찔끔 나오고. 그러다 너무 힘들어서 코스닥 상장을 하자, 그럼 돈 구하러 안 다녀도 되겠지. 이런 조금은 단순한 생각에 2007년 코스닥 상장에 도전합니다.
솔직히 잘 될 줄 몰랐대요. 그냥 도전 해봤는데, 덜컥 상장 심사를 통과합니다. 운도 좋았던 게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기 직전, 증시가 굉장히 좋을 때였어요. 상장 한다면 잘 받아줬던 분위기였습니다. 일 년만 늦었어도 상장은 못 했고 테고, 그러면 지금의 에코프로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에코프로가 본격적으로 돈 번 것은 2016년 충북 오창에 공장 짓고 양극재 생산을 늘리면서 부터였어요. 2007년 상장할 때 200억원 정도 했던 매출이 이 때 1000억원을 넘겼고,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에코프로BM도 이 때 생겼어요. 원래 에코프로 안에 있던 것을 떼어내서 물적분할 한겁니다. 에코프로BM은 2021년 처음 매출 1조원을 넘겼고, 작년에는 5조원에 달했어요. 올해는, 목표가 10조원입니다. 매출이 10%, 20% 는 게 아니라 두 배, 열 배 껑충 뛰었습니다. 주가가 안 오를 수 없겠죠.
전기차 수요가 폭발해서 그렇습니다. 작년 전기차 판매가 인도량 기준 처음 1000만대를 넘겼어요. 올해는 1500만대에 육박할 전망입니다. 최근 6년 간 연 평균 49%의 성장률 보였어요.
전기차에서 가장 비싼 부품이 배터리죠. 원가의 30~40%나 차지해요. 또 배터리 소재 가운데 에코프로BM이 하는 양극재가 비중이 30% 가량 입니다. 원가 5000만원 짜리 전기차 한 대 있으면 양극재가 500만원 어치 필요한 겁니다.
배터리는 상위 6개 회사가 시장 점유율 약 80%를 차지하는데, 그 중 세 곳이 한국 회사죠.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에코프로BM은 SK온과 삼성SDI에 납품합니다.
공장을 계속 더 짓고 있는데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요. 에코프로BM은 2021년 7만8000톤이던 양극재 생산 능력을 작년 18만톤으로 두 배 늘렸고, 내년에는 10만톤 더 늘려 28만톤까지 확장할 예정입니다. 2027년에 71만톤까지 늘리겠다고 해요.
이렇게만 보면 너무 좋은 사업 같은데, 한계도 물론 있습니다. 양극재는 주로 메탈을 재료로 쓰거든요. 기본 리튬이 들어가고 여기에 니켈, 코발트, 망간 이걸 줄여서 NCM이라고 하죠. 혹은,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NCA를 섞어요. NCM은 SK온에, NCA는 삼성SDI이 주로 쓰죠.
이런 메탈은 중국, 일본 등에서 주로 사오는데 시세가 계속 바뀌죠. 원유 가격 바뀌듯요. 에코프로BM 고객사들은 메탈 시세에 마진 얼마 붙여 주는 식으로 공급계약을 맺는데요. 약 7~8% 수준입니다. 지난해 에코프로BM 매출이 5조3000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이 3800억원쯤 했으니까 이익률은 7% 가량 했습니다.
에코프로BM의 고객사 삼성SDI, SK온은 근데 끊임 없이 원가를 낮추라고 압박합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고객사인 BMW, 포드, 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부터 가격 압박을 받거든요. 지금은 양극재가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라 그렇지, 몇 년 이내에 공급이 넘쳐날 겁니다. 돈 되는 사업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시장은 어디에도 없잖아요. 그럼 마진은 더 박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동채 회장이 그래서 생각한 게, 양극재만 해선 안 되겠다. 메탈재료까지 손을 대야겠다. 이걸 업계 용어론 밸류체인 구축이라고 하죠. 고객사 사업인 배터리를 할 수는 없었고, 재료 사업에 뛰어 듭니다.
리튬, 니켈 같은 메탈을 광산에서 직접 캘 수는 없었고, 다 쓴 폐배터리를 수거해서 메탈을 뽑아내기로 해요. 계열사 중에 에코프로CNG란 회사가 있는데 이 역할을 합니다. CNG가 금속을 추출하면 리튬은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이,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은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받아서 전구체, 수산화 리튬 같은 양극재 전 단계로 제품화하고, 이걸 에코프로BM이 받아서 양극재까지 만드는 구조입니다.
이동채 회장은 수 조원 들여서 자신의 고향인 포항에 이걸 다 함께 하는 단지를 짓습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이 되고 있는데요. 에코프로는 '포항 캠퍼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캠퍼스를 앞으로 북미와 유럽에도 그대로 들고 나가려고 합니다.
요즘 미국과 유럽은 배터리 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소재까지도 자기들 나라, 혹은 자기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하도록 하고 있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와 유럽의 핵심원자재법 CRMA에 이런 내용들이 조만간 확정돼 시행될 예정입니다. 에코프로는 유럽에선 헝가리에, 북미에선 캐나다 퀘백에 2025년까지 공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요즘 배터리 산업은 희망과 우려가 공존 합니다. 희망은 배터리 분야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우려는 중국 업체들의 시장 장악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인데요. 에코프로와 캐나다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한 포드가 최근 중국 CATL과 손을 잡았다는 뉴스도 나왔죠.
하지만 저는 배터리 분야 만큼은 한국이 중국보다 잘 할 것이란 기대를 합니다. 중국 정부가 품 안에 넣고 키워온 CATL 같은 회사 보다 잡초 처럼 광야에서 경쟁력을 키워온 한국 기업 경쟁력이 더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동채 회장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기업이다"라고 했는데, 기업이 세상을 바꾸는 것도 바로 생존하기 위한 절박함 때문이 아닐까요. 대기업 된 에코프로,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지 눈여겨 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예수아·이하진 PD
촬영 박지혜·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