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살아가는 책

굿 데이터·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 살아가는 책 = 이은혜 지음.
베토벤의 말년작 피아노소나타 31번은 세련된 초기작이나 중기 걸작에 견줘 거칠다. 오프닝 주제가 투박하게 제시되고 트릴(꾸밈음) 이후 "둔탁한 반복 음형의 반주"가 나온다는 점에서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그런 원시성을 말년의 특성으로 규정한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도 비슷한 입장에서 슈트라우스의 말년 음악을 꿰뚫어 본다. 굴드에 따르면 슈트라우스의 '카프리치오' 등 후기작은 시간 순서대로 음악이 발전해가는 단순한 도식을 당당히 내던진다.

이처럼 베토벤이나 슈트라우스 같은 대가들의 말년작은 독특하다.

이전 작품에서 보이는 음의 질서 정연함은 찾아보기 어렵고, 형식적 견고함도, 연속성도 부족해 보인다. 예술적 의도일까? 아니면 노화에 따른 추락일까?
저자는 이들의 말년 작품이 예술 형식보다는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삶은 인과적인 것도, 연대기적으로 발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이 삶과 가까워질수록 형식은 자유라는 옷을 입게 된다. 출판사 글항아리 편집장인 저자가 3년 만에 선보이는 에세이집이다.

책을 읽고 쓴 저자의 소회를 담았다.

독서의 기쁨뿐 아니라 독서의 괴로움, 독서의 배신감 등 다양한 감정이 책을 가로지른다.

윌리엄 트레버와 줄리언 반스 같은 탁월한 이야기꾼의 글은 단순히 이야기만 전달하지 않는다.

그들의 글은 저자 가슴 속에 숨어 있던 상처를 할퀴고, 두려움을 끄집어내며 내밀한 꿈을 부채질한다.

마음산책. 204쪽.
▲ 굿 데이터 = 샘 길버트 지음. 김현성 옮김.
데이터 공유에 따른 개인 정보 피해가 잇따르면서 개인정보를 강화하고,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영국 케임브리지대 베넷 공공정책 연구소 연구원인 저자는 데이터 개방에 따른 피해보다는 유익이 더 크다고 말한다.

예컨대 코로나19 상황에서 전염병에 대한 루머를 걸러내고 정확하고 확실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데 빅 데이터 분석은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저자는 공개 데이터 활용이 공동선과 사회적 이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개인 정보 침해를 이유로 데이터 공유를 억제하기보다는 어떻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서출판 쉼. 400쪽.
▲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 강인덕 지음.
국가 중앙정보기관에 근무했던 요원들 사이에는 묵시적 준칙이 있다.

근무 중 인지한 비밀은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국내 첫 중앙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서 16년간 근무한 저자에게도 이는 해당한다.

하지만 그는 묵시적 준칙 가운데 일부를 파기하기로 결심한다.

중앙정보부에 대한 지나친 비난에 답하기 위해, 그리고 후배 정보분석관 양성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결심의 주인공은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이다.

책은 그의 회고록이다.

책은 두 권으로 이뤄졌다.

1권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를 아우른다.

한국 전쟁 후 월남해 중앙정보부 정보분석관으로 일한 경험을 녹였다.

2권은 중앙정보부를 떠난 후의 삶을 다뤘다.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 때의 일화부터 최근까지의 활동을 그렸다. 경인문화사. 1권: 472쪽. 2권: 40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