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탄소중립,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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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중앙 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3월 말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나오면 지자체들도 이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다만 중앙 정부와 지역 간 업무 구분과 지역별로 처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한경ESG] 이슈 브리핑 - 지자체 탄소중립 탄소중립은 중앙정부와 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2021년 9월 제정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 기본법)은 탄소중립과 관련한 지자체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탄소중립 기본법 제4조는 국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함께 언급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 추진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할 때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적 특성과 여건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21년 5월에 열린 P4G(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협의체)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지방정부 탄소중립 특별 세션에서 243개 전 지자체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광역지자체 중 서울, 광주, 충남, 제주, 강원 등은 자체적으로 탄소중립 계획을 수립했다. 다만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그린뉴딜 계획에 탄소중립 목표를 포함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전반적으로 구체적 실행 계획과 추진 체계가 미흡한 실정이다.
기초단체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필요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전략, 정책, 사업은 배출원 중심 접근으로 지자체 및 공간 단위 접근이 취약하다. 지자체 단위 접근은 인허가권을 가진 건물, 수송, 폐기물, 흡수원 부문 탄소중립 정책의 효과적 수행에 도움이 된다. 외국의 경우 국가 단위 배출원 중심 접근과 병행해 또 다른 축으로 지자체 및 공간 단위 접근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에 맞는 통계 정보를 구축하고 정책을 설계한다. 영국은 2000년대 초반 이후 배출원을 고려한 상향식과 배출 총량을 인구수 단위로 지역에 할당하는 하향식 방식을 함께 적용해 공간 기반 온실가스 인벤토리(배출원과 배출량 목록)를 작성 중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시의 경우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구축해 케임브리지시 탄소관리계획을 구축한 바 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통계 정보는 배출원 부문별로 국가 전체 및 광역지자체 단위로 발표하고 있다. 수원시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기초지자체의 온실가스 인벤토리가 구축돼 있지 않아 감축 목표 설정, 감축 전략 및 정책, 사업 설계에 한계가 있다. 지자체 온실가스 통계 정보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지자체별 정확한 로드맵을 만들 수 있고, 탄소감축 실적 경쟁도 유도할 수 있다. 또 지역 기반 배출권거래제로 배출권을 서로 거래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자체 통계 정보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구체적·세부적 대응 계획 수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역 온실가스 인벤토리 작성에 대한 국제 규약은 공간 단위에서 탄소흡수·배출(전기 사용량, 교통량, 흡수원 등) 정보를 수집해 지자체 단위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온실가스에 대한 직접·간접배출을 구분하고, 도시 내·외부를 구분해 인벤토리를 작성할 수 있다. 즉 스코프 1은 행정구역 내 직접배출된 온실가스, 스코프 2는 행정구역 내 전기 사용 등으로 간접배출된 온실가스, 스코프 3는 행정구역 외부에서의 직·간접배출된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스코프 3의 경우 행정구역 외부의 폐기물 소각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서 ‘2022 지역 온실가스 인벤토리 산정 지침’에 따라 지역 인벤토리를 산정하며 지자체 의견을 수렴 중이다. 앞으로 지역의 인벤토리 구축을 위해 각 시도 탄소중립지원센터(17곳)에서 지자체 인벤토리 작성 관련 지원 업무를 하게 될 예정이다.
3월 말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나오면 대부분의 광역 및 기초지자체가 국가계획을 반영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국토연구원도 올 상반기를 목표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자체의 건물과 수송, 정주지 내 흡수원 등을 고려한 격자 단위 탄소공간지도를 작성하고 있다. 기본계획과 탄소공간지도가 나오면 지자체 단위의 탄소감축 목표 설정 및 시나리오 작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종순 국토연구원 탄소중립국토·도시연구센터장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국가 차원의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토부에서 탄소공간지도가 만들어지면 광역과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지자체 상황을 반영한 구체적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과 이를 연계한 도시‧군기본계획이 수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배출 특성 고려한 감축 목표 세워야
지자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중앙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 간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과 함께 명확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박 센터장은 “예를 들어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 등은 중앙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기존 노후 건물 리모델링 사업은 지자체 권한을 강화하는 등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정 지자체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석탄발전소의 폐쇄,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 추진 등은 국가가 나서야 하고, 지자체는 해당 지역의 농축산이나 수송, 건물, 폐기물 단위에서 온실가스 감축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역에도 다양한 유형의 도시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바닷가에 있는 연안도시, 공업도시, 농어촌도시, 대도시 등 토지이용과 산업 형태가 제각각 다르다. 몇 개의 유형을 구분해 어촌도시의 경우 블루카본을 이용한 온실가스 흡수 방안, 농촌도시는 바이오가스 시설을 통한 에너지 전환 방안을 내놓는 등 국가 차원에서 지역 맞춤형 온실가스 감축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고재경 경기연구원 생태환경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탄소중립을 위해 지자체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제한돼 있고, 일부는 중복 혹은 상충되므로 탄소중립 대상과 범위에 따라 중앙과 지역의 역할 재배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지역마다 온실가스 배출 특성과 감축 여건에 차이가 있는 만큼 지역별 상황을 고려해 목표와 경로를 다양하게 설계해야 한다. 대부분의 지자체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가 목표를 그대로 적용해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을 내걸고 있지만, 지역마다 온실가스 배출 여건과 특성이 달라 모두 동일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예컨대 2018년 기준 서울·경기는 상업·공공 부문 배출량 비중이 높고, 충남·인천은 전기·열 생산에서, 전남·경북·울산은 산업에서 배출량 비중이 높다. 이미 탄소중립을 달성한 지역은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으로서 탄소중립을 다뤄야 하고, 온실가스 배출 증가 속도가 높은 곳은 정책과 계획, 예산 배분, 인프라 건설 단계부터 탄소중립을 고려하는 등 지역마다 각기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고 연구원은 “2018년을 기준으로 동일한 감축 목표를 적용했을 때 온실가스 배출 증가 속도가 빠른 지역은 감축 경로 기울기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가파르게 나타난다“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고 증가 속도가 빠른 경기, 충남의 경우 절대 감축량이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역 간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 차이가 큰 상황에서 효율성이 높고, 감축 규모가 큰 지역일수록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으로 보내는 경우, 수도권의 사용량은 해당 지자체 단위 배출량에서 제하는 등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자체 여건과 현실을 고려한 조직·인력·예산·역량 지원도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역 특성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지방으로 권한을 많이 위임하는 것이 중요하고 탄소중립 비용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있어야 하며, 특히 탄소중립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제고 등을 위한 재정 지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