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동결에도 "상당기간 긴축기조"…위원 5명, 3.75%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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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銀, 디스인플레 확인 위한 '숨고르기'“이번 기준금리 동결을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가, 3월부터 4%대로 낮아질 것
빨리 안내려오면 금리 더 올려야
최종금리 年 3.75%, 3명 → 5명
미 Fed, 두차례 0.25%P 올리면
한·미 금리격차 1.75%P '부담'
4월 금리인상 가능성 열어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3일 현재 연 3.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한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드리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평소 말이 빠른 편인 이 총재는 이 대목에서 시장에 정확한 메시지를 주겠다는 듯 속도를 늦춰 얘기했다.
○“물가 불확실성 크다”
이날 금리 동결은 시장에서 예견한 일이다. 시장에선 경기 둔화를 이유로 한은이 현 금리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 총재는 금리 동결의 핵심 요인으로 ‘경기 둔화’가 아니라 ‘물가 경로 점검’을 꼽았다.이 총재는 “경기 침체가 더 심화되니까,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니까, 물가를 희생하더라도 이걸 했다(금리를 동결했다)고 해석하는 건 사실과 맞지 않고 한은의 의도와도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가가 2월에는 1월보다 조금 낮은 5% 내외일 것으로 예상하는데, 3월부터는 4%대로 낮아지고 올해 말에는 3% 초반으로 내려가는 패스(경로)를 생각하고 있다”며 “물가가 그 패스대로 간다고 하면 금리를 올려서 긴축적으로 가기보다 지금 수준에서 (그동안의 금리 인상) 영향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물가가 한은 예상대로 둔화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단 금리 인상을 멈췄을 뿐 금리 인상 기조를 완전히 접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총재는 “물가 둔화가 예상되는 현 시점에선 올리는 것보다 지켜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금리 인하론 경계한 한은
금통위가 “상당기간 긴축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한 것도 물가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등에 따라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다. 또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강도가 세지고, 기간이 길어지면 원·달러 환율이 올라 물가를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영향으로 한국의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는 주요국에 비해 완만할 것이란 게 한은 예상이다.이 총재는 이번 금리 동결 결정이 시장에서 금리 인하 기대로 확대되는 데 대해서도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동안 ‘당분간=3개월’ 등 구체적인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지침)를 제시해온 이 총재는 “과거 상당기간은 6개월로 이해됐지만 이번엔 아니다”고 했다. 또 “데이터가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로 가겠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 가서 (금리 인하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며 “그 이전에 금리 인하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못박았다.
금통위 내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아진 것도 이런 맥락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금통위에선 최종 금리 수준을 두고 연 3.5%를 지지하는 쪽과 연 3.75%를 주장하는 쪽이 이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을 기준으로 할 때 3 대 3으로 팽팽하게 나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상영 금통위원으로 추정되는 한 명을 제외하고 5명의 금통위원이 연 3.75%로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기 둔화 우려 커질 듯
한은이 향후 추가 인상 가능성에 힘을 실었지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총재는 일축했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가 지난해 4분기 역성장(-0.4%)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할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한·미 간 금리 역전 폭도 더 커질 수 있다. 이날 한은의 금리 동결로 미국(상단 기준 연 4.75%)과의 금리 역전 폭은 1.25%포인트로 유지됐다. 시장 예상대로 Fed가 최소 두 차례 0.25%포인트씩 금리를 인상하면 한·미 금리 차는 역대 최대인 1.7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이 총재는 “한·미 정책금리 격차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지만 기계적으로 어느 수준으로 가면 위험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외환보유액 등 그 자체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수단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