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핵폐기물 재활용 기술 보유한 韓·美…내달 실증연구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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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안전 처리 중요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 고효율 발전소로 세계 각국에서 가치가 치솟고 있는 원자력 발전. 다만 원자력 발전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되려면 조건이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는 국내 경수로형 원전 21기에서 매년 400여t, 중수로형 원전 4기에서 350여t이 나온다.사용후핵연료엔 수만 년이 지나도 치명적 방사선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골칫거리 핵종이 1%가량 있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과 아메리슘, 퀴륨, 넵투늄 등이다. 이들을 초우라늄 원소(TRU)라고 한다.현재까지 인류가 고안한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법은 두 가지다. 지하 500m 아래 공간에 완전 밀봉해 파묻는 방법(지하 심층 처분)이 우선 거론된다. 최근 가동을 시작한 신한울 1호기를 제외하면 국내 원전 24기의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공간은 대부분 가득 찼다. 심층처분장 확보는 더 늦출 수 없는 발등의 불이 됐다.
핵폐기물 질량·부피 확 줄여
차세대 소형모듈원전 연료로 써
'파이로-SFR' 원천기술 주목
원자력硏, 美 아이다호 연구소와
내달 상용화 前단계 논의하기로
업계 "연구 시설 규모 늘리고
美에 실험 권한 확대 요청해야"
심층 처분 외 대안도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는 첨단 기술, 파이로프로세싱(이하 파이로)-SFR이다. 파이로-SFR은 사용후핵연료의 질량과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인 다음 이를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인 소듐냉각고속로(SFR) 땔감으로 다시 투입하는 기술이다. 세계에서 한국과 미국만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미국 아이다호연구소, 아르곤연구소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한국은 파이로-SFR과 지하 심층 처분 기술을 동시에 확보하는 ‘투 트랙’ 전략을 써야 한다”며 “다음달 미국 아이다호연구소 관계자들과 파이로-SFR 기술 실증 연구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증 연구는 상용화 전 단계다.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빼내는 것은 쉽다. 사용후핵연료를 잘게 쪼개 질산 수용액에 담그고 인산트리부틸을 넣으면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분리돼 나온다. 미국 프랑스 등 공식 핵 보유국 외엔 국제사회에서 금지된 ‘습식’ 처리 기술이다. 북한도 이렇게 플루토늄을 확보해 핵미사일을 개발해왔다.
파이로는 플루토늄 별도 추출이 불가능한 ‘건식’ 처리 기술이다. 질산 수용액이 아니라 염화리튬·염화칼륨 등이 섞인 용융염에 사용후핵연료를 갈아 넣고 전기를 가하면 우라늄과 TRU가 분리돼 나온다. 여기서 산소를 제거(환원)하고 정련 및 제련 등을 거치면 SFR에 투입할 수 있는 새로운 핵연료가 탄생한다. 이것이 한·미 양국이 1997년부터 공동 개발한 파이로-SFR 기술이다.
미국 국무부와 에너지부, 미 핵안보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외교부 등이 참여하는 한·미 원자력연료주기 공동연구(JFCS) 운영위원회는 2021년 7월 파이로-SFR이 ‘공학 규모’에서 기술성, 안전성 및 핵 비확산성을 충족한다고 인정했다. 아이다호연구소 등이 제출한 JFCS 보고서를 근거로 해서다. 양국이 확보한 파이로-SFR은 한 번 가동할 때 사용후핵연료 4~5㎏ 정도를 처리한다.JFCS 보고서는 7개 기술성 지표에서 파이로-SFR에 합격점을 줬다. 파이로 공정을 통한 TRU 회수, SFR 핵심 기술 검증, SFR 소각 성능 등이다. 안전성 관련 5개 지표, 핵 비확산성 관련 3개 지표 역시 마찬가지로 합격 판정을 받았다. 기술은 기초연구→실험실→공학 규모 연구→실증 연구→상용화 다섯 단계로 진화한다. JFCS 운영위 결론대로라면 진작 실증 연구 단계에 진입했어야 했다.
그러나 국내 정치가 발목을 잡았다. 과기정통부가 2021년 9월 위촉한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 적정성 검토위원회’는 JFCS 보고서에 대해 “경제성과 사회·환경적 영향이 불확실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서슬이 퍼렇던 당시 상황을 감안했다는 지적이다.
원전 부흥을 국정 주요 과제로 내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파이로-SFR 개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지만 아직 현안이 많다. 우선 실증 연구를 위한 시설 규모 확대, ‘스케일 업’이 필요하다. 파이로-SFR 설비는 운영 방식이 세탁기와 비슷하다. 작은 세탁기 수십 대를 동시에 돌리는 것보다 큰 세탁기 하나를 돌리는 것이 효율적이다.미국의 승인도 관건이다. 현재 원자력연은 실제 사용후핵연료엔 접근하지 못하고 이를 본뜬 모의 핵연료로만 실험을 하고 있다. 또 파이로-SFR 개발에 대한 미국의 장기(long-term) 동의는 사용후핵연료 전처리→환원→정련→제련→SFR 핵연료 제조로 이어지는 절차에서 고작 2단계인 환원까지로 제한돼 있다.
원자력연 관계자는 “정련 이후 접근이 보장되지 않으면 원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파이로-SFR 기술 확보가 불가능하다”며 “하루빨리 정부가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