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미국 경제, 연착륙도 경착륙도 아닌 '무착륙'?

노 랜딩
미국 실업률이 54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버지니아주의 한 매장에 붙은 구인 광고. AFP연합뉴스
연초만 해도 올해 미국 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단지 침체의 수위가 어느 정도냐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통화긴축 정책을 펴왔는데, 이렇게 되면 시중에 넘쳐나던 자금이 줄어들고 경기가 식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전혀 다른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향후 미국 경제가 침체나 소강상태에 빠지지 않고 상당 기간 호황을 유지할 것이라는 ‘노 랜딩(no landing)’ 시나리오를 지지하는 전문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美 경기침체 없다” 제3 시나리오 등장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쓰는 경기(景氣)라는 단어는 국민 경제의 전반적인 활동 수준을 말한다. 경기가 불황에 진입하는 모습을 착륙하는 비행기에 빗댄 표현으로 소프트 랜딩(soft landing)과 하드 랜딩(hard landing)을 많이 쓴다.소프트 랜딩은 비행기가 활주로에 부드럽게 내려앉는 연착륙(軟着陸)을 뜻한다. 급격한 경기 위축이나 실업 증가를 야기하지 않고 경제가 서서히 가라앉는 것이다. 반면 하드 랜딩은 비행기가 부서질 듯 거칠게 내려앉는 경착륙(硬着陸)을 가리킨다. 경제가 갑자기 얼어붙는 만큼 가계·기업·정부 모두 충격이 크다. 노 랜딩은 미국 경제가 아예 하강하지 않고 계속 비행할 것이란 의미를 담은 신조어다.

경기침체를 피해갈 수 있다는 주장이 확산한 배경은 당초 예상과 어긋난 각종 경제 통계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1월 비농업 일자리는 51만7000개 늘어 시장 전망치를 세 배 가까이 웃돌았다. 실업률은 3.4%로 54년 만의 최저치였다. 마크 지안노니 바클레이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통계를 보면 Fed의 금리 인상이 생각보다 노동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제가 향후 12개월 내 불황에 빠질 확률을 35%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 물가 상승률이 3% 선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경기 흐름이 지속될 경우 물가 상승률이 2% 선으로 떨어지는 경기 연착륙 상황은 도래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아직은 소수의견…시간 지나면 침체 올 것”

월스트리트저널은 다만 “노 랜딩 시나리오는 아직 소수설”이라고 지적했다. 경기침체나 소강을 예상하는 전문가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Fed의 정책이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시차가 발생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캐시 보스차칙 네이션와이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갈수록 수익이 줄고 있는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면서 올해 중반부터 경기 소강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6년 사례를 보면 기준금리 인상이 고용시장 위축으로 이어지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Fed가 최근 경기 상황을 감안해 긴축 행보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