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시간 가성비' 따지는 세대

이승희 작가·브랜드 마케터
북토크에서 어떤 대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일상에서 영감을 받으려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그럴 돈과 시간이 없어서요. 어떤 경험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딱 한 가지라도 먼저 정해서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 질문을 듣고 순간 당황해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결국 어물쩍거리다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질문은 집에 와서도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간과 돈 둘 다 없다고 말하는 갓 스무 살이 된 친구에게, 많은 경험을 해봐야 진짜 좋은 경험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송혜교 주연의 ‘더 글로리’를 유튜브에 올라온 몰아보기 또는 요약본 영상을 통해 본 사람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루에 콘텐츠 보는 시간의 총량이 많아서, 이 드라마는 몰아보기로 보려고.” 4시간 넘게 정주행하고 있던 내가 시간의 경중을 따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드라마에 8시간을 투자해도 될까? 나도 다른 중요한 것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몰아보기로 우선 확인한 뒤 다시 정주행을 시작했다.어쩌면 일부 사람들은 드라마를 즐기기보다는 지금 트렌드에서 ‘알아야 할 콘텐츠’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걸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못하니까. 트렌드에 뒤처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요즘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몰아보기로 먼저 시청한다. 친구의 말처럼 모든 콘텐츠를 소화하기에는 시간이 없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콘텐츠든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나에게 질문을 던진 대학생 친구도 나처럼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 경험이 되는 좋은 콘텐츠만 쏙쏙 보면서 성장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렇게 시간의 효능을 따지는 것을 ‘시간 가성비’라고 부르고 싶다. 시간이 중요한 자본이 된 현대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시간의 효능을 따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때론 가혹해 보이기도 한다. 나 역시도, 시간의 경중을 따지며 영화, 드라마, 책 모두 알아야 할 대상으로 대하고 정보를 습득하기에만 급급했다.

분명한 건 실패하지 않고 좋은 콘텐츠를 가려낼 수는 없다는 거다. 좋은 콘텐츠, 혹은 좋은 경험이라는 기준은 무수한 실패 안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콘텐츠를 알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의 감각들을 깨우는 시간으로 즐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다. 무수한 실패 속에서 좋은 경험 자산이 꽃피면 인생의 시간으로 봤을 때 이게 시간 대비 효능감이 좋은 결과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