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서 농사만 지으면 뭐가 남나"…이탈리아 농업이 가는 길 [유럽농장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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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20년, 선진 농업 현장을 가다지난 4일 이탈리아 밀라노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1시간을 운전해 도착한 시골 마을 베사테. 이곳에서 130헥타르(1.3㎢) 규모의 ‘카시나 카레마(Cascina Caremma)’ 농장을 운영하는 가브리엘레 코르티 대표(사진)는 쌀, 밀, 옥수수 등 50 종류의 작물을 재배한다. 하지만 그가 농작물을 팔아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50만유로(약 7억원)로 전체 농장 매출인 300만유로(42억원)의 6분의 1 정도뿐이다. 나머지 250만유로는 숙박을 겸한 관광상품을 통해 벌어들이고 있다.
농업강국 이탈리아
농업을 관광화한 '아그리투리즈모'를
1985년 관련법 만들어 집중 육성
농촌 부가가치 상승 이끌어
교외 농장에 年5만 명이 방문
카시나 카레마 농장처럼 농업과 관광을 결합한 형태의 산업을 이탈리아에선 ‘아그리투리즈모(Agriturismo)’라고 부른다. 이탈리아는 농업의 부가가치 상승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1985년 아그리투리즈모 운영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20개주는 이 법을 토대로 각 지역별 특색에 맞는 아그리투리즈모 규정을 별도로 제정해 운영한다. 코르티 대표는 1992년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주에서 처음으로 아그리투리즈모를 운영하며 주 공무원들과 함께 세부 규정을 만든 이탈리아 농업계의 산증인이다.그는 1988년부터 현재 농장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20명의 직원을 거느린 ‘농장주 겸 기업인’이 됐다. 코르티 대표는 “이탈리아에선 이제 농업과 관광을 결합하는 방식이 너무나 친숙할 정도로 보편화돼있다”며 “지나치게 현대적이지 않도록 지역 농촌만의 특색을 극대화해 관광화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농장 한 가운데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을 손으로 가리켰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엔 숙박이 가능한 14개의 방과 1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건물 바로 앞엔 전면이 통유리로 된 온천시설이 자리잡았다. 온천 안에선 통유리를 통해 농장에서 키우는 소와 포도농장이 보인다. 이 소와 포도는 온천욕을 마친 관광객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때 나오는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쓰인다.이런 체험을 즐기기 위해 카시나 카레마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은 연간 5000명, 레스토랑을 찾는 관광객은 연 5만명에 이른다. 온천은 연 1만2000명이 이용하고, 회사 차원의 미팅도 1년에 1000회 가량 예약이 들어온다고 한다.한국도 최근 농산물 재배(1차산업)와 특산품 제조(2차산업), 관광(3차산업)을 결합한 ‘6차산업’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아그리투리즈모와 비슷한 개념의 ‘팜스테이’ ‘체험마을’ 등이 농촌 지역에 생기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규모가 영세한 데다 상징적인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곳은 드물다.코르티 대표는 “롬바르디아주 규정에 따라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음식 재료의 최소 35%는 반드시 농장에서 직접 재배하고, 나머지 35%는 농장 밖이지만 롬바르디아주 내에서 재배된 재료, 나머지 30%는 다른 지역에서 사온다”며 “농장이 얼마나 지역이나 자연과 직접 연계돼있고 공생하는 관계인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그리투리즈모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본업인 농업에도 결코 소홀해선 안 된다”고 했다.
지역만의 개성 창출이 농업의 관광화 성공 비결
같은날 방문한 치즈 생산농장 ‘산 피에르 다미아니(San Pier Damiani)’는 숙박시설은 운영하지 않지만 치즈 생산 과정을 있는 그대로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아그리투리즈모다. 밀라노 중심가에서 120km 떨어진 파르마 지역에 있는 이 가족농장은 현재 200마리의 소를 키우며 소젖으로 연간 25t의 치즈를 생산한다. 치즈 판매 수입은 1년에 200만유로(약 28억원). 연간 7000명의 관광객의 방문으로 발생하는 관광수입은 약 10만유로(1억4000만원)다.농장주의 어머니인 아멜리아 델산테 씨는 “치즈 생산 과정이 정말 힘든 데 비해 치즈 가격은 너무 저렴해 우리 가족이 얼마나 힘들게 치즈를 생산하는지 보여주려고 2007년 처음 관광상품을 만들었다”며 “관광수입과는 별개로 관광객들 사이에 ‘치즈는 비싸도 먹을만 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된 점이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이곳 치즈농장에서 생산되는 치즈는 ‘파르미자노 레자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농장주 아내 로베르타 델산테 씨는 “이탈리아에서 오직 5개 도시에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생산된 치즈만 이 명칭을 쓸 수 있다”며 “엄격한 원산지 규정으로 인해 지역마다 특색이 다양한 치즈를 생산할 수 있는 점도 관광객이 농장을 계속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밀라노=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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