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도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목소리 내는 신생 노조

최근 5년간 성과급, 공정성 등 다양한 이유로 누적된 2030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하며 신생 노조들이 대거 출범했다. 이들은 기존 노조와 달리 정치적 목소리보다는 노동 권리에 집중한다. 이들 신생노조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강지적인 기업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지난 2월 21일 서울 동자 아트홀에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이 열렸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21일 2030세대를 주축으로 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등장했다. 기존 노조가 자신들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탄생한 신생 노조의 협의체다. 과연 이들의 등장은 노동시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까. 전문가들은 기업에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근로자의 경영 참여를 꼽는다. 기업에 한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인 노조의 역할이 커진 배경이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분쟁을 넘어 기업의 목적이나 환경·사회적가치와 관련해서도 노동조합의 힘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는 기업이 간과해서는 안 될 주요 이해관계자 중 하나다. 그동안 주주자본주의의 영향으로 근로자는 단순한 피고용자로 치부돼왔다. 그러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확산과 함께 근로자를 ‘인적자본(human capital)’으로 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위한 유급휴가, 재택근무 환경 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교섭 단위 분리 요구하는 신생 노조들최근 5년간 성과급, 공정성 등 다양한 이유로 누적된 2030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하며 신생 노조들이 대거 출범했다. 기존 노조가 전체 근로자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대표성 논란, 성과급 차별 등으로 노노갈등이 촉발하기도 했다.

공기업은 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공정성을 둘러싼 갈등이 제2·3노조 설립으로 이어졌다.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직접 고용하기로 하자 노조, 취업준비생들이 거세게 반발했던 2020년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와 유사한 갈등이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민간 위탁업체인 KT cs 콜센터 직원의 직고용을 막기 위해 제3노조인 올바른 노조를 만들었다.

LG전자, 금호타이어 등 민간기업은 기존 노조가 사무직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새로운 노조 결정으로 이어졌다. 불투명한 성과급 지급 기준과 인사 문제도 기폭제가 됐다. 기존 민간기업 노조는 현장, 생산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유준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장 겸 LG전자 사무직 노조 위원장은 “직무 간 전환이 없고 인사 과정도 다른 상황에서 사무직 근무 환경에 대한 교섭을 생산직 노조가 대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기존 노조와 차별성을 강조한다. 새로고침 노동조합협의회는 “정치적 구호가 아닌 노조 본질에 맞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송시영 새로고침 노동자협의체 부의장은 “기업 단위 노조도 사업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많다. 노동시장의 미래를 위한 연대를 함께하자는 취지에서 협의회를 출범했다”고 말했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에는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부산관광공사 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 노조, 코레일네트웍스 노조,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노조,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 노조, LG전자 사람중심 노조, LS일렉트릭 사무 노조(가나다순) 등 8개 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조합원은 6000명 정도로, 대부분 2030세대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의 올해 목표는 ‘교섭 단위 분리’다. 현행법상 한 회사 안에 여러 노조가 있을 경우 교섭권을 한 노조에만 준다. 조합원 수가 적은 신생 노조는 조합원 수로는 기존 노조를 뛰어넘기가 쉽지 앟다. 이들이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의 개선과 함께 교섭 단위 분리를 주된 요구사항으로 내건 이유다. 하지만 교섭 단위 분리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교섭 단위 분리는 이를 정당화할 만한 현격한 근로조건 차이, 고용 형태, 교섭 관행 등 분리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LG전자, 위니아대우 등 사무직 노조가 교섭권 분리에 실패하면서 신규 노조 설립에 제동이 걸리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2월 17일 서울행정법원이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의 복수 교섭권을 인정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법원이 사무직 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한 첫 사례다. 금호타이어 생산직 노조가 사무직 교섭 단위 분리에 찬성했다는 점, 근무지가 서울과 광주으로 완전히 분리됐다는 점이 인정됐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로 위상 높아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노사관계법 개정과 교섭 창구 단일화 개정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쇄신을 위한 정치 분리, 투명한 회계 공시도 주요 과제로 꼽는다. 이들은 노조에 대한 피로도를 높이는 정치적 목소리보다는 노동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송 부의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으로 노동환경이 개선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환경에 비해 노동 분야는 세부 평가 지표나 내부 모니터링이 부족하다. 앞으로 개선이 더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느슨한 연대와 수평적 협의체를 지향한다. 이들의 미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의 인재 존중 연구사무직 노조의 경우 조합원이 5000명 이상 모였지만, 내분과 위원장 퇴사 등으로 와해됐다. 김경락 대상노무법인 대표 노무사는 “현재 출범한 신생 노조와 협의체는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려면 조직적 체계와 교섭권, 집행부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2021년 기준 노조 가입률은 14.2%다. 노조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단체협약 결과를 적용받는 노동자 비율을 뜻하는 단체협약 적용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14.8%(2018년 기준)다. 노동자 10명 중 1~2명만 단체협약에 맞는 근로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노조 조직률이 10%대인 프랑스와 한국이 다른 이유는 단체협약 적용률에 있다. 단체 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임금 불평등이 낮다는 OECD의 연구 결과는 산업 내 사업자 단체가 다수의 사용자를 상대로 하는 초기업 노조와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한국처럼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모두 낮은 상태에서는 대표성 있는 노조가 기업과 소통하는 방식이 중요해진다.전문가들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신생 노조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장기적 기업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임 변호사는 “근로자들이 기업의 이해관계자로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며 “올바른 소통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갈등이나 노노갈등이 ESG 평가 하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사례는 아직 없다. 다만 갈등 자체보다는 갈등의 양상이나 기업의 사후 대처 등이 평가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ESG가 말하는 지속가능성에는 환경뿐 아니라 노동자 인권과 차별 금지도 포함돼 있다는 점을 돌이켜볼 시간이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