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팔 비틀어서라도 물가 잡자" 정부 군기에…식품업계 인상 철회

尹대통령 "물가 고강도 대응"

풀무원샘물 3월 인상 계획 접어
된장 고추장 분유 등도 인상 보류
하이트진로 "당분간 소주 인상안해"

"정부 과도하게 시장 개입" 지적도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치솟는 물가를 잡겠다며 기업들을 압박하고 나서자, 식품업체들이 잇따라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거나 보류하고 있다. 생수, 소주, 고추장, 된장 등 서민 생활과 관련된 품목들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 가격에 개입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풀무원·하이트진로 등 인상 ‘없던 일로’

2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은 다음 달 초 예정됐던 ‘풀무원샘물’과 ‘풀무원샘물 워터루틴’ 제품 인상 방안을 전격 철회했다. 풀무원은 해당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5% 인상할 예정이었다. 풀무원 관계자는 “물가 상승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을 감안해 내부 회의를 거쳐 생수 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며 “인상 계획 철회 공문을 유통업체에 보냈다”고 말했다.풀무원의 이번 결정에는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압박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고강도 대응을 지시했다. 이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당국자들이 금융·통신·정유·식품 분야에 연달아 개입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풀무원이 한국식품산업협회 회장직을 맡은 만큼 생수가격 인상 요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른 식품업체들과 주류업체들도 직·간접적으로 정부의 압박을 받고 있다. 한 식품업체는 고추장, 된장 등 장류 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오다, 인상안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서민 생활과 연관이 깊은 장류, 식용유, 분유 등의 가격 인상 계획이 최근 철회되거나 보류되고 있다”고 했다.

하이트진로는 이날 “소줏 값을 인상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주류업체 실태조사에 착수한다고 알려진 지 하루만이다. 정부는 소주값 실태조사와 더불어 소주업계 이익구조, 직원 성과급 현황 등까지 파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난방비 폭탄 화살 기업에 돌리나”

업계에선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또 다시 기업의 팔을 비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난방비 폭탄과 공공요금 줄인상에서 비롯된 여론의 불만을 애먼 기업들에게 돌리려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올해 물가 상승의 주범은 난방비를 비롯한 공공요금”이라며 “민간 기업들은 직원과 주주들의 이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원가 상승 부담을 아예 가격에 반영하지 않으면 배임이 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수시로 기업인들을 소집해 물가 안정에 협조하라고 요구하는 구태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온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물가 간담회는 암묵적인 가격규제로서 기업에 대한 압력”이라며 “정부의 요청에 협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는 암묵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식품회사의 이익을 침해하고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11로 지난해 같은 달(5.0%)보다 5.2% 올라 3개월 만에 상승폭이 확대됐다. 공공요금 인상에 전기·가스·수도 물가가 치솟으며 전체 물가 상승률은 9개월째 5% 이상을 나타냈다.

하수정/한경제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