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의무매입 철회 없인 합의 없다"…중재안 반대 나선 농민단체
입력
수정
남는 쌀 의무매입을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3월 첫 국회 본회의까지 합의 시한이 정해졌지만 ‘의무매입’ 여부가 서로가 포기할 수 없는 ‘레드라인(Red Line)’인 상황이다. 이 가운데 합의 불발 시 표결에 부쳐질 민주당 수정안을 두고 주요 농민단체가 ‘쌀값폭락방조법’이라며 반대하고 나서 더불어민주당은 당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27일 열린 본회의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표결을 3월로 미루고 “양측이 조금씩 양보할 것”을 요구했지만 중간점을 찾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 이견의 핵심이 세부적인 ‘각론’이 아니라 의무매입 여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주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한 정부는 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 의무매입이 철회되지 않는 합의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농식품부로서 가능한 선택지는 기존과 같이 정부 재량을 유지하되, 초과 생산량 3%, 쌀값 5% 이상 하락 등 매입 조건을 소폭 완화하는 안이다. 전략작물직불제 등 벼 대신 밀, 콩, 가루쌀 등 다른 작물을 심었을 때 부여하는 혜택을 강화하는 것도 검토 선상에 올라있는 것으로 전해진다.정부가 의무매입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남는 쌀 의무매입이 미치는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첫 이유는 시장의 왜곡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벼 재배면적은 2004년 100만1000헥타르에서 2022년 72만7000헥타르로 꾸준히 감소해왔다. 그럼에도 쌀 자급률은 이 기간동안 90~100%선을 유지했다. 한국인의 식습관 변화 등으로 인해 같은 기간 인당 쌀 소비량이 82kg에서 56.9kg으로 급감하며 수요가 더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미칠 효과를 분석한 결과 현행 유지시 농촌 고령화 등 여파로 벼 재배면적은 2030년 65만5000헥타르로 줄어든다. 하지만 의무매입이 도입되면 타작물 재배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 주더라도 2030년 벼 재배면적은 69만6000헥타르로 거의 줄지 않게 된다. 이로 인해 현재 연간 20만t 수준인 쌀 초과공급량을 43만2000t으로 늘고, 되려 쌀 가격이 낮은 가격에 고착화돼 피해가 농민에 간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쌀에서 시작된 의무수매가 다른 농산물로 이어지는 소위 ‘포퓰리즘’ 정책의 보편화도 정부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농경연 분석에 따르면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시 쌀 매입에 드는 예산 규모는 현재 5000억원 수준에서 2030년 1조4000억원으로 커진다. 이미 오랜 기간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등 정부 매입을 강제하는 법안들이 제기돼온 상황에서 의무매입이 광범위한 농축산물로 확대될 경우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2월 이에 대해 ”다른 품목도 쌀처럼 격리 의무화, 국가 수매제와 같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가 커질 것”이라며 “많은 재정이 쌀에만 투입된다면 다른 농축산물에 대한 지원은 감소가 불가피해진다”고 지적했다.
여야 간 합의 불발 시 3월 본회의에 올라가는 안은 수정안이다. 의무매입을 철회하지 않는 한 합의가 어렵고, 수정안을 표결에 부치더라도 정작 지지층이라 여겼던 농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된 셈이다.
애써 표결에 올라가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수정안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헌법 제53조에 규정된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재적 과반 출석과 출석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결해야 법률로 확정된다. 민주당의 의석수 169석으론 재의결 기준을 채우지 못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의무매입은 '레드라인' 양측 포기할 마음 없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은 2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에 대한 이견이 큰 만큼 여야 간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며 “소관부처에서도 법 개정의 효과와 문제점, 대안 등을 충분히 설명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무매입이 쌀 시장의 만성적 공급 과잉 구조를 심화시켜 쌀값이 되려 떨어지고 세금만 낭비할 것이라는 그간의 정부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민주당은 당초 쌀 초과 생산량 3% 이상, 전년 대비 5% 이상 쌀값 하락 시 정부가 의무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법 통과 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방침을 밝히자 수정안을 제시했다. 쌀 의무매입은 유지하되, 매입 의무화 기준을 초과생산량 3%이상, 수확기 쌀값 전년대비 5%이상에서 각각 5%, 8%로 확대한 것이 수정안의 핵심 내용이다.27일 열린 본회의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표결을 3월로 미루고 “양측이 조금씩 양보할 것”을 요구했지만 중간점을 찾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 이견의 핵심이 세부적인 ‘각론’이 아니라 의무매입 여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주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한 정부는 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 의무매입이 철회되지 않는 합의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농식품부로서 가능한 선택지는 기존과 같이 정부 재량을 유지하되, 초과 생산량 3%, 쌀값 5% 이상 하락 등 매입 조건을 소폭 완화하는 안이다. 전략작물직불제 등 벼 대신 밀, 콩, 가루쌀 등 다른 작물을 심었을 때 부여하는 혜택을 강화하는 것도 검토 선상에 올라있는 것으로 전해진다.정부가 의무매입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남는 쌀 의무매입이 미치는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첫 이유는 시장의 왜곡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벼 재배면적은 2004년 100만1000헥타르에서 2022년 72만7000헥타르로 꾸준히 감소해왔다. 그럼에도 쌀 자급률은 이 기간동안 90~100%선을 유지했다. 한국인의 식습관 변화 등으로 인해 같은 기간 인당 쌀 소비량이 82kg에서 56.9kg으로 급감하며 수요가 더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미칠 효과를 분석한 결과 현행 유지시 농촌 고령화 등 여파로 벼 재배면적은 2030년 65만5000헥타르로 줄어든다. 하지만 의무매입이 도입되면 타작물 재배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 주더라도 2030년 벼 재배면적은 69만6000헥타르로 거의 줄지 않게 된다. 이로 인해 현재 연간 20만t 수준인 쌀 초과공급량을 43만2000t으로 늘고, 되려 쌀 가격이 낮은 가격에 고착화돼 피해가 농민에 간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쌀에서 시작된 의무수매가 다른 농산물로 이어지는 소위 ‘포퓰리즘’ 정책의 보편화도 정부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농경연 분석에 따르면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시 쌀 매입에 드는 예산 규모는 현재 5000억원 수준에서 2030년 1조4000억원으로 커진다. 이미 오랜 기간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등 정부 매입을 강제하는 법안들이 제기돼온 상황에서 의무매입이 광범위한 농축산물로 확대될 경우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2월 이에 대해 ”다른 품목도 쌀처럼 격리 의무화, 국가 수매제와 같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가 커질 것”이라며 “많은 재정이 쌀에만 투입된다면 다른 농축산물에 대한 지원은 감소가 불가피해진다”고 지적했다.
◆중재안 반대 나선 농민단체...애매해진 민주당
한편 그간 양곡관리법 개정에 찬성해온 농민단체가 민주당이 새롭게 제시한 수정안에 대해선 반대에 나서 민주당 스스로도 고민스러운 상황이다.지난 27일 주요 농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쌀생산자협의회는 27일 “쌀값폭락 방조법, 양곡관리법 중재안 처리 중단하고 농민들과 재논의를 실시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민주당이 내놓은 중재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매입 의무 기준을 높인 것이 되려 정부 개입을 축소시켜 쌀 값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여야 간 합의 불발 시 3월 본회의에 올라가는 안은 수정안이다. 의무매입을 철회하지 않는 한 합의가 어렵고, 수정안을 표결에 부치더라도 정작 지지층이라 여겼던 농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된 셈이다.
애써 표결에 올라가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수정안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헌법 제53조에 규정된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재적 과반 출석과 출석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결해야 법률로 확정된다. 민주당의 의석수 169석으론 재의결 기준을 채우지 못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