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 안 키워본 청년이…" 축산업계 DX 주도한 '뼈공대인'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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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경험 집약적인 필드가 있잖아요. 축산업도 그중 하나예요. 30~40년 이상 수천 마리 동물의 생애주기를 지근거리에서 함께한 축산업자들은 살아있는 빅데이터나 다름없죠. 저희는 그런 경륜과 감각을 디지털화하는 거예요."경노겸 한국 축산데이터 대표가 생각한 '축산 디지털 전환(DX)'의 핵심이다. 올해 7년 차 스타트업인 한국축산데이터는 국내 최초 데이터 기반의 가축 헬스케어 서비스 회사다. 전국 약 70만 마리의 가축이 이 회사의 솔루션 '팜스플랜'으로 길러지고 있다. 이 솔루션은 동물의 혈액, 분변, 체액 등 내부 지표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건강을 진단한다. 가축과 농장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기능도 지원한다. 돼지가 무리에서 왕따를 당해 먹이를 빼앗기고 있는지까지 실시간 파악이 가능하다. 축산주에게는 수익성 향상을, 수의사에게는 편리한 진료 환경을 만들어준다.경 대표는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 전문가다. 대학에서 컴퓨터 전산을 전공하고 빅데이터 분석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AI 검색엔진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아무도 도전하지 않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던 축산 분야에서 가능성을 봤다. 2017년 11월 데이터 분석 전문가인 아내와 함께 공동창업에 나섰다고 한다.
'뼈공대인'인 그가 1차 산업 분야 고수들과 협력하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5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축산 데이터를 축적해온 경 대표는 "이제야 하려 했던 걸 하는 단계"라고 했다. 올해부터 해외사업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경 대표를 최근 네이버 개발자 콘퍼런스 '데뷰2023'에서 만났다.
다음은 경 대표와의 일문일답.Q: 다소 생소한 분야인데요, 창업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A: 1000마리 넘는 돼지를 농장주 한 명이 관리하다 보면 커버가 안 되거든요. 노동력은 부족한데 이걸 기술적으로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 와중에 코로나19도 있었고, 미국이나 유럽 농장은 국내에 비해 훨씬 대형화가 돼 있다 보니 비대면 농장 관리에 대한 니즈가 있더라고요. 해외 요청도 있었죠. 그래서 산업동물(가축)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들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어요.
Q: AI를 축산에 적용하게 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이번이 첫 창업은 아니고 ETRI 연구원을 하다 머신러닝 분야 창업을 한 적이 있어요. 잘 안됐지만요. 아무튼 AI 쪽을 연구하며 영화 검색 엔진, 화장품 검색 추천 엔진 등 '의사결정 지원'에 관심을 두다가 헬스케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헬스케어도 사람의 상태에 따라 어떤 관리를 해야 하는지 의사결정을 지원해주는 분야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데이터 얻기도 어렵고, 비식별화 처리, 프라이버시 문제 등이 있어서 동물에 먼저 적용하면 나중에 사람으로 연결이 되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어요.
Q: 동물이라면 보통 가까운 반려동물을 생각하기 쉽잖아요, 왜 산업동물이었나요?
A: 말씀하신 것처럼 반려동물도 되게 큰 시장이긴 한데 오히려 데이터 연구는 잘 안돼 있어요. 이제 막 시작해야 하는 단계죠. 산업동물은 아무래도 저희가 먹다 보니 연구가 많이 돼 있었습니다. 과거 수천 년간 연구돼 왔고 레퍼런스도 많았지만, 유독 디지털화가 부족한 분야였죠. 그래서 산업동물을 겨냥했어요.Q: 축산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뭐였나요?
A: 관리 문제가 컸어요. 농장을 잘 관리하면 규모가 확 커지거든요. 새로 직원을 고용해야 하는데 그분들이 자신이 쌓아온 몇십 년의 노하우만큼 잘 기르지 못하는 비효율이 생겨요. 농장주들이 365일 24시간 내내 농장에 상주하지 않으면 퀄리티 유지가 안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농장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2세나 3세 분들이랑도 갈등이 생기기도 해요. 고도의 경험 지식으로 사업을 성장시켜도 이게 전수되기 어려운 산업이더라고요. 높은 폐사율도 큰 골칫거리였죠. 동물이 병이 생기면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를 다량 투여해야 하는데 환경에도, 사람에게도 매우 좋지 않잖아요.
Q: AI로 동물관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A: 동물의 건강에 이상이 오면 가장 먼저 체내에 있는 지표들에 변화가 생겨요. 그다음에 임상학적으로 드러나게 되죠. 저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요. 혈액, 분변, 타액 등을 검사해 몸속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요. 임상학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체중 증감 등은 카메라를 달아 컴퓨터 비전 영상 분석으로 모니터링합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수의사가 진단을 내리죠.
Q: 동물의 체액을 개별적으로 분석하나요?
A: 동물마다 달라요. 돼지나 닭은 군집 사육 동물이라 모여 살아요. 수십 마리가 있는 방 단위 관리죠. 이 방에서 한 마리가 이상하면 이 방 전체가 다 문제가 있다고 수의학적으로 가정할 수가 있어요. 방 단위 샘플링으로 관리를 합니다. 소는 개체 관리 동물이에요. 한 번에 한 마리씩 태어나잖아요. 그래서 소는 정부가 주는 '이어 태그'도 있어요. 약 30개월 동안 소가 길러지는데 그동안 계속해서 성장 곡선을 추적하며 관리합니다.Q: 축산 DX는 스타트업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A: 아까 질문하신 것처럼 접근성 때문이에요. 옆집에 있는 반려동물한테 한번 서비스해 보고 좋으면 입소문을 타서 성공하는 방식이 수월하잖아요. 이 분야는 경험 집약적인 분야라 새로운 걸 도입하는 게 쉽지 않아요. 10년 동안 이렇게 해왔는데 새로운 걸 도입해서 수익이 악화하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우려를 감내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시도한 분들이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다 보니 우리가 하면 글로벌 임팩트는 확실할 거라 생각했어요.
Q: 축산인들에게 낯설었을 것 같아요. 이분들을 어떻게 설득하셨는지요.
A: 기술의 편의성보다는 비용 효익 관점으로 소통해요. 우리 솔루션을 도입하면 항생제, 의료 비용, 폐사율 등을 얼마만큼 줄여서 최종적으로 한 마리당 생산비를 어느 정도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해야 효과적이죠. 지금은 많은 케이스가 생겨서 괜찮은데 초기에는 가설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 솔루션을 시장에 검증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Q: 처음 한 농장을 뚫기가 힘들었겠네요.
A: 맞아요. 여기는 무료 서비스라는 개념이 없거든요. 무료로 썼는데 문제 생기면 안 되잖아요. 그런 분위기였는데도 그 와중에 시범적으로 농장을 오픈하는 분 중에 새로운 걸 써보겠다는 분이 계셨어요. '밑져야 본전이지'하는 생각으로 써보겠다는 분도 계셨죠. 감사하게도 이런 소수의 시도에 대한 결과가 잘 나왔고요. 이쪽 산업이 일론 머스크가 만들었다고 해도 안 써요.(웃음) 오히려 옆집에 내가 존경하는 농장주 형님이 쓰셨는데 효과를 봤다고 하면 설득력이 높아지죠. 일종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구조예요. 좋은 레퍼런스를 만드는 게 사업 확장에 가장 큰 도움이 됐어요. 이제는 고수분들도 다양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필요해서 저희가 침투하고 있습니다.
Q: 수의사분들과 협력하게 된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A: 반려동물이나 사람은 와서 진료받는데 산업동물은 방문 진료를 해야 해요. 농장에 가야 하니까 물리적으로 고되더라고요. 그리고 과거에 이 농장에서 뭘 먹였고 어떻게 건강 상태가 변했고 지금 어떤 게 문제인지에 대한 데이터 없이 진단을 해왔어요. 원래 진료 기록 가지고 계속 트래킹해야 하잖아요. 이런 물리적인 불편함을 해결해주고, 진료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드리면서 협업하게 됐어요. 우리 회사에도 수의사 분이 계시기도 해요.Q: 팜스플랜 하나에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들어가 있어요.
A: 혈액 검사 건강검진 제도부터 자리를 잡았어요. AI에서는 기준이 되는 지표를 가지고, 관련 데이터를 붙여야 하거든요. 저희는 몸속 안에 있는 지표가 가장 정확하다고 봐서. 혈액 등 바이오 쪽 데이터를 수집하고 컴퓨터 비전으로 외적인 걸 분석했어요. 그다음에 이 데이터를 모아 의사결정을 만들어내는 자연어 처리 기술로 확장해 나갔죠.
Q: 기억에 남는 시행착오나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A: 처음에는 농장의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화해서 앱이나 웹으로 만들면 게임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문제가 있었죠. 농장의 데이터가 축적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에요. 농장주 분들은 머리로 외우시거나 종이로 기록해도 보관이 잘 안돼 있어요. 수의사들의 진료 기록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서 어떠한 효익을 만들어내고, 어느 정도 자동화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시행착오를 지난 5년간 겪어왔어요. 이제야 원래 하고 싶었던 거를 시작하는 단계예요. 데이터들이 어느 정도 들어오기 때문에 (그 데이터를 가지고) 농장을 무인화하는 단계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Q: 궁극적으로 하고 싶으신 게 농장 무인화인가요.
A: 그건 일부분이고요. 데이터 플랫폼 회사로 성장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최근 보면 동물 약품 회사들도 저희한테 오셔서 이 약품이 이 동물에게 면역 증강 효과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사료도 탄소 저감 인증을 받고 싶다든지 말해요. 데이터를 취급하다 보니까 이런 데이터 기반의 지표가 필요한 분들이 협업하자는 요청이 많아요. 저희가 자체적으로 데이터센터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하고요.Q: 대표님도 그렇고, 회사 이름도 되게 정직하신 것 같아요. 스타트업보다는 연구기관이나 NGO 같기도 하고요.
A: 저도 좀 감성적이거나 '힙한' 이름을 짓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완전 아웃사이더였고 필드에서 안 통하고 하여튼 뭘 해도 안 됐어요. 제가 하는 일이 알려지는 데 오래 걸리니까 회사 이름만 들어도 '저기는 뭘 하려고 하겠네'라는 걸 좀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보수적인 느낌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지은 거고요. 지금은 이 산업과 우리 고객의 특성에 최적화된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아웃사이더였다는 건 주류 창업과 동떨어진 분야였다는 건가요.
A: 저는 축산인이 아니잖아요. 수의사도 아니고…. 1차 산업 종사자분들 입장에서 저는 아웃사이더거든요. 그런데 1차 산업 종사자들이 워낙 경험이 많으시니까 제가 뭘 하더라도 아웃사이더 타이틀이 있고, 지금도 여전히 아웃사이더예요.(웃음)
Q: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A: 국내 시장점유율을 두 배 이상 늘리는 것입니다. 저희가 95% 이상의 매출이 국내에서 나고 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전체 매출의 20% 이상 해외에서 매출이 나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코로나가 좀 풀리면서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거든요. 전체 매출은 저희가 매년 한 3배씩 성장해 온 것 같아요. 올해도 매출은 한 400~500억원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Q: AI 쪽에 오래 몸담으셨는데 요즘 AI가 주목받아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A: 네. 챗GPT가 축산이나 바이오 쪽은 잘 모르더라고요. 여전히 유니크한 데이터를 가진 회사들이 아직 AI로 할 만한 게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제너럴한 인간과의 대화라든지 철학적인 답변, 코딩 이런 거는 쉽게 따라 잡히겠는데 '버티컬한' 영역은 충분히 가능성이 아직 있겠다 생각합니다.Q: 요즘 AI, 헬스케어 분야 창업자가 되게 많잖아요.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앤드류 응이라는 제가 존경하는 AI 교수님이 계시는데요. 그분이 한 강의에서 "99%의 AI 기업이 모델 중심이고, 1%만 데이터 중심 AI를 하는데 그 1%만 상용화에 성공하고 사업화가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모델 성능보다 적절한 데이터와 시장의 니즈를 반영하는 AI 솔루션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연구자였을 때는 모델 성능에 많이 집착했거든요. 지금은 시장에 잘 침투할 수 있는 좋은 데이터랑 좋은 솔루션이 있을까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해요. 특히 헬스케어 쪽은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보니 좀 더 데이터 중심 AI 모델이 중요할 것 같고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