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상무장관 "반도체 지원 받으려면 美에 기여를…백지수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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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이익 공유해라"“반도체지원법은 근본적으로 국가 안보를 위한 구상이다. 어떤 기업에도 백지수표를 주지 않겠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美, 까다로운 '보조금 요건' 제시
반도체 보조금 받는 조건으로
초과이익 美정부와 공유 요구
어린이집 설치·인력 육성도 압박
ASML 등 글로벌기업 집단 반발
삼성·하이닉스 "요건 분석 후
보조금 신청 여부 결정할 것"
미국 상무부가 28일 반도체지원법 보조금 지원 절차 등을 공개했다. 예상대로 까다로운 이행 조건이 걸렸다.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이상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은 일정 금액 이상의 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하고, 미국 내 반도체 전문인력 육성에 힘써야 한다. 반도체업계에선 “미국 정부가 조(兆) 단위 보조금을 내주는 만큼 한국 기업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초과 이익은 반도체산업에 재투자
미국 상무부는 이날 ‘반도체지원법 첫 보조금 기회 론칭’이라는 자료를 통해 신청 절차와 이행 요건 등을 공개했다. 상무부는 첫머리에 “정부 보조금 지급은 민간 기업의 투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촉진’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삼성전자, 인텔, TSMC 등 반도체 기업의 추가 투자를 요구하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1억5000만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은 ‘이행요건’도 준수해야 한다. 이행요건 가이드라인 상단에 “미국 납세자의 세금을 보호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보조금 재원이 미국 국민의 세금인 만큼 과도한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미 상무부는 보조금을 신청한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일정 비율의 이익을 정부와 공유하도록 강제할 방침이다. 초과이익의 사용처에 대해선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쓸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내 반도체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최첨단 연구개발(R&D) 단지를 조성하는 데 반도체 기업의 초과이익이 쓰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초과이익 공유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3월에 공개한다.
초과이익 공유 조항이 구체적으로 확정되면 대상 기업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 첨단 반도체 투자를 금지한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지키는 것은 물론 미 상무부와 개별적으로 협약을 맺어야 한다.
상무부는 또 기업 주가를 올리거나 임직원 이익을 챙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자사주 매입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한 기업을 우대하기로 했다. 반도체지원법은 기업이 보조금을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 지급에 직접적으로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기한은 5년으로 전망된다.러몬도 장관은 이에 “자사주 매입 규제 요건을 도입함으로써 기업은 정말 필요한 기금만 신청하게 되고 혈세가 주주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프로젝트 실현 용도 외에는 단 1달러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내 반도체 인력도 육성해야
이와 함께 상무부는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보육 지원 계획’을 제출하도록 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공장 및 건설현장 인근에 사내 어린이집을 설치하거나 지역 보육사업자에게 더 많은 어린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 직원에게 직접 보조금을 주는 내용 등이 포함된다.미국 내 반도체 전문인력 육성 정책도 내놔야 한다. 상무부는 보조금 수령 기업들에 “공장을 짓는 지역의 고등학교, 커뮤니티컬리지(2년제 지방대학), 대학 등과 ‘인력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 기업 유치를 일자리 창출로 연결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전략으로 평가된다.중국 반도체산업을 겨냥하는 내용의 이행 요건도 공개했다. 상무부는 “보조금 수령 기업은 국가안보 우려의 원천이 되는 특정 국가에서 10년간 제조 능력을 확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특정 국가에 기반을 둔 회사와 파트너 관계도 맺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도체업계에선 특정 국가가 중국을 뜻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세부 내용은 역시 3월 초과이익 공유 방안 등과 함께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심 깊어진 반도체 기업들
까다로운 보조금 지원 조건이 붙으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이날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이) 장비를 구할 수 없다면 직접 개발할 것”이라며 ‘10년간 중국 내 생산설비 확장 금지’ 조건의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냈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17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미 정부의 보조금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첨단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 건설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 이행 요건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신청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오현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