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 빚 갚다 高금리에 희망 접어…"30년 일군 공장 닫습니다"

기업 '파산' 신청 갈수록 늘어
연초부터 '회생' 추월
지난 1월 파산 신청 기업 수가 회생 신청 기업 수를 넘어서는 등 올 들어 산업계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줄도산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인천 남동공단의 한 폐쇄 기업 정문 앞에서 인근 주민이 공장 내부를 살피고 있다. 인천=이솔 기자
울산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 A사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으로 공인받은 곳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를 기대하며 최근 2년간 사업을 확장한 게 화근이 됐다. 매출은 늘었지만 거래업체가 도산하면서 2억여원이었던 매출채권 규모가 7억여원으로 급증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고정비를 대출로 충당했지만 금리까지 치솟으면서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회사는 올해 1월 파산 신청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시기 무섭게 ‘도미노 파산’ 공포가 산업계를 덮칠 기세다.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에 경기 침체까지 4중고의 출구가 보이지 않자 ‘마지막 선택’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를 뒷받침해오던 탄탄한 중소기업들마저 회생이 아니라 파산을 선택하는 등 올해 건설, 제조 등 산업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수원 지역 파산 급증

무엇보다 수도권 기업들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1일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년 대비 파산이 늘어난 곳은 서울, 수원, 부산, 광주, 창원 등이다. 이 중 서울과 수원 등에서 파산 신청 기업이 크게 늘었다. 서울 지역의 2021년 법인 파산 신청은 393건이었는데 2022년 433건으로 약 10.2% 증가했다. 수원 역시 같은 기간 157건에서 186건으로 파산 신청 건수가 약 18.4% 늘어났다. 수도권 지역 파산 신청은 지난 1월 서울 43건, 수원 22건 등으로 올 들어 더욱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대규법률사무소의 전대규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수도권에는 서비스업, 도소매업, 소프트웨어 제공업 등의 비율이 높다”며 “청산할 자산이 적어 비교적 쉽게 파산을 선택하는 기업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창원 등 주요 산업단지가 있는 영남 지역도 증가세가 가파르다. 올해 1월 기준 창원 지역의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5건. 지난해 법인 파산 신청(25건)의 20%에 달하는 기업이 한 달 새 파산 신청을 했다.

○경기 악화 일로에 건설·제조업 ‘휘청’

상황은 갈수록 악화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특히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등으로 상처가 깊어진 건설업계의 불안감이 크다. 종합건설업체 줄도산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작년 9월 시공능력평가 순위 202위인 충남 지역 건설사 우석건설이 부도 처리됐다. 이어 시공능력평가 388위의 경남 지역 업체인 동원건설산업 역시 지난해 말 22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파산에 이르렀다.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종합건설업체 19곳이 폐업했고, 올 들어서도 4개 업체가 폐업을 신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일으킨 건설사들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고 했다.제조업 역시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6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공장을 옮긴 ‘리쇼어링’ 업체들이 특히 문제다. 경기 김포의 한 유압실린더 업체가 대표적이다. 초기에는 연이율 1~2%의 사업자금을 빌려 썼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금리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연 5%까지 치솟자 영업이익만으로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최근 해외 발주가 늘어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조선기자재업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 등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전환하며 과거에 경쟁력이 있었던 벌크선 등의 수주는 중국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철강 등의 원재료를 들여와 가공하는 중소 업체들은 이미 생산설비를 하나씩 처분하는 등 ‘버티기’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오현아/민경진/최한종/창원=김해연/부산=민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