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군축회의서 中 핵증강 견제론 고개…"생산중단 선언해야"

美 이어 EU 군축대표도 중국 핵전력 거론…비축 전력 투명성 등 문제 삼아
세계 65개국 대표들이 모여 군축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 군축회의(Conference on Disarmament)에서 중국의 핵전력 증강 가능성을 거론하며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핵 위협 발언이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이 여전히 주요 의제로 다뤄졌지만 중국이 은연중에 핵전력을 늘리고 있다고 보고 이를 공론화하려는 국가들이 속속 나오는 상황이다.

28일(현지시간) 유엔 군축회의 고위급 회기 이틀째 회의가 열린 유엔 제네바 사무소 회의장에서 마욜린 판 딜런 유럽연합(EU) 군축·비확산 특별대표는 "중국이 군비통제를 위한 협정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핵무기를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축적한 상황에서 이를 자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핵무기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즉각 취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EU는 중국이 핵무기에 쓰는 핵분열 물질 생산에 모라토리엄(중단)을 선언하고 이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판 딜런 특별대표의 발언은 작년 말 중국의 핵전력 증강 전망을 다룬 미 국방부의 '2022년 중국 군사·안보 보고서' 등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작전 가능한 핵탄두가 400개를 넘을 것이며 계속 핵 확장에 나서면 2035년까지 1천500개의 핵탄두를 배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당시 중국 정부는 미국이 억측에 근거해 중국 위협론을 과장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EU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미국 측 대표 역시 이번 군축회의에서 중국의 핵무기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보니 젠킨스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전날 군축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실험 준비 및 미사일 발사, 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더불어 중국의 '투명하지 않은' 핵무기 구축을 안보 위기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 정부를 대표해 화상 발언을 한 박용민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도 이날 회의에서 "글로벌 안보를 강화하려면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핵보유국으로서 합당한 책임을 지고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조정관이 "5개 핵보유국은 핵 비축을 포함한 투명성을 증진해야 한다"라고 언급한 대목은 사실상 핵전력 증강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중국을 가리킨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처럼 베일에 가려진 중국의 핵무기 비축 규모를 투명하게 밝히고 군축 흐름에 동참하라는 주문이 잇따른 것은 중국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상황을 새 변수로 고려해 군축 논의 틀을 짜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과거 미국과 옛 소련 간 힘의 균형 속에서 양국 주도로 군비 감축 논의를 하던 당시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다자회의 틀 속에서 실효성 있는 군축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비춰 중국이 핵전력을 증강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수단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유일한 군축 관련 다자회의 틀인 유엔 군축회의는 1996년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채택 이후 기존 핵보유국과 비동맹국 간에 핵군축에 대한 이견이 심화하면서 새로운 조약이 채택되지 못했고, 실무 협상 역시 진척을 보지 못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