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만원에 사와서 200만원 받고 판다"…日 찍고 오는 '퀵턴족'

면세점 등서 48만원짜리 사오면 한국선 '200만원'
서울의 한 마트 내 위스키 등 주류 판매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연합뉴스
프리랜서 박모 씨(35)는 지난해 말과 올 초 두 차례 일본 후쿠오카를 다녀왔다.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한 게 아니다. 일본 현지에서 판매하는 수입 위스키를 구입하기 위해서인데, 일본에 머무는 시간은 한 나절 정도다. 그는 “주로 오전 비행기를 타고 가 공항 면세점과 시내 주류 전문점 등 5~6곳 들른 뒤 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다”고 귀띔했다.

3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이처럼 위스키 구입을 위해 당일치기로 일본을 다녀오는 이른바 ‘위스키 퀵턴족’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수입 주류 쇼핑.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공항 면세점에서 위스키를 살 수 있는 제주공항을 들르는 ‘찍턴족’이 많았지만 이제는 일본 등 가까운 외국을 다녀오는 이들이 늘었다. 일본 위스키가 인기를 끌면서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시세 차익을 노리고 일본 위스키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수입 주류 수요가 늘면서 제주공항 면세점 위스키 일부 제품이 동이 난 영향도 있다.
인천공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승객들. 사진=뉴스1
지난해 말 ‘야마자키 18년산’을 구하기 위해 도쿄 나리타공항 퀵턴을 했다는 양모 씨(29)는 퀵턴을 하는 이유에 대해 “항공권 값을 빼도 수십만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씨가 구입한 야마자키 18년산은 국내에서 웃돈을 많이 얹어줘도 구매하기 힘든 ‘희귀템’이다. 일본공항 면세점에서 5만엔(약 48만원)에 팔리는데 국내 주류상에서는 최소 80만원에서 190만~200만원까지도 부른다. 일본 현지 면세점과 비교하면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150만원씩 차이가 나는 것이다. 양 씨는 “20만~30만원짜리 왕복 항공권을 감안해도 남는 장사”라면서도 “최근엔 한국 퀵턴족이 몰려 일본 내에서도 제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밖에 일본 시내 주류샵에서 3만엔(약 29만원)에 판매되는 ‘탈리스커 25년’은 국내 온라인 주류 쇼핑몰에서 약 90만원까지 값이 매겨진다. 현지에서 9000엔(약 8만7000원) 정도에 팔리는 ‘아드벡 코리브라칸’을 국내에서 사먹으려면 20만원 정도는 줘야 하고, ‘히비키 21년’은 빈 병까지 국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10만원 훌쩍 넘는 호가를 부르기도 한다.
서울의 한 마트 내 위스키 등 주류 판매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일본과 국내 간 가격 차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세(酒稅)’ 때문이다. 일본을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은 종량세를 적용하고 있다. 1L 용량의 40도짜리 위스키 과세표준이 1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일본에서는 4000원 정도 주세가 붙는다. 위스키 가격이 20만원이라도 용량·도수가 같으면 주세도 같다. 반면 국내에서 위스키, 소주 등 증류주는 가격이 비쌀수록 세율이 올라가는 종가세 기반이다. 술의 양이나 도수에 비례해 세금이 부과되는 종량세 기반의 맥주, 탁주와 다르다. 증류주는 세율이 72%, 약주·청주·과실주는 30%다. 다른 주종에 비해 가격이 특히 비싼 위스키가 ‘세금 폭탄’을 맞는 구조다. 10만원짜리 위스키에 주세 7만2000원이 붙고, 주세의 30%만큼 교육세(2만1600원)도 더해진다. 여기에 부가세 10%를 얹으면 세금만 11만원이 넘는다. 같은 도수, 같은 용량이라도 가격이 20만원인 위스키는 세금도 20만원 이상으로 뛴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물류 대란 여파도 있다. 남대문시장의 한 수입 주류상은 “코로나19 이후 수입 주류 수요는 느는데 공급은 더뎌 씨가 말랐다”며 “이 일대 위스키 가격이 2~3배씩은 올랐다”고 덧붙였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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