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속 한 줄, 오래된 태극기…다시 생각하는 3월 1일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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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지금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고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국민이라는 것을 선언하노라." (3·1 독립 선언서)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은 서울 종로구 태화관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서울, 평양, 의주, 원산 등에서 일제히 낭독된 독립 선언은 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 남녀노소, 계층 구분 없이 누구나 일제의 부당한 지배에 저항하는 의미로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수천, 수만 명으로 퍼져나간 외침은 단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국권을 침탈한 일제의 부당한 억압에 맞서 자주독립을 요구했던 3·1 운동 104주년을 맞아 그날의 역사와 독립운동 정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3·1운동 이야기'는 3·1 운동 직후인 1919년 5월 일본에서 간행한 국한문 주간 신문 '반도신문'(半島新聞)을 처음 다룬 전시다.
일본인이, 일본에서 창간한 주간지지만 반도신문은 3·1 운동의 역사를 생생히 담고 있다. 예를 들어 3·1 운동 1주년을 맞은 1920년 3월 19일의 신문은 서울(당시 경성), 일본 도쿄(東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열린 1주년 행사를 상세하게 전한다.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1주년 만세 운동도 신문에 담겨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이를 '불온한 행동' 정도로만 언급했지만, 반도신문은 교사 1명과 학생 14명이 경무총감부(警務摠監部·훗날 경찰부로 개칭) 강제로 끌려가게 됐다는 내용을 실었다.
1919년 경기 화성 제암리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주민 학살사건을 비판한 것도 이 신문이었다. 자료 해제를 맡은 박환 수원대 교수는 "해당 호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매가 금지됐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신문은 조선총독부의 처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이 소장한 '중외일보'(中外日報)에서도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중외일보는 1926년 창간해 1931년까지 1천492호를 발행한 신문이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민족 언론 중 하나로 평가되지만, 경영난을 겪으며 휴간을 거듭하다 약 5년 만에 폐간했다.
특히 3·1 운동 8주년에 나올 예정이었던 1927년 3월 1일 자 신문(107호)의 검열 본과 삭제 본을 비교해보면 2면 왼쪽 상단에 있던 사진이 삭제됐고 기사가 빠진 점을 알 수 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태화관의 전경을 담은 사진이 문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외일보 관련 내용은 박물관 소장품 검색 누리집인 'e뮤지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우리 민족의 독립 열망을 보여주는 여러 문화유산도 주목할 만하다.
2021년 보물로 지정된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3종이 대표적이다.
태극기 유물이 보물에 오른 것은 이들 유물이 처음이다.
구한말 고종(재위 1863∼1907)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언 니커슨 데니(1838∼1900)가 소장했던 태극기는 1890년 이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돼 현존하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됐다.
우리나라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로도 의미가 크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김구(1876∼1949) 선생이 독립 의지를 담은 글과 서명을 쓴 태극기다.
"지국(止國·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ㆍ인력ㆍ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일장기에 덧씌워 만든 진관사 태극기는 항일 독립 의지와 애국심이 강하게 담긴 문화유산이다. 각 문화유산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합뉴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은 서울 종로구 태화관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서울, 평양, 의주, 원산 등에서 일제히 낭독된 독립 선언은 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 남녀노소, 계층 구분 없이 누구나 일제의 부당한 지배에 저항하는 의미로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수천, 수만 명으로 퍼져나간 외침은 단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국권을 침탈한 일제의 부당한 억압에 맞서 자주독립을 요구했던 3·1 운동 104주년을 맞아 그날의 역사와 독립운동 정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3·1운동 이야기'는 3·1 운동 직후인 1919년 5월 일본에서 간행한 국한문 주간 신문 '반도신문'(半島新聞)을 처음 다룬 전시다.
일본인이, 일본에서 창간한 주간지지만 반도신문은 3·1 운동의 역사를 생생히 담고 있다. 예를 들어 3·1 운동 1주년을 맞은 1920년 3월 19일의 신문은 서울(당시 경성), 일본 도쿄(東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열린 1주년 행사를 상세하게 전한다.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1주년 만세 운동도 신문에 담겨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이를 '불온한 행동' 정도로만 언급했지만, 반도신문은 교사 1명과 학생 14명이 경무총감부(警務摠監部·훗날 경찰부로 개칭) 강제로 끌려가게 됐다는 내용을 실었다.
1919년 경기 화성 제암리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주민 학살사건을 비판한 것도 이 신문이었다. 자료 해제를 맡은 박환 수원대 교수는 "해당 호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매가 금지됐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신문은 조선총독부의 처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이 소장한 '중외일보'(中外日報)에서도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중외일보는 1926년 창간해 1931년까지 1천492호를 발행한 신문이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민족 언론 중 하나로 평가되지만, 경영난을 겪으며 휴간을 거듭하다 약 5년 만에 폐간했다.
특히 3·1 운동 8주년에 나올 예정이었던 1927년 3월 1일 자 신문(107호)의 검열 본과 삭제 본을 비교해보면 2면 왼쪽 상단에 있던 사진이 삭제됐고 기사가 빠진 점을 알 수 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태화관의 전경을 담은 사진이 문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외일보 관련 내용은 박물관 소장품 검색 누리집인 'e뮤지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우리 민족의 독립 열망을 보여주는 여러 문화유산도 주목할 만하다.
2021년 보물로 지정된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3종이 대표적이다.
태극기 유물이 보물에 오른 것은 이들 유물이 처음이다.
구한말 고종(재위 1863∼1907)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언 니커슨 데니(1838∼1900)가 소장했던 태극기는 1890년 이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돼 현존하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됐다.
우리나라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로도 의미가 크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김구(1876∼1949) 선생이 독립 의지를 담은 글과 서명을 쓴 태극기다.
"지국(止國·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ㆍ인력ㆍ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일장기에 덧씌워 만든 진관사 태극기는 항일 독립 의지와 애국심이 강하게 담긴 문화유산이다. 각 문화유산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