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ESG 규제 그만"…美 공화당에 제동 걸린 바이든

퇴직연금 운용사가 ESG 고려 의무화 법안 1일 상원서 뒤집혀
찬성 50대 반대 46으로 가결
민주당 내 반란표 2표 나와
바이든식 ESG 정책에 급제동
미국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정책에 역풍이 불고 있다. 미 상원에선 퇴직연금 운용 규칙에 ESG 요소를 제거하는 결의안이 1일(현지시간) 통과됐다. 조 바이든 정부의 핵심 의제인 ESG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든 표 ESG 정책에 급제동

이날 미 상원에선 자산운용사 등 퇴직연금 수탁사가 투자 결정 시 ESG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퇴직연금법안을 뒤집는 결의안이 찬성 50대 반대 46으로 통과됐다. 지난 28일 하원에서도 찬성 216 대 반대 204로 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가결된 바 있다. 미 노동부는 2021년 퇴직연금 개정안을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가 내세운 ‘재무 이익 최우선’란 투자 목표를 폐기하고 자산운용사가 ESG 리스크를 고려하도록 바꾼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에 거부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번째 거부권 행사다. 상원이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로 하려면 3분의 2 이상 찬성표가 필요하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공보비서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유를 옹호한다던 공화당이 오히려 자유시장주의에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에서 반란표가 나오며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결과 51대 49로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했다. 상원에서 결의안이 부결될 거란 낙관론이 팽배했다.

하지만 조 맨친·존 테스터 등 민주당 내 온건파가 찬성표를 던지며 상황이 뒤집혔다. 기권도 3표 나왔다. 테스터 의원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모든 가정이 고(高)물가를 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퇴직연금이 수익률을 내는 데 집중할 의무가 있다”며 “과도한 ESG 규제가 근로자의 은퇴 계좌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급격히 식은 ESG 투자 열기

ESG 역풍은 예견된 일이었다. 펀드 성과가 예상보다 저조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ESG 펀드 규모도 2015년 이후 최소치를 찍었다.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블랙록 전무를 역임한 테렌스 킬리를 인용해 2017년 이후 5년간 ESG 펀드의 연 평균 수익률은 6.3%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기간 시장 벤치마크 수익률인 연 8.9%를 기록했다. 미국의 퇴직연금 가입자는 ESG투자 때문에 연 2.6%씩 손해를 본 셈이다.

ESG 펀드 규모는 급감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ESG 펀드 규모는 31억달러로 집계됐다. 2021년 약 700억달러 수준에서 96%가량 축소됐다. 2015년 이후 최소치를 기록했다.

공화당이 반(反) ESG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민주당이 내세운 ’워크(Woke·각성)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ESG 투자에 적극적인 금융인이 ‘깨어있는 척’을 한다는 지적이다. 공화당 우세주에선 지난해부터 ESG 펀드 운용사에 넣은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지난해 플로리다주(州) 연기금이 블랙록에 위탁한 20억달러를 인출하기로 결정했다. 미주리주, 와이오밍주 등 공화당 우세주도 연달아 ESG 보이콧을 빌미로 블랙록에서 자금을 인출했다.

ESG 투자가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자 미 자산운용사들은 잇따라 위험성을 경고했다. FT에 따르면 KKR, 블랙스톤 등 12개 자산운용사는 지난해 연례보고서에 ESG 투자가 정쟁 대상이 돼 성과가 축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뱅가드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기후금융 동맹인 ‘넷제로 자산운용 이니셔티브(NZAM)’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ESG 규제가 펀드 운용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