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 반도체법 협상, 1년 이상 갈수도" '장기전' 전망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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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이익환수·중국투자 확대금지 조항 등
'독소조항'에 우리 측 의견 반영해 예외 둬
美 정부-기업 간 협상, 의회 변수 두고봐야
삼성은 투자전략 재점검, 정부도 장기전 대비
외교부, 반도체 수출통제·보조금 업무 나누고
북미 공관·양자경제국에 경제안보 인력 보강
한·미, 中 투자확대 금지·초과이익환수 등 예외조치 협의
한국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협상이 1년 이상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에 돌입했다. 협상을 통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이 미국의 보조금을 더 유리한 조건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반도체과학법 보조금 세부규정과 관련한 협상에 기한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며 "1년 이상의 장기전도 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정부는 미국 상무부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한 세부규정에 포함된 예외 조건이 협상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보고있다. 초과이익환수·중국 투자 확대 금지 등 ‘독소조항’에 기업 책임을 줄일 수 있는 예외 조건들이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1억5000만달러 이상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업에 대해 ‘신청자의 예상치를 웃도는 수익의 일부를 미국 정부와 공유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기재했다. 초과 이익의 기준이 되는 수익 예상치에 대해서는 ‘합의된 수치(agreed-upon threshold)’라는 표현을 덧붙여 협상 가능성을 열어놨다. ‘초과이익 공유는 프로젝트마다 다를 수 있다(vary from project to project)’는 문구도 규정에 담겼다. 상무부는 보조금 신청 기업은 10년간 우려 대상국에 투자를 확대하거나 반도체 제조 역량을 늘릴 수 없다는 조항도 넣었다. 이 조항에는 ‘특정 조건을 제외하고(except under certain limited conditions)’라는 단서가 달렸다.
한·미 양국은 이러한 보조금 세부규정 조항을 긴밀히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국자는 “주미대사관은 물론 산업통상자원부와 미 상무부가 각 채널에서 의견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고용 활성화, 대중국 투자 제한 등을 앞세워 인기영합적인 세부 규정을 발표했지만 협상 결과에 따라 독소조항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한 없는 보조금 신청에… 美 공화당 반대도 변수
정부는 이러한 예외 조항과 향후 발표될 가드레일 세부조항을 토대로 한국 기업을 지원하고 미국 측과 협의를 지속한다는 입장이다.정부가 장기전을 예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보조금 신청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무부는 첨단반도체 공장은 오는 3월31일부터, 현세대·성숙노드·후공정 시설은 6월26일부터 본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신청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미국에 패키징 공장을 투자하고자 하는 SK하이닉스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져 볼 여유가 있다는 평가다. 다른 하나는 미국 의회 변수다. 반도체과학법은 정부로 하여금 보조금 상세 프로그램과 회계 등 재정 상황을 의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은 민주당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일방 처리에 반대한 만큼 보조금 모니터링과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 정부안에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하원 과학우주기술위원회 위원장인 프랭크 루카스 공화당 의원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반도체법 보조금 세부규정과 관련해 "반도체 생산보다 노동 의제를 강요하려는 시도는 잘못"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사설을 통해 "반도체과학법이 법에도 없는 기준을 들이대며 기업에 좌파(progressive) 정책을 강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중 수출통제·반도체 보조금 업무 나누고 … 경제안보 인력 늘려
외교부는 업무 분장과 인력 증원을 통해 반도체과학법을 포함한 경제안보 현안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외교부는 최근 양자경제국이 담당하던 반도체 수출 관련 업무 중 대중국 수출통제 업무를 원자력비확산외교기획관실에 이관했다, 양자경제국은 경제안보 관련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원자력비확산외교기획관실은 바세나르 체제·핵공급그룹·미사일 기술통제·생화학무기 등 4대 다자간 수출통제를 담당해온 부서다. 최근 다자 간 수출통제 협력이 많아지면서 대북·이란 제재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수출 통제 업무를 원자력비확산외교기획관실이 전담하기로 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동시에 양자경제국에는 경제안보 담당 인원이 3명 충원됐다. 북미 지역 공관에도 경제안보 현안 대응을 위한 인원이 1명 추가됐다. 미국의 IRA·반도체과학법,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MA) 등 경제안보 업무가 증가된 데 따른 대응이다. 윤석열 정부가 부처·공공기관 인력을 감축하는 추세 속에서 특정 국 인원이 늘어난 것은 경제안보 현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