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中·러 밀월관계 오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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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세계와 교역량 많은 중국이2023년 들어, 미국발(發) 초고금리 정책에 의한 세계적인 경기 위축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등으로 세계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미국의 빅테크기업 등 세계 주요 기업이 대규모 인원 감축 등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미국 노동시장에서의 임금 인상 압력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근원물가 상승 등 인플레이션 압력도 여전해 미국 중앙은행(Fed)이 섣불리 금리 인하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간 갈등구조는 세계 경제의 앞날을 점칠 수 없게 만드는 최대 복병이다.
러시아 계속 지원하긴 어려워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는 듯한 러시아의 행보를 점칠 수 없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러시아와의 무한 협력’을 공언하고 있는 중국의 행보다. 최근 중국발 정찰풍선을 미국이 격추한 뒤 미·중 양국 간 갈등 구도가 더욱 악화하면서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러시아 간 혈맹관계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경제의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미궁에 빠질 것인가? 이런 난감한 의문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답은 결국 양국 간 관계의 역사와 그 구조적 특성 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진정한 밀월관계인지, 혹은 다급한 두 나라 정상의 수사학에 불과한지는 1860년 베이징조약에서부터 시작된 양국 간 갈등 역사가 분명히 보여준다. 100만㎡ 이상의 영토를 러시아에 할양하기로 한 베이징조약을 필두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기 전까지 중국은 꾸준히 러시아에 영토를 뺏기며, 깊은 불신과 적대감을 키워왔다. 더욱이 중국 공산화 이후에는 두 나라 간 영토 분쟁은 본격적인 무력 분쟁으로 확산하다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는 국면에서 양국 간 갈등구조가 봉합되는 추이를 보였다.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에는 러시아의 경제력이 정체한 반면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결과, 오늘날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중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에 더해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져 극동지역 경작지의 16%를 중국인이 점유하는 상황과 관련해 러시아의 불만과 불안은 점차 커지고 있다. 또한 과거 구소련 연방국가이던 카자흐공화국, 우즈베크공화국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를 급속히 줄이고 중국과는 교역을 최대로 늘려 러시아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더해 국방비 지출 규모도 중국이 러시아의 4.2배에 달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근본적 차이는 러시아는 에너지를 제외할 경우 서방 경제와의 유기적인 상호의존도가 매우 떨어지는 낙후한 경제로서, 현재와 같은 고유가 체제에서는 경제 고립의 단기적 충격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세계 경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비록 미·중 패권 경쟁으로 미국과는 디커플링이 단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으나, 유럽을 포함한 세계 경제와의 단절은 중국 경제에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으로서는 매우 난처한 사안이다. 결국 중국이 ‘러시아와의 무한 협력’ 관계를 언제 청산할지는 계속 급락하는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에 달려 있으며, 이는 또한 임박한 러시아 대공세의 향방에 달려 있다. 러시아의 대공세를 막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