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저출산 해법, 기업 연대에서 찾아야

복지예산 의존해선 극복 어려워
혁신금융·기업 연대로 새 판 짜야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둘러보면 한국만 한 국가도 없다. 해외의 시선은 대부분 호평 천지다. 기적적인 고성장 모델 덕분이다. ‘수여국→공여국’으로의 해외 원조 위상 변화도 한국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전쟁 이후 두 세대 만에 실로 놀랄 만한 국력 증진을 일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6위에도 꼽혔다(USNWR). 어쨌든 최소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은 팩트다. 2022년 세계적 불황·위협 속에서도 그나마 우리는 선방했다.

지금까진 좋았지만, 앞으로는 위험하다. 한국 사회가 절체절명의 고빗사위에 섰기 때문이다. 많은 이유가 있으나, 인구 변화가 크게 한몫했다. 우리는 동서고금의 어떤 인구 통계도 확인·예측하지 못한 과격한 인구 변화의 당사자가 된 지 오래다. 일찍 자연감소(출생-사망=음수)로 돌아선 주요 국가조차 ±1.6명의 출산율인데, 한국은 1.3명(2002년), 1명(2018년)까지 하향 돌파한 뒤 2022년 0.78명까지 추락했다. 최근 5년 연속 저점을 깨면서 스스로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원인은 뭘까? 워낙 다종다양해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 즉 삶의 문제 전부가 인구 변화의 결과에 닿는다. ‘사회 변화→인구 변화→사회 변화’의 연결고리 탓이다. 특히 출산 주체인 후속 세대의 피폐해진 삶이 ‘결혼→출산’의 인구 공급을 비합리적인 선택 카드로 변질시켰다. 독립을 통한 가족 분화의 설득력이 사라진 것이다. 효용·편익은 의심스러운데 부담·비용은 확실시되니 좀체 나설 수 없다. 부모 세대는 그래도 나았다. 미래가치를 현재화할 때 충분한 보상체계가 가능한 고성장·인플레이션 시대를 살아서다. 상대 박탈은 있어도 절대 박탈은 적어 헝그리정신의 기대효과가 확실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노력한다고 획득하지 못할뿐더러 삶을 지배하는 게임 규칙도 불공정하고 몰상식해졌다. 물론 그때는 옳았다. 한정 자원의 차별 배분조차 ‘경제성장→성과 배분’의 낙수효과로 읽히며 이해됐다. 고용제도가 대표적이다. 당장 많은 걸 못 주니 종신고용·연공서열로 미래 보상의 임금체계가 안착했다. 무엇보다 장기·반복적 경제성장은 올해보다 나은 내년의 삶을 확실시해줬다. 이게 변했으니 고위험 카드로 전락한 가족 분화·자녀 출산은 손쉽게 연기·거부된다.

이제 끝났다. 고성장은 종료됐고, 불확실성은 건재하다. 대학 진학률 74%(2021년)의 똑똑해진 MZ세대는 저성장기 생존전략을 학습하며 실천한다. 전대미문의 출산율은 그 결과일 따름이다. 역전할 방식은 하나뿐이다. 대폭적인 구조개혁으로 비정상·불균형으로 점철된 기존 질서를 세대중립형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미래를 꿈꾸도록 숨통을 터주는 차원이다.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를 추격하고 역전하는 스토리가 그렇다. 부모보다 빈곤해질 최초 집단이라는 볼멘소리에 주목할 때다.

MZ세대의 역전 모델은 세대 전체의 상생 카드다. 자녀 불행과 부모 행복은 교환되지 않는다. 이보 전진(지속사회)을 위한 일보 후퇴(이해 조정)도 내 자녀의 행복 재료로 받아들여지면 한층 수월해진다. 구조개혁은 퀴퀴한 관성 탈피와 담대한 혁신 지점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인구 해법도 마찬가지다. 복지 배분에서 성장 과실로, 예산 의존에서 혁신 금융으로, 정부 독박에서 기업 연대로 전환하는 게 필수다. 특히 많은 자원과 검증된 능력의 기업 등판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도 통한다. 그렇다면 인구 전환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선진국형 지속사회를 열어젖힐 버전 2.0의 한강의 기적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