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60만원? 비싸도 괜찮아"…2030 직장인 몰려든 이곳 [긱스]

거주자 84%가 2030인 맹그로브…따로 또 같이 산다
조강태 MGRV 대표
"그동안 우리나라 주거 서비스는 그야말로 구멍가게 같았어요. 월세를 50만원 넘게 내면서도 임차인은 별다른 대우를 받지 못했죠. 로열티 프로그램이 있는 시장도 아니었어요. 점점 '경험'이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주거는 전혀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공유 주거(코리빙) 플랫폼 '맹그로브'를 만든 MGRV의 조강태 대표 얘기다. 코리빙은 주거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독립된 개인 주거 공간과 업무, 휴식, 취미생활 등의 공용 공간이 구분된 공유주거 형태다. 침대나 화장실, 책상은 원룸에서 개인이 쓸 수 있게 하고 주방이나 테라스, 업무 공간 같은 시설은 건물 안에 마련된 공용 공간에서 입주민들이 함께 쓸 수 있게 하는 식이다.코리빙이 주거의 새 패러다임이 된 건 주거 시장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지난해 국내 1인 가구의 비중은 전체의 41%인 972만가구로 나타났다. 이 중 이 20~30대가 3분의1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29세 이하 1인 가구의 비중은 5년 전과 비교하면 50% 넘게 늘었다. 매매·전세·월세 중 월세의 비중이 40%를 넘어 가장 높았다. 여기다 최근 대출금리가 치솟고 전세 사기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전세 시장은 급격히 위축됐다.

코리빙 시설을 선택하면 월세는 조금 비싸더라도 적은 보증금과 다양한 부대시설, 높은 보안 수준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또 하루 단위부터 계약 기간을 유연하게 설정할 수 있다. 기업이 관리하고 있어 보증금 반환과 관련된 시비도 발생하지 않는다. 덕분에 1인 가구가 많은 2030 세대 젊은 직장인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맹그로브 동대문점의 1인실 모습.

월 60만원, 코리빙의 세계로

한경 긱스와 최근 만난 조 대표가 주목한 점도 이 부분이다. 맹그로브 입주자의 84%가 2030 세대다. 이중 여성의 비율은 70% 가까이 된다. 조 대표는 "사회 초년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원룸'이고, 서울을 기준으로 월세 60만원 정도가 일종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작용한다"며 "이 지점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맹그로브는 서울에 4개 지점을 두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은 20층 높이에 311개 방이 있는 신설동 지점이다. 동대문 지점은 15층, 177실 규모다. 코로나19로 운영이 어려워진 관광 호텔을 매입한 뒤 리모델링해 운영하고 있다. 이 탓에 두 곳은 관광숙박시설로 등록돼 있어 전입신고는 불가능하다. 조 대표는 "주로 단기간 서울에 거주해야 하는 직장인이나 외국인 유학생이 찾는다"고 말했다.

전입신고가 가능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숭인동 지점은 6층 규모에 24개 방이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27일 문을 연 신촌 지점은 165세대가 살 수 있다. 지점별로 특색도 명확하다. 이를테면 신촌점의 경우 지하1층부터 2층까지는 상가가 들어서 있고, 3~14층이 방이다. 또 3층부터 홀수 층에는 각각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자유로운 업무와 공부가 가능한 '코워킹' 공간, 예약형 주방인 '소셜 키친', 도서관, 요가룸 등이 있다. 방은 1인실과 3인실로 구성됐는데, 월세는 60만~120만원 선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다만 보증금은 500만원으로 서울 지역 평균보다 저렴하다.

또 동대문점과 신설점엔 '스테이 전용룸'이 마련돼 있다. 한 달 이하 단기 숙박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이다. 동대문점엔 1인실과 2인실, 6인실이 있는데, 6인실은 1박에 3만원으로 살 수 있다. 가장 규모가 작은 숭인점은 루프톱 테라스나 1인 전용 헬스장, 1인 전용 명상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월세도 50만원대로 저렴한 편에 속한다.
맹그로브 신설동점의 공용 공간들

주거 문제는 '사회 문제'

조 대표가 MGRV에 합류한 계기는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결혼을 일찍 했다. 대학 졸업반이던 2000년대 중반이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 부부는 원룸형 오피스텔을 알아보고 있었다.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어렵사리 집은 구했지만 화장실에 문제가 생겼다. 문의를 했지만 중개인에게서도, 집주인에게서도 따뜻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조 대표는 "온라인 세상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전하는데, 왜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주거'는 아직도 구닥다리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막연히 주거 시장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교육학을 전공한 그에게는 우선 창업과 회사 경영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그의 '밥벌이' 첫 직장은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였다. 그는 "사업모델을 꾸리는 과정에서 주거 시장을 공부해보니, 이 시장 구조가 쉽게 바뀔 수 없을 것 같았다"며 "집은 넘쳐나고, 공급자인 임대인이 아쉬울 것이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거를 '사회 문제'로 놓고 풀어야 했다. 2010년대 들어 이미 청년 주거 문제가 심각했던 영국이나 미국, 독일 같은 곳에선 코리빙이 새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걸 한국에서 해보고 싶었다. 당시 국내엔 시행사와 건설사 정도 외에는 부동산 시장의 다른 '플레이어'가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던 중 지인 소개로 임팩트 투자를 주로 하는 HG이니셔티브(HGI)의 정경선 의장을 만났다. 비전이 잘 '통한' 그는 곧장 HGI의 부동산 팀에 합류했다. 이때부터 여정이 시작됐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코리빙은 국내 건축법과 주택법에 없는 주거 형태였다. 이를테면 현행법상 분류된 연립주택·다세대주택 등은 4개 층 이하로 구성돼야 하는 등 공간적 제약이 있었고, 기숙사는 학교나 공장 소속 입주민들로 대상이 한정됐다. 원룸으로 보자니 부엌이나 욕실 등의 개인 공간이 갖춰져야 했고, 오피스텔은 업무 시설이 주로 돼야 하는 데다가 발코니 설치가 불가능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 모든 제약을 뚫고 기획한 MGRV의 첫 작품은 맹그로브 숭인점이었다. 그런데 종로구청 인·허가 담당 부처에서 내린 결론은 통과도 반려도 아닌 '판단 보류'였다. 혁신적인 주거 형태라는 건 알겠는데, 그럼에도 법적으로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였다. 다행히도 구청장 전결로 어찌저찌 숭인점이 문을 열게 됐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사업을 이어나가기는 무리였다.

규제 완화 업고 성장

MGRV에 날개를 달아준 건 규제 샌드박스였다. 2021년 5월 국토교통부는 회사가 내놓은 '공유주거 하우스'에 임시 허가를 부여했다. 7㎡ 이상의 개인 공간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원룸형 주택 세대 내 침실 구성을 3개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같은 해 10월엔 국무조정실의 '규제 챌린지' 사업에도 선정됐다. 기숙사 하위 용도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기숙사' 개념을 법령에 신설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코리빙이 법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관계부처의 합의가 모아진 셈이었다. 지난 2월엔 국토부가 이런 내용을 담은 '건축분야 규제 개선 방안'도 발표했다.

그 사이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다. 2020년 HGI로부터 스핀오프했다. 2020년 50억원, 2021년 150억원에 이어 지난달엔 12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KB인베스트먼트, HB인베스트먼트, TS인베스트먼트, 위벤처스 등 국내 정상급 벤처캐피털(VC)의 선택을 받았다. 컴퍼니빌딩을 책임졌던 HGI는 조 대표에게 주식을 상여해주며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줬다. 2대주주로 남으며 조 대표와 MGRV를 지원사격하기로 했다. 조 대표는 "초기 성장이 끝나고 본격적인 도약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의 코리빙 하우스인 더콜렉티브 올드 오크. 방만 500개가 넘는다

해외도 대세... 주거의 '기본' 될 것

조 대표는 코리빙이 1인 가구의 '기본' 형태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연한 주거를 뜻하는 '플렉서블 리빙'이 미래 모습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집을 굳이 소유하지 않더라도 전국 각지에 진출한 맹그로브 지점을 통해 편하게 거주지를 옮겨다닐 수 있도록 만드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는 "구글이 검색 엔진의 상징이 되며 '구글링'이라는 용어가 생긴 것처럼, 사람들이 주거 서비스를 이용할 때 '맹그로브에 산다'가 일종의 관용어가 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코리빙이 대세로 자리잡는 중이다. 영국의 '더콜렉티브'가 대표적이다. 주거 비용이 악명높게 비싼 런던에서 1200파운드(약 180만원) 정도의 월세로 코리빙을 누릴 수 있다. 사우나와 헬스장, 코워킹 공간 등 부대시설도 당연히 이용 가능하다. 미국 뉴욕의 '커먼'이나 독일 베를린의 '하바이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ZOKU' 같은 플랫폼도 주요 코리빙 시설로 꼽힌다.

대형 코리빙 플랫폼들의 합종연횡도 이어지고 있다. 올 초 하바이트와 커먼은 합병을 발표했다. 합병을 통해 유럽, 북미, 아시아 지역에서 14개국 40개 이상의 도시에 3만여 개의 방을 운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코리빙 스타트업 플로우에 투자한 글로벌 VC 앤드리슨호로위츠의 마크 앤드리슨 파트너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재택근무의 효율성이 입증됐고, 좁아진 인간 관계는 외로움을 증폭시킬 것"이라며 "가장 안정감을 주는 공간인 '집'이 코리빙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거 비용이 늘어나고 주택 소유가 '불평등'해진 세상에서 코리빙은 안정감과 상호작용, 진정한 소유권을 모두 줄 수 있는 열쇠"라고 덧붙였다.

반면 국내에서는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SK디앤디나 KT에스테이트 같은 대기업들도 코리빙에 뛰어들었다. SK디앤디는 서울 성수동, 서초동, 수유동 등에 코리빙 시설 '에피소드'를, KT에스테이트는 야놀자클라우드와 손잡고 서울 군자동, 미아동 등에 합작사 트러스테이가 운영하는 '헤이'를 열었다. 다만 조 대표는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코리빙 산업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예전엔 주거가 '건설'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경험이 중시되면서 소비재 브랜드로 바뀌었다"며 "소비자의 욕구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스타트업 'DNA'가 코리빙 업계에서는 빛을 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