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개막] ③MLB MVP부터 소방관까지…대회를 빛낼 다양한 선수들

오타니, 트라우트 등 MLB MVP 출신 7명 WBC 출전
이정후, 야마모토 등 예비 빅리거에게는 쇼케이스
쿠바 망명 선수, 체코 소방관 등 이색 선수 총집합
축구 월드컵의 권위는 누구나 인정한다.오랫동안 '세계화'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세계적인 종목으로 자리 잡지 못한 야구에는 월드컵 같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국제대회가 없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결승전 격인 '월드시리즈'가 야구 선수에게는 꿈의 무대였다.

'야구의 월드컵'을 모토로 2006년 창설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아직 축구 월드컵만 한 위상을 지니지 못했다.축구 선수들은 '부상을 감수하고서라도' 월드컵 출전을 꿈꾸지만, 꽤 많은 최정상급 야구 선수들은 시즌 준비 등을 이유로 WBC 출전을 고사한다.

그러나 WBC도 점점 '권위 있는 국제대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WBC를 주도하는 야구 종주국 미국이 대표팀 선발에 힘을 싣고, 아시아 최강 일본도 최정예 멤버를 꾸리고자 애쓴다.3월 8일 대만에서 열리는 1라운드 A조 쿠바와 네덜란드 경기로 막을 올리는 2023년 WBC에는 예전보다 주목할 선수가 늘었다.

MLB 최우수선수(MVP) 출신이 7명이나 각국 대표로 출전하고, 예비 빅리거들도 WBC에서 쇼케이스를 벌인다.

변방에서 야구 선수를 '제2의 직업'으로 택한 이들은 "WBC는 꿈의 무대"라고 말한다.
◇ 오타니, 트라우트, 알투베…별들의 잔치
2023 WBC에는 20개국, 600명의 선수가 출전한다.

WBC 사무국은 "메이저리그 구단에 속한 선수 332명,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현역 빅리거 186명, 올스타 출신 67명 최종 엔트리에 뽑혔다"고 발표했다.

MVP에 오른 선수도 7명이나 된다.

마이크 트라우트(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폴 골드슈미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무키 베츠(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상 미국), 오타니 쇼헤이(에인절스·일본),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호세 알투베(휴스턴 애스트로스·이상 베네수엘라), 프레디 프리먼(애틀랜타 브레이브스·캐나다) 등 7명의 MVP 출신이 4개 나라 대표로 뛴다.

WBC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은 또 있다.

MLB 팬들은 벌써 4강 이후에나 벌어질 수 있는 '에인절스 동료' 오타니와 트라우트의 투타 맞대결을 상상한다.

한국 대표팀 내야수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1라운드 B조에서 투수 다루빗슈 유(일본)와 대결하고, 4강 또는 결승에서 도미니카공화국 내야수 매니 마차도와 맞붙는 '샌디에이고 매치'를 기대한다.

야구 마니아들은 죽음의 C조에서 산디 알칸타라(마이애미 말린스), 마차도, 라파엘 데버스(보스턴 레드삭스), 훌리오 로드리게스(시애틀 매리너스)가 포진한 도미니카공화국, 하비에르 바에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프란시스코 린도어, 에드윈 디아스(이상 뉴욕 메츠), 마커스 스트로먼(시카고 컵스)을 품은 푸에르토리코, 카브레라, 알투베, 살바도르 페레스(캔자스시티 로열스),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으로 진용을 짠 베네수엘라가 벌일 빅리거 혈전도 주목한다.
◇ 한일 예비 빅리거 이정후·강백호·야마모토·사사키
2009년 WBC를 앞두고 미국 야구전문잡지 베이스볼아메리카(BA)가 선정한 '빅리그가 주목할 유망주' 명단에 오른 다루빗슈와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김광현(SSG 랜더스), 윤석민(은퇴) 등은 실제로 MLB 무대에 섰다.

2023 WBC를 앞두고도 BA는 'WBC에 출전하는 예비 빅리거 10명'을 선정했다.

이들에게는 WBC가 MLB 구단을 향한 쇼케이스가 될 수 있다.

2022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이미 여러 미국 매체에서 'WBC에서 주목한 선수'로 뽑혔다.

BA도 이정후를 4위로 꼽았다.

BA가 "MLB 상위 타선에서 평균 정도의 안타를 치는 주전 중견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 이정후는 WBC를 통해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

좌타 거포 강백호(kt wiz)는 7위, 다재다능한 내야수 김혜성(키움)은 9위에 올랐다.
MLB 스카우트는 일본 선수를 조금 더 주목한다.

BA가 뽑은 유망주 1∼3위도 시속 160㎞를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사사키 로키(지바롯데 머린스), 2년 연속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릭스 버펄로스), '일본의 에런 저지'로 불리는 거포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 스왈로스)였다.

이번 WBC는 한일 예비 빅리거들의 경쟁심을 자극할 수 있다.
◇ 쿠바 야구 역사를 바꾼 로버트와 몬카다
WBC에서 '현재 국적과 다른 나라'를 대표해서 뛰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쿠바에서 현역 미국프로야구 선수를 대표팀으로 받아들인 건 역사적인 변화다.

WBC는 올림픽 등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주관하는 대회보다 '대표팀 참가 기준'을 유연하게 정했다.

특정 국가의 유효한 여권을 지닌 국민, 해당 국가의 합법적인 영구 거주민, 부모 중 한쪽이 특정 국가의 국민이거나 해당 국가에서 태어난 것을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는 선수로 WBC 출전 자격을 규정했다.

이 규정만 따르면 MLB에서 뛰는 쿠바 선수들의 쿠바 대표팀 합류는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러나 사실상 WBC를 주관하는 미국과 쿠바의 외교 문제, 망명 선수를 향한 쿠바 정부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2006, 2009, 2013, 2017 WBC 대회에는 빅리거들이 쿠바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번 2023 WBC에서는 쿠바 망명 선수의 대표팀 합류가 허용됐고, 처음으로 외야수 루이스 로베르트, 내야수 요안 몬카다(이상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 현역 빅리거가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 쿠바 정부의 허락을 받고 과테말라로 이주한 몬카다는 영주권을 얻은 뒤 미국 구단과 계약해 '망명 선수'로 분류되지 않는다.

반면 로베르트는 메이저리그에서 뛰고자 2016년 11월 쿠바를 탈출한 '망명 선수'다.

로베르트는 1959년 쿠바 공산 혁명 이후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망명 선수로 기록된다.

'아마야구 최강'으로 군림하던 쿠바는 핵심 선수들의 망명이 이어지면서, 국제대회 위상도 추락했다.

로베르트와 몬카다가 WBC에서 활약하면, 쿠바 야구는 더 빠르게 변할 수 있다.

그동안 자국 선수들로만 대표팀을 구성한 일본과 한국도 이번 WBC에서 문호를 개방했다.

일본은 라스 테일러-다쓰지 눗바, 한국은 토미 현수 에드먼(이상 세인트루이스) 등 미국 국적 선수를 대표팀에 선발했다.
◇ 체코 선수들의 본업은 소방관·외판원
체코 대표팀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

그러나 체코는 '야구의 세계화'라는 WBC 목표에 부합하는 팀이다.

WBC 조직위원회는 "체코 선수들은 대부분 진짜 직업이 있다"고 전했다.

내야수 마르틴 체르벤카는 외판원, 지명타자 페트르 지마는 애널리스트, 외야수 아르노슈트 두보비는 고등학교 지리 교사, 투수 마레크 미나르지크는 부동산 중개인, 루카시 에르콜리는 언론사 홍보직원 대표팀 에이스 마르틴 슈나이더는 소방관으로 일한다.

체코 대표팀을 이끄는 파벨 하딤 감독의 진짜 직업도 의사(신경과 전문의)다.

에르콜리는 "나는 체코 야구 대표 선수들을 '광신도'라고 부른다.

야구로는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가족과 지내는 시간마저 포기하며 훈련한다"며 "이유는 단순하다.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불모지에서 야구를 싹틔운 체코 선수들은 사상 첫 WBC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들은 B조에서 MLB MVP 출신 오타니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고 말한다.

그러나 직장에 휴가를 내고 WBC에 출전한 체코 선수들은 WBC를 관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체르벤카는 "야구는 0-0으로 시작한다.

우승 후보는 아니지만, 우리도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마는 "우리는 지는 걸 싫어한다.

이번 WBC에서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싶다"고 출사표를 올렸다.빅리거와 맞서는 체코 선수들의 모습은 이번 WBC에서 새로운 재미를 안길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