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준비하는 벤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의 자세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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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벤처투자 시장도 얼어붙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외 벤처캐피털(VC)들은 여전히 유망 스타트업을 눈여겨 보며 투자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혹한기를 잘 대응하는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국내 대표 VC 가운데 하나인 LB인베스트먼트의 박기호 대표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조성된 10조원의 VC 투자 재원은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시점에 적극적인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며 "VC들은 유망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박 대표가 벤처투자 시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한경 긱스(Geeks)에 보내왔습니다.지난달 말 새로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출현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나왔다.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스타트업 파두 얘기다. 플랫폼, 전자상거래(e커머스) 중심의 국내 유니콘기업 목록에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 분야 스타트업이 추가됐다는 점은 국내 창업 생태계에 의미 있고 희망적인 일이다. 벤처투자의 혹한기라고들 한다.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는 순식간에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세계 각국은 빗장을 걸어잠갔고, 사람들은 비대면 경제에 적응해야 했다.
"위기 속에서도 견조한 한국 벤처캐피털"
하지만 스타트업에는 새로운 기회였다. '제로' 금리를 비롯해 위기 극복을 위한 엄청난 유동성 공급에 힘입어 e커머스, 플랫폼 기업들이 줄줄이 급성장했다. 혁신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벤처투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21년 전 세계 벤처투자는 700조원 수준으로, 2020년의 400조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말 그대로 새로운 스타트업 '폭발'이 일어난 시기였다. 당시엔 매출과 가입자의 증가가 기업가치로 직결돼 스타트업들은 투자 유치와 거래 규모 확대에 총력을 기울였다.
2022년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과잉 유동성에 따른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등장했다.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전례 없는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예기치 못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나타났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전 세계가 최근 20년 이내 경험하지 못한 거시 경제적 리스크가 크게 확대된 것이다.그리고 이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리스크는 팬데믹 기간 급성장한 혁신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를 대폭 낮췄다. 벤처투자 역시 위축됐다. 스타트업들이 벤처투자의 혹한기라는 새로운 환경에 처했다. 투자자와 스타트업 모두 조정과 옥석 가리기에 돌입해야 하는 시점이다.
한국 벤처캐피털(VC)은 이런 환경에서도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 금액은 6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9% 감소했지만, 35%나 급감한 글로벌 벤처투자 추이와 비교하면 훨씬 견조한 모습이었다. 투자받은 기업 숫자도 2474개로 소폭(1.5%)이지만 늘었다.
또 적극적인 벤처펀드 조성에 나선 결과, 총 10조7000억원의 신규 펀드가 생겨 전년 대비 13% 늘었다. 신규 벤처 펀드 조성 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최초다. 적극적인 벤처투자의 결과는 유니콘 기업의 증가로 이어졌다. 2021년 대비 4개의 유니콘 기업이 추가돼 국내 유니콘 기업 수는 22개가 됐다. 한국 스타트업의 성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VC의 적극적인 투자는 미국, 중국, 인도 등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다. 여전히 뜨거운 창업 열풍과 VC의 과감한 투자, 전폭적인 정부 지원에 힘입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빠르게 성장했다.
현 시점이 벤처투자의 조정기이자, 큰 변곡점의 시작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시기가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조정기와 함께 인터넷, 모바일, 스마트폰 혁명에 버금가는 인공지능(AI) 혁명의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챗GPT의 등장과 함께 세계는 또 다시 기술에 의한 혁신, 변화의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의 조정기는 그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낸 스타트업과 VC가 재도약을 위해 다시 정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연초부터 투자 규모의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금리 상승과 경제 위기 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벤처투자도 숨고르기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정기는 필자가 직접 경험한 2000년 닷컴 버블 시기의 조정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빅테크의 견고한 성장, 펀더멘털이 탄탄한 유니콘 기업들의 등장, VC의 자금력 등 모든 면에서 당시보다 훨씬 견고하다. 이는 머지않은 시점에 다시 스타트업과 벤처투자 생태계가 회복될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다.이 시기를 잘 대응하는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조성된 10조원의 VC 투자 재원은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시점에 적극적인 투자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도 VC들은 유망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챗GPT와 같은 AI에 기반한 새로운 기술, 혁신 산업도 공격적으로 발굴 중이다. 필자가 경영을 맡고 있는 LB인베스트먼트도 지난해 2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이는 근래 최대 규모의 투자였다. 올해 역시 지난해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해외 VC를 만나보면 국내 벤처투자 환경을 부러워한다. 연 10조원을 조성할 수 있는 벤처펀드 재원 규모, 코스닥시장과 같은 회전력 빠른 자본시장의 존재, 삼성·LG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의 협력 가능성, BTS와 같이 세계의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는 콘텐츠 생산 능력, 정부의 적극적 정책 지원 등 한국이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경쟁력이 무척 크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시장에서 벤처투자의 정점이었던 2021년과 같은 시기가 도래할 때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에서 7개의 유니콘 기업이 등장했다는 점은, 어려운 시기에서도 한국에서는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 밑거름이 되는 VC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조정과 옥석 가리기의 시간만 버티면 벤처투자는 빠르게 회복될 것이다. 겨울에 잘 훈련하고 머지않아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
△1964년생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KB인베스트먼트 심사역
△현대전자 팀장
△스틱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장
△LB인베스트먼트 대표(2003년~)
△한국소재부품장비투자기관협의회(KITIA) 회장(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