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일손부족에 녹차밭이 사라진다...켜지는 식량자급 경고등 [한경제의 신선한 경제]

녹차 재배 농가 10년새 절반 줄어
“하동에서 녹차밭을 가진 농민들은 모두 60대 이상입니다. 1만6500㎡(5000평)이 안 되는 땅에서 재배해봐야 인건비, 비룟값 빼면 하루에 5만원밖에 못 벌어요. 생산을 포기하는 농민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녹차 농사 경력 20년인 농민 배재근 씨)

전국 주요 농산물 산지가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다. 초고령화가 야기한 구조적 흐름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인건비 급등 등의 악재가 더해져 최근 1~2년 새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폭염, 가뭄 등 이상기후도 직격탄을 날렸다. 그 결과 녹차 같은 특용작물뿐 아니라 쌀(벼), 고추, 참깨 등 식탁 위에 올라가는 농작물들도 생산량이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식량자급률 40%' 붕괴 위기

전남 나주의 논 모습. 사진 연합뉴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경지면적은 10년 연속 감소해 150만㏊ 붕괴를 눈앞에 뒀다. 전국 경지면적은 2012년 172만9982㏊에서 지난해 152만8237㏊로 11.6% 축소됐다. 식량자급률(국내 생산 식량÷국내 소비 식량)도 40%가 무너질 처지에 놓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양정자료에 따르면 2021년 식량자급률은 전년 대비 5.3%포인트가 급락해 역대 최저인 40.5%(완전 건조 중량 기준)로 추락했다. 지난해 농산물 무역적자도 전년보다 18.8% 늘어 400억달러(약 52조6000억원)에 육박했다.

재배면적이 급감한 몇몇 품목의 경우 가격이 우상향하는 추세가 굳어지는 양상이다. 중국·인도산의 유입으로 국내 생산량이 대폭 줄어든 참깨가 그렇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참깨 도매가격(30㎏ 기준)은 2017년 하루 평균 51만5016원에 형성됐다가 지난해엔 81만227원으로 치솟았다. 올해도 평균 72만원대에서 고공행진 중이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경작 비용이 천정부지로 올라 농가 수익성이 극도로 나빠졌다”며 “국제 정세 불안, 기후변화 등으로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이 중요해진 만큼 국내 농산물 자급률을 높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손 많이 가는 작물 재배 급감

사진=연합뉴스
7일 찾은 경남 하동군의 한 녹차밭. 3300만㎡ 차밭 곳곳에서 누렇게 변한 찻잎들이 눈에 띄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겨울 강추위에 말라버린 찻잎들이다. 손을 가져다 대자마자 바스러질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제다원(차를 만드는 곳) ‘청석골’을 운영하는 황인수 녹차 명인(64)은 “녹차는 잎을 일일이 따야 하고 여름과 가을에는 세 번에 걸쳐 제초 작업을 해야 해 손이 많이 간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근로자 20명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7명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소규모 농가 중에는 황 명인과 같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농사를 접은 곳도 많다. 하동군청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하동 녹차 재배 농가는 1066가구로 2012년 말(1918가구)의 55.5%에 불과하다. 재배 면적도 이 기간에 1042㏊에서 725㏊로 30.4% 감소했다.

이런 양상은 고추, 참깨처럼 손이 많이 가는 작물들 사이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들도 녹차와 마찬가지로 재배면적이 급격히 줄어 국내 소비분을 중국, 인도 등의 수입산이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참깨 재배면적은 2012년 말 2만5076㏊에서 2021년 말 2만2039㏊로, 고추는 4만5459㏊에서 2만9770㏊로 쪼그라들었다.

재배면적 축소는 고질적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풋고추는 현재 10㎏에 10만5501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작년 평균(6만3717원)보다 65.5%, 평년(2018~2022) 평균보다 94.4% 비싼 가격이다. 붉은 고추(평년 대비 상승률 21.5%), 건고추도(6.5%) 사정도 비슷하다.

○고비용 구조 고착

사진=연합뉴스
산지 급감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꼽히는 건 일손 부족이다. 초고령화로 농촌 인구는 급감하는데, 코로나19 창궐 후 일할 사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고추 주산지인 경북 봉화군, 청송군, 영양군의 경우 산업연구원이 개발해 지난해 말 발표한 K-지역소멸지수가 0.4에 불과한 곳들이다. 이 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소멸 위험이 높다는 의미다.

이들 지역은 ‘지방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부터 2032년까지 농가 고령화로 인한 재배 기피, 노동력 부족 등으로 건고추 재배면적이 연평균 1%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비료 가격, 냉·난방 비용 등 재배 비용도 최근 1~2년 새 부쩍 증가했다. 전북 전주시에서 1만3200㎡ 규모의 화훼 농장을 운영하는 고경남 씨는 “꽃을 키우려면 1년 내내 영상 18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냉·난방비가 많이 든다”며 “숙달된 외국인 노동자 월 임금은 350만원에서 450만원으로 치솟아 문을 닫는 농가가 많아졌다”고 했다.

○커지는 식량 자급 우려

일부 작물은 이상기후의 타격도 입었다. 추운 날이 3일 이상 지속하면 잎이 상하는 녹차의 경우 한파와 폭염이 반복된 최근 몇 년간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풋고추 역시 작년 말~올해 초 한반도 남부를 덮친 한파로 1월 내내 햇볕을 쬐지 못해 착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 대형마트 채소담당 바이어는 “풋고추는 일반적으로 자가 수정하지만 그렇지 못한 꽃은 벌을 이용해 수정한다”며 “한파로 벌 활동이 줄어들어 풋고추 생산량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실상이 이런 만큼 식량 자급률 급락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양정자료에 따르면 2021년 식량자급률(국내 생산 식량÷국내 소비 식량)은 전년 대비 5.3%포인트가 급락해 역대 최저인 40.5%(완전 건조 중량 기준)로 추락했다. 안병일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종자 매입부터 농산물 수확에 이르기까지 농가의 생산비용이 급증하고 있다”며 “농가가 작물 재배를 중단할수록 식량 자급률은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동=한경제/안시욱/조봉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