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을 믿을 것인가'…1920년대 미국 거부의 삶을 둘러싼 진실

에르난 디아스의 두 번째 소설

1929년 폭락장에서도 돈을 번 앤드루·밀드레드 부부
소설, 자서전, 회고록, 일기 등으로 네 가지 시선 속
서로 다른 모습, 무엇이 진실일까 질문 던져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있을까. 철학, 문학, 영화 등에서 오랫동안 되풀이되어 온 주제다. 에르난 디아스(50)의 두 번째 장편소설 <트러스트>(문학동네)도 바로 이 주제를 다룬다. 2017년 펴낸 첫 소설 <먼 곳에서>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펴낸 <트러스트>로 또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부커상 롱리스트에 오른 것은 물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뉴요커, 에스콰이어 등 수많은 미국 매체가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소설은 ‘광란의 시대’라 불렸던 1920년대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다. 금융계에서 전설적인 성공을 거두며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부부가 주인공이다. 이 부부의 진실은 무엇일까. 책은 먼저 소설 속 소설을 통해 부부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 속 소설가 해럴드 배너가 쓴 이 작품은 억만장자인 앤드루 베벨의 냉혈한 같은 모습을 폭로하다. 부부는 1929년 주식시장 폭락 때도 돈을 벌었다.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덕분이다. 대중들은 분노하고 언론은 그를 뱀파이어 같은 인물이라고 비난한다. 소설의 두 번째 섹션은 앤드루 베벨이 쓴 미완성 자서전이다. 여기서 앤드루 베벨은 자신을 사업가 집안의 피와 재산을 물려받아 재산을 엄청나게 증식시킨 천재 투자자로 그린다. 아내 밀드레드 베벨은 음악과 소설 읽기, 꽃꽂이 등을 좋아하는 가정적이고 몸이 약하며 순종적인 여자로 묘사한다.

책의 나머지 섹션은 각각 앤드루 베벨의 미완성 자서전을 쓴 대필 작가의 회고록과 죽음을 앞두고 밀드레드 베벨이 쓴 일기다. 이렇게 <트러스트>는 소설 속 소설, 자서전, 회고록, 일기 등 네 가지 섹션으로 이뤄졌다. 각 섹션마다 부부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난다. 추리소설을 읽는 듯 몰입감을 더한다.

어떤 것이 진실일까. 소설은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가 진실인 것처럼 하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일기의 내용이 과연 사실일까. 죽기 직전의 사람의 어떻게 일기를 썼을까. 저자가 의도적으로 남긴 이런 의구심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우리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앤드루 베벨은 돈과 권력을 동원해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는 자신의 대필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일은 정답을 맞히는 거야. 언제나. 조금이라도 틀리면, 나는 모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서 내 실수가 더 이상 실수가 아니게 되도록 하네. 현실을 조정해서 내 실수에 맞도록 구부리지.”

저자는 이렇게 우리에게 ‘무엇을 믿을 거냐’고 묻는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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