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피 같은 조합비가 민노총과 몇몇 간부들의 '쌈짓돈'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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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회계가 '노조판 기생충' 키웠다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에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힌 노조가 처음 등장했다. 조합원이 낸 노조비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활동가의 인건비로 빼돌려진 일명 ‘노조판 기생충’ 사건을 겪은 강원 원주시청 공무원노조다. 원주시청 공무원노조는 회계장부 공개를 두고 ‘노조 자주성 침해’라며 반발하는 양대 노총을 향해 “떳떳하다면 왜 공개를 못 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노총 횡포에 시달리다 탈퇴한 원주시청 공무원 노조
양대 노총에 "떳떳하면 회계 장부 공개하라" 직격탄
문성호 원주시청 노조 사무국장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애초에 노조가 회계장부를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조합원이 낸 피 같은 조합비가 민노총과 몇몇 간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원주시청 노조는 2021년 8월 조합원 투표를 거쳐 민노총 소속 전국공무원노조를 탈퇴했다. 이후 작년 5월 전공노 전 원주시지부장 A씨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노조가 전공노 원주시지부 시절인 2018년 5월부터 12월까지 민노총 간부 B씨를 상근직원으로 임의 채용해 월 200만원씩 모두 1600만원의 인건비를 지급한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B씨 채용 전후로 채용공고나 근무확인서, 인건비 지급 내역 공개 등의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기간 B씨는 원주시지부에 출근하지 않고 춘천에 있는 한 민노총 투쟁사업장에서 활동했다. 경찰은 작년 12월 A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문 국장은 “조합원 몰래 엉뚱한 노조 간부 인건비를 대주는 이런 행위가 원주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만연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양대 노총은 자신들이 떳떳하다면 회계장부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원주시청 공무원노조는 오는 15일 고용노동부와 국민의힘이 노조법 개정을 위해 국회에서 여는 민당정 협의회에 참석해 원주시 사례를 증언할 계획이다.
양대 노총에 회계 공개 촉구한 원주시 공무원노조
조합원 몰래 엉뚱한 노조간부에…인건비 대주는 일 전국에 만연
전국공무원노조 원주시지부가 2018년 5월 상근직원으로 채용한 B씨는 민주노총에서 20여 년 활동한 직업 노동운동가다. 당시 원주시지부는 조합업무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B씨를 채용해 매월 200만원을 줬다. 하지만 B씨는 채용된 이후 지부 사무실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민노총 강원본부 비정규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춘천에 있는 환경미화원 해고 투쟁사업장에서 활동했다.원주시지부는 B씨가 활동하는 춘천 사업장의 투쟁채권 구입과 기금 모금, 물품 구입 등에도 140만원이 넘는 돈을 지출했다. 심지어 B씨가 위원장을 맡은 원주의 한 지역축제에도 후원금을 냈다.상근 직원 뽑았더니 다른 곳에서 활동
노동계에서는 “노조 회계가 그만큼 불투명하게 처리되고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성호 강원 원주시청 공무원노조 사무국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지부장이었던 A씨 등 몇몇 간부 외 대부분 조합원은 B씨가 노조 상근직원인 것조차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B씨 채용은 밀실에서 이뤄졌다. 당시 지부 회계규정에 따르면 지부장은 매월 조합비 수입·지출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지해야 했다. 그런데 2018년 2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인력 부족을 이유로 홈페이지 게시가 중단됐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은 B씨가 지부 상근직원으로 재직한 시기(2018년 5~12월)와 겹친다.원주시지부는 B씨 채용과 인건비 지급을 몇몇 간부만 참여하는 운영위 의결로 확정했다. 채용 및 인건비 지출 사실을 조합원에게 공개하는 대의원회의 의결 절차는 생략됐다.
지부가 매년 시행하는 회계감사를 통해서도 이 같은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지부 회계감사위원장 자격으로 2018년 회계감사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C씨는 “지부에서 부탁을 해 할 수 없이 구두로 위원장직을 맡았을 뿐 직접 회계자료를 들여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B씨 채용 사실도 당시엔 알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노조 회계 불투명’ 신고 잇따라
원주시지부의 B씨 채용과 인건비 지급 사실은 2021년 8월 민주노총과 전공노에서 탈퇴하며 비로소 밝혀졌다. 앞서 같은 해 3월 원주에서는 민주노총 건설기계노조가 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시청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자 시청 공무원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민주노총과 전공노를 탈퇴하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후 원주시지부는 총회를 열어 조합원 68%의 찬성으로 전공노 탈퇴를 결정했다. 문 국장은 “전공노 탈퇴 후 과거 지부사무실 서류를 정리하던 중 B씨에게 인건비를 지급한 지출결의서와 통장 이체 내역 등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원주시청 노조는 이듬해 5월 당시 지부장이던 A씨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원주경찰서는 같은 해 12월 A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검찰 요구로 보완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A씨는 본지 질의에 “말씀드릴 것이 없다”고 했다.
문 국장은 “노조원들이 낸 조합비를 엉뚱한 곳에 지출한 사례가 전국 곳곳에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라며 “당국이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벌여 불법행위를 적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26일부터 2월 28일까지 운영한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는 노조의 회계 불투명성과 관련된 다수의 신고가 접수됐다.
5억원 상당의 조합비를 횡령하는 등 회계 비리 의혹을 제기한 조합원을 오히려 제명하거나, 쟁의가 없는데도 기금을 집행해 유용한 사례도 있다. 노조 간부 판공비 지출 관련 증빙자료를 공개하지 않거나 노조비 사용내역 열람을 거부하는 등의 행태도 확인됐다.문 국장은 양대 노총을 향해 “조합원의 알 권리 충족은 물론이고 노조 운영을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했다는 걸 알리자는데 이게 노조 자주성 침해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반문했다. 원주시청 노조는 매월 조합비 사용 내역과 대의원회의 자료 등을 홈페이지를 통해 모든 조합원에게 공개하고 있다.
오형주/곽용희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