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싸우며 맷집 키워"…글로벌 핀테크로 도약한 '이 회사' [긱스]

최성욱 센트비 대표
"이제야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셈"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외환송금 서비스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돈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발생하는 비효율, 불편함을 새로운 기술과 방법으로 풀어내는 핀테크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핀테크에서도 외환은 규제나 운영이 까다로운 분야로 꼽힙니다. 테러 자금, 탈세 등으로 악용될 위험이 많기 때문이죠.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는 쉽지 않은 분야일 것입니다. 외환 핀테크 기업 센트비는 누구보다 까다로운 문제를 풀어가며 지금까지 성장해온 업체로 꼽힙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최성욱 센트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최성욱 센트비 대표가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한경 긱스(Geeks)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다은 기자
“외환송금에 핀테크라니…. 개념도 어렵고, 규제도 안 풀린 상태였잖아요. 벤처캐피털(VC)에는 당연히 인기가 없었죠. 그래서 저희는 늘 절박했어요. 초기부터 겪은 어려움이 지금의 저희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요. 매를 먼저 맞았다고 할까요. ”최성욱 센트비 대표의 말이다. 외환 종합 솔루션 기업 센트비는 초창기 '미운오리' 같은 존재였다. 투자시장의 눈길을 끌 매력적인 아이템도 아니었고, 풀릴 듯 말 듯한 규제는 '위험한 사업'이라는 인식을 줬다. 법이 바뀌고 관련 제도가 정비돼가던 2015~2018년이 큰 고비였다. 규제 과도기에 사업을 시작한 센트비는 이해 관계자들을 만나 직접 설득하고, 제도적인 정비를 거치며 규제를 어렵게 풀어나가야 했다.

'시베리아의 잡초'처럼 버텨온 센트비는 2019년부터 규제 문제가 대부분 해결되면서 성장 가도를 달렸다. 자체 기술인 자동외환헷징시스템(AHS)을 도입해 수수료를 기존의 최대 90%까지 낮추고, 빠른 송금 속도와 간편한 절차로 기존 외화 송금 및 결제 서비스의 단점을 보완했다. 국내 소액해외송금업자 중 유일하게 외환 리스크 관리를 위한 국내외 변호사 등 L&C(Legal & Compliance) 조직을 갖추며 혁신 핀테크 기업으로 성장했다. 거래액과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센트비를 통해 이용자가 절감한 금액은 약 1800억원 수준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 이어 올해 초에는 외환송금업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 진출했다. 최 대표는 "이제야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셈"이라고 표현했다.

외환브로커로 일하며 문제의식 느껴

최 대표는 여러 직장에 근무하며 창업을 결심했다. 근로자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직장에 다니다 보니 월급만 다르지, 삶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사진=뉴스1
창업 전 외환중개사로 일하며 시장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외환거래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문제의식을 가졌고, 이로 인한 비용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에 돈을 보내려면 크게 4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은행에 송금 요청을 하고, 은행은 외환중개은행에 지급을 요청한다. 외환중개은행은 해외의 송금 받을 은행에 입금을 통지하면 그 해외 은행이 이 돈을 수취인에게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송금수수료와 전신료, 중개수수료, 수취료 등 많은 수수료 부담이 발생한다. 최 대표는 이러한 비효율적 방식과 높은 수수료를 없앨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영국 해외송금 핀테크 기업 와이즈(옛 트랜스퍼와이즈)가 업계에서 '핫'했다. 최 대표가 "한국의 와이즈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던 시기에 마침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했다. 외국환거래법을 바꿔 시중은행뿐 아니라 스타트업도 해외송금 서비스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규제와 싸우며 맷집 키웠죠"

그렇게 2015년 9월 센트비는 국내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개인 소액해외송금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 대표는 멤버 두 명과 힘을 합쳐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실제로 규제가 풀리지 않은 시점이었다. 가장 큰 허들이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규제를 피해 비트코인을 해외로 송금하는 사업을 했다. 그러던 중 가상자산 해외송금 사업길이 막히게 됐다. 가상자산 해외송금이 불법이라는 판정을 받은 것. 이후 외국환거래법 개정에 따라 가상자산 송금을 하는 기업은 라이선스를 취득하도록 바뀌었다. 회사는 면허를 받느라 6개월간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다.
어렵사리 라이선스를 취득했지만 또다른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소액 해외송금 핀테크 업체가 법 개정과 함께 금융회사로 분류되면서다. 외국환거래법은 바뀌었지만 벤처투자촉진법이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아 생긴 문제였다. VC는 금융회사에 투자할 수 없게 돼 있다.

"계약서 날인하기 사흘 전 VC로부터 투자를 못한다고 연락이 왔죠. 법적으로 못하게 돼 있대요. 하늘이 노랗더라고요. 60명 정도였던 직원을 25명으로 감축했어요. 남은 직원들에게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간청했죠. "

그는 언론 등을 통해 어려움을 호소했고, 정치권까지 목소리가 닿으면서 벤처투자촉진법이 개정돼 VC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최 대표는 이 과정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하는 등 말그대로 벼랑 끝에서 살아났다고 회고했다.

외환송금에 대한 생소한 인식도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투자자들에게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분야였고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 로컬이 아닌 글로벌을 겨냥하는 사업이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냥 이 사업이 너무도 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빅플레이어 가득한 미국 시장...니치마켓 공략

사업 초기에 여러 고난을 겪으며 다져진 맷집으로 미국 시장에 문을 두드렸다. 외환거래가 많은 미국은 해외송금업계 빅플레이어의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다. 2021년 기준 미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개인 해외송금 규모는 약 727억달러(약 93조원)에 달했다.

"미국은 네거티브룰이라서 하지 말라는 것 빼고는 다 해도 되거든요. 그런데 한번 잘못하면 정말 큰일나기 때문에 훨씬 타이트하게 준비를 했어요. 개인정보보호나 거래정보보안과 관련된 시스템을 더 엄격하게 구축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최성욱 센트비 대표. 센트비 제공
센트비는 미국에서 한국 또는 동남아시아 국가로 송금되는 것들을 선점하는 게 1차 목표다. 미국 시장에서 활약 중인 대다수 해외송금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은 유럽 또는 미국 기업이다. 멕시코 등 남미를 비롯해 규모가 크고 익숙한 시장에 송금 처리를 해주는 사업을 주로 한다. 센트비는 동남아라는 틈새시장을 먼저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연말에는 미국에서도 기업용 해외 송금 및 결제를 할 수 있는 기업 간 거래(B2B)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센트비에 올해는 '준비 기간'이다. 2024년부터 글로벌 플레이어와 경쟁해 2025년 아시아 지역 해외 송금 분야의 1위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 대표는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할 수 있는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 전문가만 믿지 마라"

게티이미지뱅크
핀테크 업계는 국내 창업 환경이 척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22년 10월 기준 전 세계 1200개 이상의 유니콘 중 21%가 핀테크 업체였다. 국내에서 핀테크 유니콘은 토스 외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 대표는 핀테크 분야는 여전히 높은 규제 장벽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핀테크 창업을 고려한다면 자기 사업 관련 규제에 대해 법률 전문가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핀테크는 기존에 있던 영역에 새 기술을 도입을 한다거나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거잖아요. 달리 말하면 핀테크는 거의 무조건 규제에 걸리게 돼 있다는 거예요. 기존 영역이 규제 산업이잖아요.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완벽하게 이해를 하지 않은 상태로 로펌이나 정부 해석만 기대다가 큰 코 다치는 케이스를 많이 봤어요. 긴밀하게 이해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죠. 반대되는 말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이런 힘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낙관성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비관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거든요.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