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쓸 미국산 부품 없는데…'바이 아메리카' 함정 빠진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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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정치적으로는 훌륭한 계산법이었겠지만 경제적으로는 말 같지도 않은 정책이다.”
벽에 부딪힌 '美 보호무역주의'
美, 인프라 착공 계획 연이어 내놨지만
핵심 건설자재·부품, 대부분 해외 조달
미국산만 고집 땐 업계 발목 잡을수도
전체 일자리 수 늘리는 효과도 미미
작년 건설업계 실업률, 역대 두번째 낮아
인력난 허덕여 첫 삽 못 뜬 현장도 속출
얼마 전 미국 피터슨연구소의 한 이코노미스트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카(미국산 제품을 사자)’ 정책을 겨냥해 한 말이다. 바이든 정부는 집권 이후 바이 아메리카를 비롯해 각종 보호무역주의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전 세계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제조업 등 자국의 산업 생태계를 부활시킨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갖다 쓸 미국산 부품이 없는데…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바이 아메리카가 역설적 난관에 부딪혔다”며 “미국은 더 이상 도로와 교량, 항구 등 주요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부품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2021년 말 발효된 인프라법은 미국 내 인프라 사업에 사용되는 철강 등 건설 자재와 부품이 미국에서 생산된 경우에만 연방 예산을 투입할 수 있게 하는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담고 있다. 미국산 비율 규정은 초반 55%에서 점차 늘려 2029년엔 75%로 확대하겠다고 했다.하지만 미국산 부품 사용을 장려하는 구상이 결과적으로 업계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수십 년간 이어온 자유무역 기조 탓에 대부분의 핵심 자재·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해왔기 때문이다. WP는 “바이든 정부의 내수 진작 목표는 수십 년간의 자유무역 체제와 상충해 한동안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최근 미 교통부는 부두 크레인 등 수입 화물 장비 구입에 연방 자금을 사용하겠다는 항만당국의 신청을 기각했다. 미국산 비율 규정을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미국 항만당국협회(AAPA)는 “정부가 선호하는 전기 장비 대부분은 모두 해외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조건을 맞출 수 없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법안”이라고 토로했다.
바이 아메리카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가 미미하다는 분석도 있다. 피터슨연구소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정부의 보호 산업군에서만 제한적으로 있을 뿐 경제 총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프라 건설할 일손 부족
2021년 초 집권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줄곧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국내 산업 생태계를 다시 육성하겠다”고 강조해왔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고, 대내적으로는 일자리를 늘려 노동자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다. 인프라법 외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 3대 국책 공사 법안을 밀어붙였다. 향후 10년에 걸쳐 총 1조5000억달러(약 1980조원)가 투입될 초대형 프로젝트다.하지만 연달아 발표되는 야심찬 착공 계획에도 불구하고 좌초될 위기에 놓인 공사 현장이 속출하고 있다. 건설노동자 인력이 모자란 탓이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작년 건설업계 실업률은 4.6%를 기록해 역사상 두 번째로 낮았다. 아니르반 바수 미국 건설시공사협회(ABC)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금 미국은 메가 프로젝트의 시대”라며 “건설 노동자 수요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다”고 했다.올해 1월 건설업계 시간당 임금은 평균 36달러로 전체 산업군 평균 임금인 시간당 33달러를 웃돌았다. 미국 건설협회에 따르면 인프라 건설 부문에서 올해에만 최소 54만6000명의 근로자가 부족할 것이란 전망이다.
건설인력 훈련 단체 홈빌더 회장인 에드 브래디는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꼴”이라며 “인프라를 세울 사람이 없는 인프라 사업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삽을 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착공 프로젝트가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시공사 클레이코의 밥 클라크 회장은 “최근 인프라 건설 수요는 미국 산업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2차 세계대전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라면서도 “사업비 증가로 건설 속도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바이든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행보는 이 같은 부작용 외에 외교적 질타를 받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해온 자유무역 기조의 근간을 뒤흔든다”고 항의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카토연구소는 “바이든식 보호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한 트럼피즘(Trumpism·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극단적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한 전직 판사는 “트럼프처럼 혐오적인 내용의 트윗만 쏟아내지 않을 뿐 뜯어보면 결국 ‘격식을 갖춘’ 보호무역주의”라고 표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은 아웃트럼프(트럼프를 능가)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