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사퇴" vs "과반승리 확신"…둘로 쪼개진 與전당대회 [르포]

지지자들, 마지막까지 치열한 기싸움
안철수·황교안 지지자 연대 이뤄
"김기현, 대통령실 선거개입 책임져야"
김기현 후보 지지자들과 충돌하기도
사진=안정훈·조봉민 기자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린 8일 경기 고양 킨텍스. 전국에서 모인 당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며 세를 과시했다. 지지자들은 마지막까지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며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장에서는 전날 대통령실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안철수·황교안 후보가 손을 잡았듯 두 후보의 지지자들도 묘한 연대를 이뤄 김기현 후보 지지자들과 응원전을 펼쳤다. 반면 김 후보 지지자들은 김 후보의 높은 지지율을 의식한 듯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 행사장 바깥엔 '2024년 총선 압승은 김기현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총선 승리! 정통 보수정당 재건 황교안', '과거 NO! 미래 OK! 안철수' 등 각 후보 지지자들이 전날부터 걸어놓은 현수막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오전 8시부터 홀로 현수막 약 30여개를 설치하던 A씨(55)는 "전북 전주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 잠도 못 자고 직장도 못 가고 왔다"고 말했다. 자신이 황 후보 지지자라고 밝힌 그는 "부정선거가 눈앞에서 떡하니 이뤄지고 있는데 나는 고사하고 나의 아이들이 이 나라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냐"며 '땅투기 천하지대본 김기현 사퇴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정오가 되자 현장은 마스크부터 모자, 옷까지 저마다 빨간색 복장을 갖춘 지지자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지역 당원협의회 당원들을 태운 버스가 행사장에 속속 들어오면서다.이날 28인승, 45인승 버스 등 약 66대의 버스가 행사장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당원들이 모여 현장을 붉게 물들였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이날 전당대회에는 1만명 이상이 참석했다.

이날 현장 지지자들은 대통령실의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기현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안철수·황교안 후보 지지자들과 과반 득표 당선을 확신하는 김 후보 지지자로 나뉘었다.
사진=안정훈·조봉민 기자
‘대통령실 선거 개입, 강력하게 규탄한다. 분노하는 책임당원’이라는 문구를 크게 적은 전지를 몸 앞뒤로 두른 안종화 씨(71)는 “이번 투표에서 유권자, 책임당원들이 부정선거를 심판해야 한다”며 “그래야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도 더 건전한 당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어제(7일) 기자회견에서 말한 바와 같이 결선투표에 가면 안 후보와 황 후보의 연대가 계속될 것이다”며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안철수 후보만 유일하게 경제인이지 않았나”라며 “법만 다룰 줄 아는 다른 후보들은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했다.

황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홍성택 씨(75)는 “황 후보는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후보를 겨냥해 “(황 후보는) 다른 후보와 달리 논란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 후보 지지자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꽹과리나 북을 치는 지지자 없이 지역 당협에서 온 당원들에게 '국힘의 희망! 김기현'이라고 적힌 빨간 스카프를 두르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대신했다.김 후보 캠프 경기도 조직위원장 박상규 씨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잘 나와 당선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어 지지자들이 차분한 것 같다"며 "네거티브 선거전은 당의 화합을 해칠 수 있다. 결국 한 가족이기 때문에 과열되거나 충돌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한때 황 후보의 지지자와 고성을 벌인 박미화(56) 씨는 “1위 후보인 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에 불과하다”며 “이미 이전에 다 나온 얘기고 야당에서도 문제 삼았지만, 문제없지 않았나”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후보에 대해 “이전에는 황 후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김기현 후보에 대해 부정선거로 이슈몰이하는 것을 보니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사진=안정훈·조봉민 기자
과열된 응원 열기에 지지자들끼리 충돌하기도 했다. 황 후보 지지자들은 현수막을 걸고 있는 김 후보 지지자들에게 다가가 울산 땅 투기 의혹을 밝히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황 후보 지지한다고 밝힌 노모씨(57)는 "김기현 땅 투기가 이재명 대장동 의혹이랑 뭐가 다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안 후보 지지자는 이날 킨텍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던 정진석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국회의원 배지 떼라”며 “부정선거 수사 안 하면 민주당에 또 뺏긴다”고 외쳤다. 이에 정 전 위원장은 웃으며 넘겼지만 안 후보 지지자는 정 의원의 경호 요원에게 세 차례 제지당하고 나서야 물러났다. 한편 천하람 후보의 지지자라고 밝힌 윤상택 씨(86)는 “천 후보처럼 젊은 후보가 당 대표가 돼야 당이 쇄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절부터 보수당을 지지해왔다는 그는 “천 후보는 정치 경험은 많지 않지만, 양심적이고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이 많은 후보들이 한발짝 뒤로 물러나 젊은 사람에게 정치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