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중 사라지는 연주자들…휴가 보내달라는 '하이든의 묘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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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의 마스터피스감미로운 선율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단원들이 연주를 하다 말고 하나둘 무대를 빠져나간다. 현악기 연주자, 관악기 연주자 가릴 것 없이 줄줄이 자리를 뜬다. 단원이 절반 정도 빠져나갔을 즈음에는 급기야 지휘자마저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무대에는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만 남게 된다. 그들만 끝까지 남아 가냘프고 처량한 바이올린 선율로 무대를 마무리한다.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
바이올리니스트 두 명만 남고
줄줄이 자리 떠나는 단원들
지휘자마저 나중엔 자취 감춰
매일 열린 궁정 음악회에 지쳐
향수병까지 앓는 단원들 보며
연주 중간에 자리 뜨게끔 작곡
단원들의 고단함 우회적 표현
작곡가 존 케이지의 피아노곡 ‘4분33초’와 같은 실험적 현대음악 작품 가운데 하나일까. 아니다.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 4분여를 침묵으로 보내는 곡처럼 음악적 일탈을 시도하는 작품이 아니다. 무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클래식 거장이 지은 정식 교향곡이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의 교향곡 45번 ‘고별’이다.하이든이 독특한 구성의 교향곡을 발표한 데는 사연이 있다. 때는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1772년. 하이든의 음악을 유난히 좋아한 후작은 오스트리아에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별궁을 짓고 손님을 초대해 성대한 음악회를 열었다.
문제는 음악회를 날마다 열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별궁에서의 생활이 1년을 넘어가자 악단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단원 중에서 가족과 잠시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네댓 명에 불과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향수병을 앓는 연주자가 늘어나자 하이든은 고민에 빠졌다. 악단의 수장으로서 단원의 어려움을 해소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후작에게 함부로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궁정 음악가라고 하면 고귀한 직함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당시 음악가의 신분은 귀족의 즐거움을 돋우는 역할이 고작이었다. 철저하게 ‘을(乙)’의 위치에 서야 했던 터라 찍소리 한번 내기 어려웠다.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갖춘 하이든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후작의 눈에 잘못 들면 언제 쫓겨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고심하던 하이든의 머릿속에 묘책이 떠올랐다. 후작이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 단원의 고단함을 우회적으로 전하기로 한 것이다.이런 연유로 탄생한 작품이 교향곡 45번 ‘고별’이다. 마지막 4악장에서 단원을 차례로 퇴장하도록 연출한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후작이 연주에 담긴 속뜻을 모를 리 없었다. 공연을 본 후작은 곧바로 하이든의 의중을 파악하고 단원들의 장기휴가를 허가했다. 당시에는 공연장에 전기가 없어 단원이 각자 촛불을 켠 상태에서 하나씩 끄는 행동을 함께했기에 ‘당장 무대를 마치고 떠나고 싶다’는 메시지가 더욱 잘 드러났을 것이다. 단원을 생각한 하이든의 진심이 담긴 작품인 만큼 오늘날에도 이 곡을 연주할 때는 연주자가 자리를 뜨는 퍼포먼스가 이뤄진다.
f#단조 교향곡인 이 작품은 격정적이면서도 서글픈 정서를 담고 있다. 밝은 음색과 생동감 넘치는 리듬이 주로 사용된 하이든의 여타 작품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1악장에서는 넓은 음역을 넘나드는 현악기의 진행과 길게 이어지는 오보에의 선율이 무거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강한 터치와 정돈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기법)으로 살아나는 현악기의 열정적인 선율이 인상적이다. 2악장은 느린 악곡으로 서정적인 선율과 애수가 어우러진 잔잔한 울림이 특징이다.
3악장에서는 우아한 분위기의 도입부를 지나 과감한 셈여림 표현이 두드러진다. 역동성이 살아나는 구간이다. 매우 빠른 템포로 시작하는 4악장에서는 현악기의 섬세한 터치와 호른의 장대한 울림이 어우러지면서 격한 감정을 나타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면 느린 템포의 선율이 등장한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보에와 호른 주자를 시작으로 단원이 차례로 연주를 멈추고 자리를 떠난다. 이때 점차 옅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울림 변화에 집중한다면 작품 특유의 쓸쓸한 정서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