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인간 선언'과 '나는 신이다'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지 4개월여 뒤인 1946년 1월 1일 일왕 히로히토는 '연두, 국운진흥의 조서'에서 "짐과 너희 국민 사이의 유대는 시종 상호 신뢰와 경애로 묶이는 것이지 단순히 신화와 전설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자신은 아라히토가미(現人神·현인신)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인간 선언'이다.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천황의 권위를 떨어뜨려 추후 전쟁의 구심점을 제거하기 위해 이 선언을 하도록 압박했다고 한다.

그런데 천황의 권위가 떨어지자 일부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맥아더를 '신천황'으로 숭배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사이비 종교 교주들의 극악한 실체를 폭로한 넷플릭스의 8부작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가 세간에 화제다.

다큐는 기독교복음선교회(통칭 JMS) 교주 정명석과 오대양 사건의 박순자, 아가동산의 김기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등 자신을 '메시아' 또는 '주님(신)'이라고 칭하며 신도들을 성폭행하고, 노예처럼 착취하거나, 돈을 갈취한 파렴치한 행위를 충격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정명석으로부터 성폭행당한 피해자가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채 그의 추악한 범죄 사실을 폭로한 장면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오죽하면 이 다큐를 본 이원석 검찰총장이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명석 사건에 대해 "엄정한 형벌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을까.

다큐를 연출한 MBC 조성현 PD는 JMS 탈출 신도 카페인 '가나안'에 올린 글에서 "현재 대한민국에 자신이 메시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100명 넘게 있다"고 했다.

이들을 모두 찾아내 인간 선언을 시킨다면 사이비종교가 근절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맥아더 신천황'처럼 또 다른 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나는 신이다' 같은 고발 저널리즘을 통해 꾸준히 사회적 관심을 환기해야 하는 이유다.

피해자가 직접 녹음한 교주의 성폭행 당시 음성, 교주를 위해 만들어진 여성 신도들의 나체 동영상 등이 여과 없이 방송된 것을 놓고 일부 언론은 '청불(청소년 관람 불가)'로 등급이 매겨졌어도 너무 지나쳤다고 지적했다.

팩트라는 이유로 뭐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방식은 2차 가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골적인 성행위 증언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은 선정성에 치우친 자극적 연출이라고도 했다.

그동안의 보도 관행으로 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기사 댓글 창에는 "만약 구체적이고 적나라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주목을 받았겠나?", "제대로 묘사를 안 하고 두루뭉술하게 다뤘다면 어떤 사건이 있었나 보다 하고 또 그냥 지나치지 않았겠느냐?"는 반문이 줄을 이었다.

조 PD는 한 방송에 출연해 "반사회적인 어떤 행동을 친사회적으로 보여줄 방법은 없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극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는 등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