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9100조원 예산안 발표…'부자증세'에 공화당 반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6조9000억달러(약 9100조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을 발표했다. 중국 견제를 위한 국방 예산과 서민을 위한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고, 고소득층·대기업 증세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게 골자다.

바이든 행정부가 예고한 부자증세 규모는 향후 10년간 5조5000억달러(약 7300조원)에 달한다. 다만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어 정부안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억만장자세’ 도입

9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예산안을 발표했다. 10년간 2조 9000억달러(약 3800조원)의 연방정부 적자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재원은 고소득자와 기업의 주머니에서 충당할 계획이다. 먼저 정부 예산안은 소득 상위 0.01%인 미국인들에게 최소 세율을 25%로 부과하는 ‘억만장자 최소 소득세’를 제안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소방관, 교사보다 세금을 덜 내는 억만장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연 소득 40만달러(약 5억3000만원) 이상 납세자의 소득세 최고 세율은 37.0%에서 39.6%로, 메디케어 부가세율은 3.8%에서 5.0%로 올리기로 했다.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온 수익에 부과되는 세율도 10.5%에서 21%로 인상된다. 펀드매니저들의 성과급과 부동산 투자자, 암호화폐 투자자 등에 대한 세금 부담도 높아진다.트럼프 행정부 시절 35%에서 21%로 낮췄던 법인세율은 다시 28%로 오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득을 본 석유·가스 회사의 세제 혜택은 줄어든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자·대기업 증세로) 향후 10년간 4조7000억달러의 세수와 8000억달러의 절감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연 소득 40만 달러 이하 시민에겐 세금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또 지난해 종료됐던 자녀 1명당 최고 3600달러의 세액공제도 되살리기로 했다.

○中 견제 내용 담겼다

미 정부 중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곳은 국방부다. 올해는 전년 대비 3.2% 증가한 8420억달러(약 1111조원)로 역대 최대 규모를 책정했다. 백악관은 핵전력 강화를 뜻하는 ‘핵 억제력 유지’를 위해 377억달러를 책정했다. 보건 및 인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예산은 1440억달러로 전년보다 11.5% 늘렸다. 중국을 견제하는 방안도 공개됐다. 국방 부문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주둔을 늘리고 마셜제도와 미크로네시아, 팔라우 등 태평양 섬과의 자유연합협정(CFA)을 갱신하는 등 내용이 담겼다. 중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다. 미 상무부는 미국의 자본과 전문 기술이 중국의 첨단 기술 투자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위해 국제무역청(ITA)에 500만달러를 배정했다.

다만 예산 편성 및 처리 권한 가진 하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앞서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 상향안을 놓고 정부 지출 삭감을 요구해왔다. 바이든 행정부의 지출 증대와 증세는 이에 정면으로 반하는 계획이라는 평가다.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은 정부 예산안을 두고 “무모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정부 예산안이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도 고령화가 진행되며 사회보장지출이 급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로이터는 “미국 인국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인 5명 중 1명이 2030년까지 정년이 된다”며 “부자증세가 실현돼도 향후 10년간 매년 1조 달러 이상 적자가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