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용후핵연료는 미래 에너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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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승 대덕 과학기술협동조합 이사장·前 한국원자력연구원장요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방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핵심은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다. 이것은 쓰고 버리는 연탄재와는 다르다.
사용후핵연료에는 아직 타지 않은 우라늄이 90% 이상 남아 있고, 새로 생긴 연료 물질인 플루토늄 등 초우라늄 원소(TRU)가 1~2% 정도다. 실제로 버려야 할 폐기물은 약 8%에 불과하다.8%의 불순물을 분리해 처리하고, 남은 연료 물질을 재사용함이 당연하다.
사용후핵연료엔 과학기술 사안 외에 국제 정치 이슈가 끼어든다. 1970년대 초까지는 원자력발전의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으로는 핵무기 제조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국제사회에서 상용 원전 내 플루토늄 관련 기술 통제가 매우 엄격해졌다. 또 안전 및 환경 규제가 획기적으로 강화되면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의 경제성 확보가 힘들어졌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원전을 이용해야만 한다. 대책 없이 쌓여가는 사용후핵연료를 적절히 처분하지 않으면 원전 이용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 내 소량의 불순물을 분리해 처분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연료 물질은 회수해 재활용하는 기술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고준위폐기물 부피를 수십 분의 일, 독성은 수백 분의 일로 줄일 수 있다. 최종적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필요 면적을 획기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는 뜻이다.플루토늄을 취급하는 기술은 국제적으로 아주 민감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과 긴밀히 협력하며 파이로프로세싱이라고 불리는 건식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했고, 실증 연구 및 상용화를 남겨두고 있다. 플루토늄은 원자력 전지의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달, 화성 탐사 등 극한 우주 환경에서 에너지 공급을 위한 핵심 원소다. 플루토늄의 평화적 이용 기술은 성큼 다가온 우주 경제 시대의 기반 기술이 될 것이다.
초미세 반도체, 챗GPT 등 인공지능도 원전이라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력 공급원 없이는 개발하기 어렵다. 인류는 결국 훨씬 깨끗하고, 안전하고, 경제적인 원자력 공급을 이뤄낼 것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면적 감소와 함께 미래 에너지 확보를 위해 파이로-SFR에 관한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외교적 노력을 증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