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K컬처가 세계 문화 선도하려면

대중·순수문화예술의 균형 중요
문화자본 위한 정책적 노력 필요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K컬처는 세계 문화를 선도하고 있을까.’ 모호한 질문이지만, 필자는 명확하게 ‘아니요’라고 답한다. BTS에서 만개한 K팝, 익숙한 박찬욱과 봉준호 외에 낯선 황동혁 감독이 전해준 수상 소식은 우리에게 자긍심을 주었다. 이런 일들이 우리 문화예술산업이 일류라는 증거로 확대 해석될 수는 없다. 단순한 착시 현상일 뿐이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국내 시장 진출로 우리 방송 플랫폼은 생존을 위해 ‘오징어 게임’을 치르고 있다.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작품은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 소식은 접해본 기억이 없다. 뮤지컬 관객은 안정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성공한 창작 뮤지컬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순수예술 분야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오페라 한 작품이라도 관람하고 생을 마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한 재벌 회장의 죽음이 있기 전까지 우리는 그림에 관심이 있기나 했나. 우리는 1년 동안 몇 편의 문학 소설을 읽을까. 조금 과격하게 얘기해서 우리 문화예술산업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양극화 문제는 문화예술산업의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도 심각하다. 비극적으로, 정부는 이런 현상을 방관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무관심하다. 시장이 형성된 대중문화 중에서도 드라마는 큰 성과를 내지만, 다큐멘터리는 시장이 없는 상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는 지식재산권 확보조차 어려운 제작 현실이란 참담함이 숨겨져 있다. 자생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 구조가 없다는 의미다. 시장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은 클래식 음악, 오페라, 그림, 연극 장르는 국내 창작물은 물론이고 해외 고전 명작도 소비할 기회조차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여러분은 오페라 오리지널 팀 내한 공연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대중문화예술이든 순수문화예술 분야든 생산과 소비는 경영적 측면에서 이뤄진다. 국가는 국민에게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할 의무를 지고 있다. 비교적 쉽게 취향이 형성되는 대중문화예술에 비해, 순수문화예술의 취향 형성을 위해서는 교육과 투자가 필요하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하는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 형성돼 있어야 교양·문화 국민으로 진화할 수 있다. 오페라나 발레, 그림을 즐기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어떤 문화예술 장르를 소비했는지가 성장한 뒤 속하는 계층을 결정한다는 것이 부르디외의 주장이다. 그래서 취학 연령 전후의 예체능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순수예술 분야의 명작을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공적자금이나 기부금 제도 등을 활용해 정부 기관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대기업, 독과점 기업 등이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을 운영하고, 좋은 공연과 작품을 유치해 국민이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경제적 풍요가 문화적 빈곤과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현재 우리의 국격이다. 소수 대중문화예술에 편중된 성과를 우리 문화예술 수준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시장이 형성된 대중문화예술 분야는 더욱 다양하게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하고,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순수문화예술 분야는 시장 형성의 필요조건인 문화자본 형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뮤지컬 넘버를 따라 부르는 것처럼, 오페라 아리아를 따라 흥얼거리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 2023년이 문화 선진국 원년으로 선포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