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들고, 찌르고…캠퍼스 점령한 '팜므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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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스포츠 동아리 '女風'“축구화 끈을 공에 맞춘다는 느낌으로 차야 합니다. 발가락이 먼저 닿으면 공에 힘이 실리지 않아요!”
정원 못채우던 여자축구 동아리
지원자 급증에 선발 테스트까지
골때녀·피지컬100 등 영향에
펜싱·역도 등 몸 쓰는 종목 인기
지난 9일 서울대 종합운동장. 여자 축구 동아리 회원들이 주장의 코치에 맞춰 공을 다루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날 훈련에 참여한 29명의 선수 중 14명은 정식 회원이 아니다. 세 차례 테스트를 모두 통과해야만 동아리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장 김도은 씨(21·노어노문학과)는 “이번 학기엔 지원자가 유독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며 “오늘 참가 후보자 중 절반이 탈락할 수도 있다”고 했다.
○경쟁률 치솟아…지원자 간 경쟁까지
코로나19가 사그라들면서 활기를 띠고 있는 대학 스포츠 동아리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팀 매니저 역할에 머무르던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주도하는가 하면, 신규 가입을 위해 동아리 문을 두드리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여자 축구 동아리는 전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서울대 여자 축구 동아리(SNUWFC)는 이번 학기 10명을 선발하는데 지원자 20명이 몰려 경쟁률이 2 대 1을 기록했다. 모집 인원보다 지원자가 많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여자축구부는 각각 경쟁률이 3 대 1을 넘겼다.
후배들에게 가입을 읍소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친다. 패스, 드리블 같은 기본기는 물론 축구 규칙 및 프리킥 능력도 평가해 선발한다. 외국인 유학생까지 가세해 경쟁 역시 치열하다. SNUWFC 부주장 정서본 씨(20·전기정보공학부)는 “테스트 때 보니 외국인 교환학생들은 확실히 공을 다뤄본 경험이 풍부했다”며 “신입 후보들이 가입 시험에 합격하려면 개인 레슨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여자 축구 동아리의 인기는 2021년 6월부터 방영 중인 ‘골 때리는 그녀들’과 2021년 카타르 월드컵 등 축구 붐과 관련이 있다. 특히 ‘골 때리는 그녀들’은 여성 출연진이 주축이 돼 축구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고려대 여자 축구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하유선 씨는 “과거엔 유년기에 축구를 접해본 경력자 중심으로 지원했다면 요즘엔 TV 프로그램을 통해 축구에 관심을 두게 된 지원자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체조·펜싱도 ‘방송 특수 효과’
여성의 스포츠 참여 열기는 축구를 중심으로 펜싱, 역도 등 다른 종목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달 7일 서울대에서 열린 ‘봄 동아리소개제’에서도 여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펜싱 동아리가 대표적이다. 이날 오후 2시께부터 1시간 동안 이곳 부스를 방문한 학생 100명 중 여학생이 68명으로 남학생(32명)의 두 배를 넘었다. 펜싱은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주인공이 펜싱 선수로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체조부 등은 남성과 여성이 힘 대결을 펼치는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피지컬: 100’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체조부 소속 권민혁 씨는 “부스를 방문한 학생 중 20명이 가입 문의를 했는데 절반이 여성이었다”며 “훈련이 고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다들 의욕이 넘쳤다”고 했다.여성이 스포츠를 마음대로 즐기기에는 여전히 ‘벽’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축구화 등 여성 전용 스포츠 용품을 구하는 것부터 장벽이다. 한 축구 동아리 부원은 “중고생용 남자 축구화를 대신 쓰는데 사이즈가 안 맞지만 불편함을 참고 쓴다”고 털어놨다.차별 논란도 심심찮게 불거진다. 남녀서울권 대학 축구동아리 연맹(SUFA) 리그에 참여했던 A씨(22)는 "주말에 열리는 경기는 남자부에 우선순위를 주고, 여자부 경기는 조별리그부터 계속 평일 저녁에 열리다 4강 토너먼트가 돼서야 주말로 배정받았다"며 "개인 사정으로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아 8명이 한 팀으로 경기에 나선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명왕성 한신대 특수체육과 교수는 “한국 체육계를 총괄하는 대한체육회는 임원진 열 명 중 아홉 명이 남성이란 사실부터가 불균형을 말해준다”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여성이 소외되지 않도록 인적 구성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해련/이광식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