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문 회장 "노동계 생떼에 中企 '엑소더스'…노동개혁 골든타임 살려야"

화물연대 파업 정부 원칙 대응에 中企 ‘이제 정상국가됐다’안도
“규제 개혁위해 공무원 수 줄여야…수십년 미활용 규제 산더미"
尹방일 계기로 日과 기술협력 강화를…은행 대출금리 낮춰야
13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는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허문찬 기자
"역대 정부 모두 노동개혁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이번엔 달라져야한다고 봅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사진)은 13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노조 파업시 ‘강건너 불구경’했던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집행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이제 정상 국가로 돌아왔다’고 느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지난달 제27대 중기중앙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2007년 노무현 정부때부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까지 4대 정권에 걸쳐 경제단체장을 역임한 사상 첫 '민선 4선'회장이다. 그는 화물연대 파업,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파업 사례를 들며 "대기업 중심 노조의 파업으로 많은 협력업체들이 '줄도산'공포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역대 정부 모두 노동개혁 필요성은 인식했으나 부정적 여론, 노조의 거센 반발로 동력을 상실해 궁극적인 개혁엔 실패했다"며 "국민 여론도 우호적이라 이번에 꼭 노동개혁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정부가 가장 잘한 정책으로 ‘근로 시간 유연화 등 노동 개혁 원칙 수립’(57.0%)이 꼽힌 사례를 그 근거로 들었다.

세부적으론 경직된 근로시간 규제(주52시간제), 처벌 중심의 산업재해규제(중대재해처벌법)을 조속히 완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제도와 실업급여 제도가 일부 악용되고 있어 중소기업 인력난에 기름을 붓고 있다며 조속한 개선을 촉구했다.

김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규제 개혁 의지가 일선 현장에서 발빠르게 집행되지 않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며 ‘공무원 수’문제도 언급했다. 규제 완화를 명목으로 규제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만 늘리는 것을 ‘파킨슨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 이명박 대통령이 ‘규제를 확 줄이려면 공무원 수를 줄여야한다’고 했던 말을 상기시키며, "필요없는 규제들이 많아질수록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는 인증·인허가 등 각종 규제 개혁과 관련해서도 "역대 정부를 보면 뒤로 갈수록 규제 개혁의 추진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통령이 임기 끝까지 직접 챙긴다면 성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그는 윤 대통령 방일을 계기로 일본 중소기업계와 교류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과의 기술협력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메이드 인 코리아(한국산)’제품에 대한 세계적인 평가가 달라졌다며 중소기업들도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란봉투법 "대통령 거부권 요청할 것"...韓日 기술 교류 확대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글로벌 신용경색 우려가 나옵니다. 중소기업의 금융여건은 어떻습니까.
“중소기업 대출 중 담보 혹은 보증 비중은 86%나 됩니다. 부도가 나도 사실상 큰 손해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대출금리가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있어요. 예금 금리는 크게 떨어뜨려놓고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소기업의 이자부담을 경감시켜주는 ‘2차보전’사업을 확대해야합니다.”

▷경제계에서 반대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거대 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할 태세입니다.
“파업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경제계는 입법 중단을 야당에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만약 야당이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방법이 없어요. 경제단체들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요청할 것입니다.”▷한일관계가 좋아지고 있는데, 중소기업 입장에서 어떤 협력을 모색하고 있나요.
“일본은 부품 소재 장비 분야에 오랫동안 축적된 기술 노하우가 많습니다. 모든 기술을 우리가 국산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소기업간 한일 교류를 강화해 우리가 얻어올 것은 얻어와야 합니다. 일본 중소기업단체연합회와도 곧 만나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입니다. 2012년 여수엑스포 당시 중기중앙회장으로 일본 재계에 요청해 많은 일본 중소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교류를 굉장히 원하고 있습니다.

"日처럼 유연근무"주장하다 불매운동 압박 당하기도...'투잡'근로자 피해 심각

▷정부가 최대 주 69시간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근로시간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중소기업계 반응은 어떤지요.
“중소기업 입장에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연장근로가 ‘주’단위로 묶여 최대 주 24시간 연장근로할 수 있지만 일본은 ‘월’단위(월 최대 100시간)로 연장근로를 폭넓게 배분해 바쁠땐 더 몰아서 일하고 쉴때 몰아서 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절반 가량은 대기업 수탁기업이라 납기가 몰릴땐 엄청 바쁩니다. 주52시간제로 충분한 기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도 많습니다. 많은 근로자들이 한 직장에서 돈을 더 벌고 싶어도 연장 근로가 막혀 투잡을 뛰고 있는 현실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우리도 일본처럼 최대 월 100시간 연장 근로가 가능해야한다"는 주장에 반발도 많습니다.
“당시 일부 네티즌들이 제 말을 오해하곤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와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월 100시간 추가 근로가 결코 현재 정부 개편안(최대 주 69시간 근로제)이나 현 주52시간제보다 노동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할때 더 몰아서 일하고 쉴때 몰아서 쉬어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미국은 근로시간 규제가 한국보다 훨씬 약합니다. 또한 정부 개편안은 모두 노사 합의가 전제조건이지 강제가 아닙니다. 노조원이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다면 연장근로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중소기업들은 요즘 인력난때문에 오히려 근로자 눈치를 봅니다.”

과거 '강건너 불구경'하던 정부...더이상 韓 떠나는 기업 없어야

▷화물연대 파업이나 노조의 불법파업이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많은 피해를 주나요.
“화물연대 파업으로 시멘트 운송차량(BCT)이 멈춰서면서 국내 900여개의 중소레미콘업체들의 매출이 급감했고 물류가 막히면서 수출 중소기업들도 발이 묶여 전체적으로 1조 6000억원(정부 추산)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불법 파업으로 협력사 7곳도 도산했습니다. 대기업은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금전적 손해를 입는 정도에 그치지만 중소기업은 부도 위기를 맞습니다. 중소기업은 노조 조직률이 낮지만 절반 가량이 대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받아 일하는 수탁기업이기 때문에 대기업 파업의 피해는 1차, 2차, 3차 협력사로 ‘도미노’처럼 번집니다.”

▷정부의 대처에 대한 중소기업계 반응이 궁금합니다.
“노조의 불법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법과 원칙으로 대처하는 부분이라던지, 불투명한 회계에 대해 지적한 것은 잘한 것 같습니다. 특히 과거 노조 파업시 ‘강건너 불구경’했던 경찰이 불법 파업에 대해 정당한 법집행을 하면서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이제 정상 국가로 돌아왔다’고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최근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정부가 가장 잘한 정책으로 ‘근로 시간 유연화 등 노동 개혁 원칙 수립’(57.0%)이 꼽힌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높은 반면, 노조는 불만이 많습니다.
“막말로 지금까지 노조가 우위에 있지 않았나요. 우리나라가 법치국가인데 그동안 노동계가 ’떼법’을 쓰면서 사용자측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양보해왔습니다. 지난 10일 경제단체장으로는 유일하게 한국노총 ‘창립 77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노동계가 굉장히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자리에서 729만 중소기업을 대표해 ‘노동과 고용의 균형이 잡혀야 경제도 발전하고 근로자의 복지도 올라가는 것이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노동계가 지금처럼 계속 투쟁일변도로 대응하면 기업들은 사업을 못하고 한국을 나갈 것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중소기업이 잘돼야 고용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13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는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허문찬 기자

DJ·YS·MB정부 정책 중기인들 호평...文 정책은 노동계에 가장 우호적

▷12년간 중기중앙회장을 맡아오시면서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역대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 과정을 지켜보셨는데요. 평가를 해주시죠.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정부때 기업들의 호응이 좋았습니다.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가장 문제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 정치하기보다 정권을 잡기위해 정치를 하면서 오락가락했다는 점입니다. 역대 정부 모두 노동개혁 필요성은 인식했으나 부정적 여론, 노조의 거센 반발로 동력을 상실해 궁극적인 개혁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엔 달라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이 노동개혁의 적기라고 보십니까.
“적기는 무슨, 한참 늦었다고 봅니다. 많은 중소기업이 노동문제로 어려움을 겪어 한국을 떠나기 시작한 지 오래됐습니다. 국민적 여론도 우호적이라 이번에 꼭 (노동개혁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봅니다. 중기중앙회 최근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당면한 최우선 해결과제로 ‘경직된 노동시장’(34.0%)이 1순위로 선정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변경, 실업급여 제도 악용 심각

▷외국인 근로자의 잦은 사업장 변경도 중소기업의 적잖은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월급을 더 받기위해 무리하게 입국 초기 이직을 요구하고 태업을 벌여 많은 중소기업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한 중소기업에선 외국인 근로자가 입사 후 보름여만에 ‘지인이 있는 수도권 회사로 옮기겠다’며 삭발하고 태업을 해 결국 대표가 근로자를 보내줬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42.3%가 첫 직장 근무기간이 1년 미만입니다. 특히 지방 중소기업일수록 자국 인력이 몰린 수도권으로 옮겨달라며 태업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 생산 차질의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제가 많은 유럽국가를 가봤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사업장 변경’제도가 악용되는 곳은 없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도 한 곳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사업장 변경 횟수를 줄이고 연수기간을 늘리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각합니다. 실업급여 제도 남용도 그 원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청년들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사회에서 여러가지 직업을 경험해 보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 실업급여 제도는 청년들에게도, 중소기업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현재 실업급여 실수령액은 월 185만원으로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제한 최저임금 실수령액(180만원)보다 오히려 높습니다. 특히 어느 직장이든 6개월(180일)만 일하면 반복 수급이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해도 6개월이 지나 숙련도가 생길만하면 ‘해고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선 개선 속도가 더디고 규제 완화를 명목으로 공무원이 늘어나는 사례도 있습니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이 ‘규제를 확 줄이려면 공무원 수를 반으로 줄여야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 기억이 납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만들어 놓기만 하고 이제껏 누구도 활용하지 않은 10년, 20년된 규제가 있는 것을 찾아보라.어마어마하게 많을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기업들은 이런법 저런법에 걸릴까봐 아무것도 못합니다. 정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해야지, 필요없는 규제만 잔뜩 만들면 비용만 증가하고 기업 경쟁력도 떨어집니다. 특히 인증·시험규제도 심각합니다. 공공기관 예산이 기업들로부터 거둔 인증·시험 수수료로 충당됩니다. LED의 경우 품목별로 따로 받고 시간이 지나면 또 받아야하는 등 중복인증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규제개혁은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역대 정부를 보면 뒤로 갈수록 추진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정부는 다를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달라진 '메이드 인 코리아'대우...대중소 상생 확대하고 수출 저변 넓혀야

▷코로나 사태 이후 각국의 보호주의 강화.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미국을 가보면 K팝, K뷰티, K드라마 등 K아이템이 확산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한국산)’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달리 굉장히 좋아졌다. 일본을 능가하는 아이템도 많다.중소기업도 국내 시장만 보지말고 해외로 눈을 넓혀야합니다.”

▷대·중소기업간 상생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지난해 5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중기중앙회 60주년 기념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한 도금업체의 딱한 사정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정 회장이 그 회사 대표 ‘명함’을 받아가더니 나중에 그 회사가 못받은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모조리 돌려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구축과 판로 개척에 앞장서는 등 모범 상생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원래 대기업의 창업주들은 원가 구조를 훤히 꿰뚫고 있기에 중소기업 납품가를 함부로 깍지 못했죠. 하지만 2~3세 경영 체재로 넘어오면서 구매담당 임원들에 휘둘려 상생 경영을 놓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협력사의 경쟁력이 곧 대기업의 경쟁력입니다. 납품단가연동제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만큼 상생문화가 더 퍼지길 기대해봅니다.”▷첫 민선 4기 회장으로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14년만에 법제화에 성공한 납품단가 연동제는 이제 시행령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가 선진국 시행 사례가 없는 이유는 납품 계약서에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단가에 반영하도록 좋은 관행이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승계 제도에선 중소기업계가 정부와 국회에 20년 연부연납을 요청했는데, 상속세에는 반영됐지만 증여세에는 빠져있습니다. 협동조합 제도 역시 담합으로 오해받는 부분이 많습니다. 4년간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 기존 추진했던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을 할겁입니다.”

안대규/민경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