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시골 구하기' 대작전…마을 전체를 호텔로 만들어라 [책마을]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

시마다 슌페이 지음
김범수 옮김 / 황소자리
258쪽|1만8500원
한동안 방치됐던 대갓집이 젊은 감각에 맞는 고민가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황소자리
일본에 고스게촌(小菅村)이란 산골마을이 있다. 도쿄에서 직선 거리로 75㎞ 정도 떨어져 있다. 하지만 차로 가려면 도쿄에서 2시간, 대중교통으로는 3시간 넘게 걸리는 격오지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은 길이 끊겨 산속에 갇혀버리는, 육지 속의 섬이나 다름없었다.

인구도 계속 줄었다. 1950~60년대만 해도 2000명 넘게 살았다. 지금은 약 700명인 산다. 그런 고스게촌이 요즘 ‘지방 재생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150년 된 대갓집과 쓰러져가던 절벽 위 집이 호텔로 부활했다. 마을 길은 호텔 로비가 되고, 동네 사람들은 호텔 지배인과 가이드가 됐다. 주민이 생산한 먹거리는 호텔 식당의 최고급 요리로 변신하고, 만년 적자였던 마을 온천은 호텔 목욕탕으로, 물산관은 호텔 숍으로 거듭났다.

그 배경엔 사토유메라는 지역 재생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가 있다.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는 그 사토유메를 설립한 시마타 슌페이(嶋田俊平)가 쓴 책이다. 그는 교토대에서 삼림과학을 공부한 뒤 환경보존과 마을 조성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회사에 입사해 9년 동안 일했다. 이후 독립해 2013년 사토유메를 세웠다. 2014년 1월이었다. ‘고향의 꿈을 현실로’라는 슬로건 아래 전국 각지의 재생사업을 돕던 저자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고스게촌사무소 직원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그가 “마을에 조금 곤란한 일이 있으니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역대 촌장들이 30년간 중앙정부에 진정을 넣어 터널을 뚫고 근처에 휴게소까지 지었지만, 그곳을 어떻게 운영해야 마을에 보탬이 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도로변에서 한참 떨어진 산 중턱에 덩그러니 서 있는 휴게소를 본 저자는 절망감을 느꼈다. 내세울 특징도 편리함도 없는 이 산골에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한마디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래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교통마저 불편한 이곳에 사람들이, 그것도 젊은 고객층이 찾아오도록 할까? 며칠을 고민하던 그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마가와 강 발원지인 이 마을에는 산천어와 곤들매기 같은 민물고기뿐 아니라 버섯과 고추냉이 등 농산물이 풍부했다. 마을의 신선한 먹거리를 이용해 ‘발원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면 승산이 있을 듯했다.

또 자판기를 설치해 고스게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채소와 가공식품, 맥주 등 선물꾸러미를 살 수 있도록 하는 등 공간 기획부터 상품 전시, 체험프로그램 같은 모든 콘텐츠를 색다르게 꾸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개장 첫날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휴게소 식당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연예인이 지방에 살면서 현지를 체험하는 무대로도 활용됐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고스케촌 촌장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엔 마을을 살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서둘러 인구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앞으로 30년 안에 고스게촌은 사라져버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마을을 지키려면 매년 40명 정도의 이주자, 그것도 20~30대 이주자를 확보하고 출생률도 1.4~1.6명으로 높여야만 했다. 마을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뭔가 매혹적이고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고민하던 그의 눈에 효고현 단바사사야마라는 곳에 들어선 고민가 호텔이 화제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려간 그곳에서 마을을 살려낼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만들어 경제를 선순환시키자.”

지은 지 150년 된 빈집 하나를 첫 대상으로 낙점했다. 마을 어른들이 ‘대갓집’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여기던 저택이었다. 나아가 가파른 절벽 위에 쓰러질 듯 서 있던 작은 집 두 채도 호텔 후보지가 됐다.

호텔 개장을 6개월 앞두고 매니저를 구하는 광고를 냈다. 예상외로 젊은 인재들이 몰렸다. 화려한 이력을 지닌 그들이 개장도 안 한 촌구석 호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놀랍게도 그들은 고스게 마을에서 ‘이상적인 삶’을 보았다고 말했다. 직업보다 먼저 미래지향적인 생존 방식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렇게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라는 콘셉트 아래 2019년 8월 17일 호텔이 문을 열었다. 주민 전체가 호텔 지배인이자 치유의 숲 가이드로, 식자재 생산자이자 호텔 온천 및 숍 운영자로 참여한다는 이야기가 화제를 일으켰다. 도쿄에서 온 방송사 카메라와 신문, 잡지 등 언론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1박에 3만엔(약 29만3000원)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예약 문의도 빗발쳐서 개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듬해 봄까지 예약이 찰 정도였다.

저자와 고스게촌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고령화와 젊은 인구 유출, 지방 경제력 약화라는 비슷한 현실을 마주한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고스게촌 이야기를 한국 어느 마을에나 적용할 수 있을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고스게촌은 깊은 산골마을이었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었다. 또 고스게촌에서도 아무 집이나 호텔로 바꿀 순 없었다. 요즘 사람들이 하룻밤 지내고 싶은 매력적인 옛날 집이어야 했다. 부서지지 않고 잘 관리된 집이어야 했다. 음식도 시골 음식을 그대로 내놓지 않았다. 현지의 식재료를 썼지만 매우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요리를 내놓았다.

임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