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빴던 美 기준금리 인상 1년…'Fed 무용론' 왜 나오나 [한상춘의 World View]

한경 DEEP INSIGHT

1980년대 초 이어 2번째 강력한 긴축에도
1월 인플레 3대지표 모두 시장 예상 웃돌고
'고도침체' 신조어 나올만큼 침체 없이 견조

의도했던 효과 못 거둔 Fed '무력화 국면'
인플레 파이터 고집하기보다 제3 대안 필요
한은, 美 따라가지 말고 경기부양 무게 둬야
그래픽= 이은현 기자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올린 지 1년이 됐다. Fed는 지난해 3월 17일 0.25%였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빅스텝(0.5%포인트 인상),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계기로 빅스텝으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면서 올해는 ‘금리 인하’ 기대가 나올 만큼 피벗(pivot), 즉 방향이 전환됐다.

세계 중앙은행 격인 Fed의 통화정책은 곧바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도 Fed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20년 이상의 ‘저물가-저금리’ 국면이 몸에 익은 경제주체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도 혼란을 겪었다. ‘대(大·great)’자가 붙을 정도로 격변과 혼선을 빚은 만큼 1년이 지난 시점에 드는 의문은 ‘과연 인플레이션이 잡혔는가’ 하는 점이다.

금리 올리는 과정서 발생한 미시적 디폴트

올해 경제 실상이 반영된 통계가 지난달부터 속속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의 인플레 3대 지표인 소비자물가(CPI) 상승률, 생산자물가(PPI) 상승률, 개인소비지출(PCE) 가격 상승률이 모두 예상을 웃돌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우려해온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 즉 거시적으로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미시적으로 디폴트가 발생하고 있다.

더 어려운 점은 실물경제의 동맥인 금융시장이 난맥상을 보임에 따라 Fed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력화(ineffectiveness)’ 국면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3월 Fed 회의를 앞두고 제롬 파월 의장이 의회 증언에서 강한 매파적 발언을 한 이후 2년물 금리와 10년물 금리 간 역전 폭이 100bp(1bp=0.01%포인트) 이상으로 확대된 것이다.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 ‘기대 가설’ ‘분할시장 가설’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이 음(-)의 기울기(단고장저)를 나타내면 경기가 차입 비용 증가로 침체 국면에 접어들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수익률 곡선이 양(+)의 기울기(단저장고)를 나타내면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지속돼 경기가 회복될 확률이 높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수익률 곡선 이론대로라면 미국 경제는 그레이트 리세션, 즉 대침체에 빠졌어야 한다. 하지만 1월 말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을 상향 조정한 것을 계기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종전의 경기순환이 무너졌다는 ‘노 랜딩’에 이어 기다리는 경기 침체는 언제 오는 것이냐는 ‘고도 침체(아일랜드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 빗댄 Godot recession)’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견실하다.

실물과 금융이 따로 노는 이분법 현상을 그대로 놔둬서는 정책당국뿐만 아니라 시장에 혼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20년 전 Fed는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신화로 발생한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으나 중국의 국채 매입으로 왜곡된 수익률 곡선을 잘못 파악해 ‘금융위기’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모든 경제정책 가운데 통화정책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통화정책은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생명인 ‘선제성(preemptive)’을 잘 지켜야 한다. 통화정책 목표가 다수일 때는 ‘틴베르헌 정리(Tinbergen theorem)’에 따라 목적에 적합한 수단을 가져가야 한다. 정치적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지켜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지난 1년간 1980년대 초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한 금리 인상을 추진했음에도 의도한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한 것은 이 모든 전제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플레 초기 진단 실패로 선제성을 잃었다. 공급 측 요인에 주로 기인한 인플레를 수요 측 대책인 금리 인상에 매달렸다. 조 바이든 정부의 정치적 압력에도 끊임없이 시달렸다.

1기의 Fed와 2기의 Fed

앞으로 Fed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1913년에 설립된 Fed의 최우선 목표는 ‘인플레 안정’이다. 유로화 탄생의 근거가 된 로버트 먼델의 최적 통화이론에 따라 설립 이후 110년 동안의 달러화 영향권을 감안해 Fed의 역할을 평가하면 두 단계로 구분된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IMF 탄생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미국의 중앙은행’, 그 이후에는 ‘세계중앙은행’의 역할을 한 시기다.1기 때 Fed는 인플레 안정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 스무트-홀리법으로 상징되는 각국의 극단적 보호주의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Fed는 금리 인하 등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섰다. 하지만 1차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여건에서 Fed의 금융완화 조치는 곧바로 인플레를 촉발했다. 당황한 매리너 에클스 Fed 의장은 성급하게 금리를 대폭 올렸지만, 오히려 미국 경제를 ‘대공황’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Fed 역사상 최대 치욕으로 평가받는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다. 그때까지 주류 경제학이었던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Fed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겼더라면 대공황이 10년 이상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Fed를 구해낸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한 ‘뉴딜 정책’이다. 만성적인 초과공급 여건에서 정부 주도로 테네시강 유역 개발 등을 통해 총수요를 진작시켜 대공황을 탈출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총수요 관리 대책의 근거가 된 케인스 이론이 탄생했다.

2기에 접어들어서는 외형상으로 Fed의 전성시대가 1970년대 초까지 지속됐다. 이 기간에는 달러 가치가 급값에 연동된 브레턴우즈 체제가 잘 작동됐기 때문이다. 1960년대 케네디·존슨 경기 호황기에도 인플레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Fed가 잘했다기보다 잘 작동된 브레턴우즈 체제의 요인이 더 크다.

‘인플레 안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Fed의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된 때는 1970년대 이후부터다. 1971년 닉슨의 금 태환 정지 선언 이후 과도기인 스미스소니언 체제를 거쳐 1976년 킹스턴 회의를 계기로 국제통화체제가 자유변동환율제로 넘어가면서 브레턴우즈 체제가 최대 시련을 맞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의 원천도 1970년대 두 차례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총수요’ 측에서 ‘총공급’ 측으로 바뀌었다. 다른 거시경제 변수와 관계도 물가와 경제 성장 간 ‘정(正)’에서 ‘부(負)’의 관계로 전환됐다. 2기 들어 Fed가 통화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온 케인지언 총수요 관리 대책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다.

Fed 내부도 고민에 빠졌다. 전통대로 “인플레 안정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아니면 전통을 깨고 “경기를 부양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Fed의 통화정책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이 설전은 후일에 ‘볼커 모멘텀’과 ‘역볼커 모멘텀’ 간 대혈투로 비유된다.

평행선을 달리던 끝에 Fed는 볼커 모멘텀을 선택해 힘겹게 인플레 안정이라는 설립 목표를 지킬 수 있었다. 역볼커 모멘텀의 경기 부양 과제는 미국 재무부로 넘어갔다. 재정정책도 케인지언 총수요 관리 대책이 한계에 봉착하자 세율 감소 등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공급 중시 대책으로 선회해 경기를 부양했다.

최근에는 Fed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1기 때 ‘뉴딜 정책’, 2기 때 세율 인하 등을 통한 ‘공급 중시 경제학’으로 구해낼 수 있는 재정 여건이 못 된다. 공화당의 반대로 신뉴딜 정책을 표방한 바이든 정부의 재정지출 계획을 추진하는 데 난항이 따른다. 세율 면에서는 날로 심각해지는 ‘K’자형 양극화와 국가 채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득세, 법인세, 자사주 매입 과세 등 세율을 대폭 올리는 초부유세를 도입할 방침이다.

Fed의 통화정책 여건도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을 거치면서 크게 변하고 있다. 성장과 물가 간에는 종전의 ‘고성장-저물가’에서 ‘저성장-고물가’로, 고용과 성장 간에는 ‘고용 창출 없는 경기 회복(jobless recovery)’에서 ‘고용이 풍부한 저성장(jobfull downturn)’으로 바뀌었다.

Fed가 금리를 처음 올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플레 마케팅 상향 조정 논쟁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성장, 고용, 물가 간 트릴레마 속에 인플레 타기팅 2%를 고수한다면 큰 폭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함에 따라 경기 침체가 우려되지만 4%로 상향 조정하면 두 부담이 완화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적어지는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Fed와 파월 의장은 여전히 볼커 모멘텀을 고수할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의 대응 방식으로 트릴레마 난제를 풀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더 커지고 있다. 통화정책 여건이 변한 만큼 전통적인 인플레 대책을 고집하기보다 제3의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느냐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발 통화정책의 후유증을 처리하기 위한 출구전략은 한국은행이 가장 빨리 추진했다. 금리를 가장 많이 내리고 돈을 가장 많이 푼 Fed보다 7개월 앞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첫 금리 인상 당시 성장률이 0.3%(2021년 3분기)로 워낙 낮아 경기, 금리, 물가 간 트릴레마 국면에 처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심스-그랜저 인과관계 검정을 통한 우리의 통화정책 시차가 1년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시기적으로 2021년 8월 이후 추진해온 금리 인상 효과를 평가해볼 수 있는 충분한 시기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금리를 올릴 때 내걸었던 대부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미흡했다. Fed와 마찬가지로 한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력화 국면에 몰리고 있다.

한은이 가야 할 길

Fed처럼 양대 목표를 설정하는 논쟁 속에 한은이 고집한 인플레 안정 목적부터 평가해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대표적 인플레 지표인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올해 1월 4%대로 다소 안정을 찾긴 했지만, 한은이 묵시적으로 내걸고 있는 인플레 타기팅 선인 2%를 여전히 두 배 이상 웃돌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처럼 인플레가 공급 측 요인이 강할 때는 총수요 물가관리 대책인 금리 인상은 적합한 수단이 아니다. 일부 금융통화위원이 주장한 금리 인상을 통해 원화를 절상시켜 수입물가를 잡는 것은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수출 감소 등을 통해 실물경기를 더 어렵게 한다.

가계 부채를 줄여 금융 안정성을 도모하는 목적도 기대만큼 달성하지 못했다. 금리 인상 이후 가계 부채 증가 속도는 줄어들었지만 절대 규모는 늘어났다. 질적으로도 젊은 세대와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을 비제도권으로 몰아내 극단적 선택 등 사회병리 현상이 증가했다. 지니 계수, 10분위 계수 등으로 본 등 계층 간 소득 불균형도 심화했다.

가계 부채가 위험수위를 넘은 상황에서 가계 부채 대책은 경착륙보다 연착륙시키는 방향으로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4대 은행의 허시만허핀달지수(HHI)가 1700 이상 나올 정도로 독과점이 심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경제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담보 관행과 같은 구조적 취약점이 있는 여건에서는 더 그렇게 해야 한다.

외국인 자금 이탈을 방지하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금리 인상 이후 한·미 간 금리 역전과 외국인 자금의 유출입 간 관계도 유의미하게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처럼 외환위기 경험국은 무역수지, 외환 보유, 성장률 등과 같은 펀더멘털 요인이 외국인 자금 유출입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한 요인이다.

지난 1년 동안 내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Fed를 따라간다는 인상을 주는 식의 통화정책을 계속해서 가져가서는 곤란하다. 한은처럼 통화정책 추진 여건이 어려울수록 더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금융통화위원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현시점에서 ‘인플레 안정’과 ‘경기 부양’만 놓고 따진다면 우리의 경우 후자에 무게를 둬야 한다. 통화정책 여건이 변한 만큼 Fed처럼 한은도 제3의 통화정책 수단을 고안해야 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