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혁 "SM 인수 '졌잘싸'?…K팝도 삼성·현대차 같아야"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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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15일 관훈포럼 참석
SM 인수·K팝 미래 등 생각 밝혀
방 의장은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관훈포럼에 참석했다.이날 현장에서는 SM 인수와 관련한 질문이 쏟아졌다. 앞서 하이브는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일부에 공개매수까지 거쳐 총 15.8%의 SM 지분을 획득하며 카카오와 치열하게 인수전을 펼쳤다.
이후 카카오가 주당 15만원으로 공개매수에 나서는 등 반격하며 재차 하이브의 결단에 이목이 쏠렸다. 주식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결국 하이브는 인수 중단을 결정했고, 카카오와 플랫폼 분야에서 협업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방 의장은 "나로서는 플랫폼 영역에서 합의를 끌어내서 충분한 가치를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말했다.그는 "이수만 씨 지분을 인수하고, 평화적으로 (SM을) 인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장 과열이나 생각 이상의 치열한 인수전은 우리 예상 밖에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이브가 SM에 인수 의사를 타진한 건 2019년. 하이브는 SM에 두 차례나 인수를 제안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거절'이었다.
방 의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내부에서는 찬반양론이 있었다. 찬성 의견은 글로벌 성장 동력의 일환으로 K팝의 덩치를 키울 필요가 있다는 거였고, 반대는 그 정도의 돈을 글로벌 시장에서 보다 미래적이고 혁신적으로 쓰는 게 좋지 않으냐는 거였다"고 전했다.고민 끝에 인수 의사를 접었던 그였다. 방 의장은 "조금 더 미래지향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고, SM 인수가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로 2019년부터 준비했던 로드맵에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SM 인수전 타임라인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 전 총괄이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으로 카카오에 지분 9.05%를 넘긴 SM 현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한 금지 가처분이 인용되며 승기가 하이브로 기우는 듯했다. 하지만 하이브가 주당 12만원에 SM 주식을 매입하는 공개매수에 실패하고, 카카오가 주당 15만원으로 맞불 작전을 펼치며 상황은 역전됐다.'하이브의 대패'가 아니냐는 질문에 방 의장은 "인수를 승패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엔 동의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인수라는 건 오기 혹은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나선 안 된다. 합리적으로 이게 우리 미래에 맞는 것인지를 따지고, 상장사로서 궁극적으로는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들어가서 SM의 지배구조를 해결했다는 점과 하이브스러운 선택을 했다는 점에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방 의장은 카카오와 플랫폼 협업을 끌어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뜻의 준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번 인수에서 후퇴하면서 하이브의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축인 플랫폼에 관해 카카오와 합의를 끌어내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센 척하려는 게 아니다"라면서 "실무들은 상당히 고생했지만, 난 인수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기분을 못 느꼈다.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날부터 현실로 돌아와서 다시 일하고 곡을 썼다"며 웃었다.
다만, 구체적인 플랫폼 협력 방안과 보유 중인 SM 주식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모든 선택에서 '하이브스러움'이 큰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방 의장은 '하이브스러움'에 대해 "옳은 선택, 구성원들이 부끄럽지 않게 느낄 선택을 하는 것"이라면서 "어느 순간에도 합리적이고 맞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 인수전에 들어갈 때 생각했던 가치를 이미 넘어서려는 과정에서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시장 가치를 흔들면서까지 이어갈 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수하는 입장에서는 유무형의 비용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기업 통합 과정에서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라는 리소스가 들어가고, 이에 더해 구성원들의 감정 노동이 들어가는데 이것까지 감내하는 건 하이브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아티스트와 팬들을 고려하지 않은 '쩐의 전쟁'으로 흘러간 점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방 의장은 지난 주말 보아가 데뷔 20주년 콘서트를 개최했던 것을 언급하며 "사람들이 인수를 전쟁으로 바라보는,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아티스트들은 자기 자리에서 가슴앓이하며 업에 충실했다. 팬들도 그 자리에서 응원했다"고 말했다.
방 의장은 "기업이 K팝을 이 자리까지 끌고 오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어떤 기여를 했건 이 산업의 중심에서 본인의 업을 다하면서 이 산업 전체를 리드한 게 아티스트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이브나 카카오나 아티스트와 팬의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인수를 시작한 거지만 실제 과정에서는 그들을 배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수를 포기한 후 이 전 총괄은 어떤 반응을 보였냐는 물음엔 "(카카오와의) 합의 중간에 이수만 씨에게 말할 수 없었던 건 사실이다. 끝나고 소상하게 설명해 드렸다"면서 "특별하게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이수만이) '이길 수 있는데 왜 그만하지?'라고 말한 게 전부"라면서 "실망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실망하셨더라도 한참 후배인 내 앞에서 그럴 것 같진 않다"고 전했다.
이 전 총괄의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그와 ESG 분야에서 뜻을 모으기로 한 것은 기존 하이브의 계획과 방향성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방 의장은 "지난해 7월 이사회에서 ESG 관련 보고를 했다. 그때 나무 심기를 계획했는데, 세계 기후 이상 때문에 원래 심으려던 곳에 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수만이 제안을 준 게 '내가 이제 하면 얼마나 하겠냐. 난 좋은 일 하고 싶은데 나무 심기를 도와주고 싶다'는 거였다. 이수만 개인이 아니라 적절한 재단 등 루트를 가져오면 우리의 나무 심기 예산 중에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방 의장은 이를 '다윗과 골리앗'에 비교했다. 그는 "K팝은 세계시장에서 골리앗과 같은 메이저 3개 기업들 틈에 있는 다윗과 같다"며 최근 K팝의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K팝의 지속 성장을 위해 △주류 시장에서 K팝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 △크리에이티브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과 크리에이티브의 영혼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수준의 건강한 경영방식 △플랫폼의 개발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방 의장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해외에서 K팝 고유의 노하우를 확장해나가면서 글로벌 톱 티어 회사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 위해서는 신규 플레이어로서의 신선함 그 이상이 필요하다"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삼성이 있고,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현대가 있듯, K팝에서도 현 상황을 돌파해 나갈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등장과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