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정상회담, 관계 정상화 첫걸음 무난하게 뗐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어제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경제·안보 협력 의지를 다졌다. 양국은 새 시대를 열자며 경제안보협의체 출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완전 정상화와 대북 대응을 위한 안보 대화 재개, 셔틀외교 복원 등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첨단 과학과 금융 협력에 대해서도 협의하기로 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해제하고,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기로 하는 당장의 성과물도 내놨다. 한국 반도체가 일본의 소재 부품 없이는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양국 재계 단체는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조성하기로 함에 따라 지난 3년 넘게 막혔던 경제 교류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회담으로 과거사 문제로 뒤틀린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앞으로가 중요하다. 기시다 총리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사과 발언 없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기존 수준에 머물렀고, 우리 정부의 제3자 변제 징용 배상에 대한 일본 피고 기업들 참여가 불확실한 것 등 아쉬운 점은 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미·중 패권 경쟁, 공급망 문제 등 어느 모로 보나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한·일 관계 업그레이드는 숨넘어가는 상황이다. 켜켜이 쌓인 과거사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리 없다. 두 정상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수시로 만나 구체적 결과물을 하나씩 내겠다고 한 만큼 공든 탑을 쌓듯 신뢰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윤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해법을 내놓으면서 이뤄졌다. 그런 만큼 일본도 더 이상 혐한(嫌韓) 발언 등 돌출 언행으로 양국 사이를 도돌이표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한국 야당도 시대에 뒤떨어진 죽창가 타령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이번 회담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는 있지만 한국이 도덕적, 외교적 주도권을 쥐면서 일본이 따라올 수밖에 없게 됐다.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반일(反日)이 아니라 극일(克日)이다. 양국 모두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번 정상회담이 가치동맹을 더 긴밀히 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틀이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