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 찾아서 작곡하듯 1시간 열공
입력
수정
지면A16
Cover Story“조향이란 건 작곡과 같아요. 나는 향기로 왈츠도, 장송곡도 만들 수 있습니다.”
샤넬 퍼퓨머 마스터클래스 체험기
시향으로 잠든 후각 깨우고
어울리는 색·이미지 맞춰봐
맛·촉감·색깔 등 오감 이용
나만 알 수 있는 이름 짓기도
전설적인 향수로 불리는 ‘샤넬 넘버 5’를 만든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가 은퇴를 앞두고 남긴 말이다. 실제로 향수 속 향기의 성격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 ‘노트’도 음표를 뜻하는 영어 단어에서 왔다. 매일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향기를 작곡하는 건 조향사들의 영원한 임무이자 목표다. 이들에게 조향은 단순히 향기를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각, 기억, 이미지 그리고 온도까지 창조해내는 작업인 셈이다.수많은 한옥이 늘어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북촌.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휘겸재의 문을 열면, 향기로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는 작업실이 펼쳐진다. 이곳은 샤넬의 전문 조향사들에게 직접 조향 수업을 들어볼 수 있는 ‘샤넬 퍼퓨머 마스터클래스’다. 한옥 마루에 마련된 조향 수업 테이블에 앉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샤넬의 향수병들이다. 전통 서랍장 위에 놓인 향수들은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고유의 빛깔로 반짝였다. 한옥 안에서 느끼는 전통과 현대의 조합, 마치 시간이 뒤섞인 듯한 곳에서 ‘향기 수업’은 시작됐다.
수업의 첫 단계는 잠든 후각을 깨우는 ‘워밍업’이다. 앞에 놓아주는 시향지를 받고 향기를 표현해보는 시간이다. 향수가 묻지 않은 시향지의 한쪽 끝을 검지 중지로 잡고 향기를 맡는다. 이처럼 조향사들은 단 두 손가락만으로 시향지를 만진다.
조향의 세계에서 향기를 표현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방법이다. 이날 수업을 맡은 조향사는 “향기에도 무게와 온도가 있다”고 했다. 조향사들은 향기를 표현할 때 그 향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혹은 얼마나 뜨거운지, 건조한지, 상승하는지 하강하는지 등으로 먼저 평가한다.상대적 평가가 끝나면, 이젠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내가 전에 사귀었던 연인의 향’ ‘2년 전 좋은 시간을 보냈던 호텔의 향기’ 등이다. 마지막은 공감각적 표현이다. 향기를 맛으로, 촉각으로, 또 색깔 등의 시각으로 형상화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을 통해 향기는 단순한 냄새를 넘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형체가 된다.다음은 여러 향기를 맡아보고 어울리는 이미지와 색을 맞춰보는 ‘올팩션 게임’이 이뤄진다. 게임이 시작되면, 앞에는 세 가지 다른 향이 뿌려진 1, 2, 3번의 시향지가 놓인다. 향을 맡고, 음악을 들은 뒤 이 음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향이 무엇인지 맞춰본다. 이 과정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후각 훈련’이란 뜻을 지닌 올팩션은 조향사들이 향기를 맡은 뒤 분석하고 기억하는 과정이다. 조향사의 인생과도 같다. 실제로 조향사들은 음악을 들으며 향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음표가 올라갔다 떨어지는 그 리듬을 느끼며 향을 함께 맡으면 더 깊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조향 클래스의 마지막 단계는 세 가지의 시향지를 앞에 두고 시작한다. 이 단계에선 참가자들 표정이 모두 순간 일그러진다. 무슨 향기가 떠오르냐는 질문엔 ‘화장실 냄새’ ‘동물 비료 냄새’와 같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들만 떠오른다. 이 시향지에 묻은 것은 놀랍게도 재스민, 아이리스, 그리고 장미 향이다. 왜 이런 역겨운 악취가 느껴지나 했더니, 향수의 원료가 되는 ‘원액’이기 때문이다. 꽃에서 추출한 향수 원액은 뿌리와 줄기 냄새까지 섞여 있어 희석 전엔 역겨운 냄새가 난다.향수의 3대 명품 원료로 불리는 세 가지 원료는 모두 프랑스 향료 재배의 중심지로 통하는 남부 그라스 산지에서 채취한다. 5월에만 피는 장미인 메이로즈는 조금의 상처만으로도 향기가 사라지기 때문에 기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직접 수확해야 하는 까탈스러운 장미의 여왕이다. 두 번째 원료인 아이리스는 재배에만 3년, 건조시키는 데 또 3년이 걸려 향을 내는 데 걸리는 시간만 6년이 필요하다. 마지막 명품 원료로 통하는 재스민은 향 100mL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려 600만 송이가 필요하다. 그라스 산지에서 생산되는 이 모든 꽃의 90%를 재배하는 가문인 ‘뮬 가문’은 5대째 꽃만 생산하고 있다. 뮬 가문은 1987년부터 샤넬과 독점 파트너십을 맺어 이들이 재배하는 모든 꽃은 샤넬 향수를 제조하는 데만 쓰인다.
1시간 동안 단 1분도 향기가 주는 신선한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샤넬 퍼퓨머 마스터클래스는 다음달 8일까지 하루 100명에게만 그 체험 기회가 주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