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향기는 추억의 잔상까지 소환한다

Cover Story
마음에 잔향 남긴 조향사들의 말
오하니 작가와 그의 조향 작업대.
“코는 생각이 없다. 향수를 만드는 건 뇌가 하는 일이다.”

럭셔리 향수 브랜드 ‘메종 프란시스 커정’을 만든 세계적 조향사 프란시스 커정은 10년 전 조향사를 꿈꾸던 오하니 작가에게 이같이 말했다. 좋은 향기란 낭만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을 통해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제 11년차 조향사가 된 오 작가는 “직관적인 커정의 향수처럼 강렬한 조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 조향사를 만난 경험을 녹여 최근 <아이 러브 퍼퓸>을 출간했다.브랜딩 컨설턴트 등을 거친 오 작가는 세계적 조향사들의 인터뷰를 패션 잡지에 실은 뒤 조향사의 꿈을 이뤘다. 그에게 강렬한 향기를 남긴 ‘조향사들의 말’을 정리했다. 조향사뿐 아니라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외출 전 마지막으로 향수를 입는 사람이라면, 음미할 만한 문장들이다.

프레데릭 말 “언제나 당신답게”


‘향수 편집장(perfume publisher)’,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창업자이자 조향사인 프레데릭 말은 자신을 이렇게 칭한다. 출판사 편집장이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의 작업물을 최종 조율해 세상에 내놓듯 훌륭한 조향사의 결과물을 엄선해 향수로 낸다는 의미다.조향사들의 조향사인 그에게 ‘향수를 고르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냐’고 오 작가가 물었다. 말의 대답은 민트향처럼 명쾌했다. “여러분이 편안하게 느끼는 향수를 사세요. 당신이 좋아하는 게 최고의 향수입니다. 언제나 당신답게.”

파트리샤 드 니콜라이 “향수는 다시 만나는 사랑”

책 ‘아이 러브 퍼퓸’
파트리샤 드 니콜라이는 ‘향수 명문’ 겔랑 가문 출신에서 처음 배출한 여성 조향사다. 세계 최고의 조향 학교인 ISIPCA를 졸업했다. 그가 1989년 내놓은 ‘퍼퓸 드 니콜라이’는 니치 향수(럭셔리 향수)의 시초로 꼽힌다.니콜라이는 2008년부터 프랑스 향수 기록 보관소 ‘오스모테크’의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채취가 금지된 천연 머스크(사향), 생산 중단된 옛 향수 등이 보관된 곳이다. 그래서일까. 니콜라이는 오 작가에게 “향수란 기억의 영혼”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의 향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어요.”

프란시스 커정 “영감은 일할 때 찾아온다”

커정의 이름 앞에는 ‘천재 조향사’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24세에 전 세계 남성들이 사랑하는 여름 향수인 ‘르말(Le male)’(장 폴 고티에)을 만들었고, 30세에 ‘향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코티 어워드를 받았다.

그런데 오 작가가 만난 커정은 뜻밖에 ‘연습’을 강조했다. 그는 ‘식욕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음식을 먹는 중에 생긴다’는 프랑스 속담을 인용하며 “영감은 꽃향기를 맡으며 여유를 즐길 때가 아니라 일하는 와중에 찾아온다”고 했다.“좋은 조향사가 되고 싶다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처럼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합니다.”

오하니 “향수는 내가 ‘나’인 이유”

오 작가는 “향기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그의 향수 시리즈 ‘히어로즈오브코리아’는 허난설헌, 세종대왕 등 한국의 위인에게서 모티브를 얻는다. 그는 “뉴욕 패션스쿨 시절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김정일의 나라냐’고 되묻는 반응이 지겨웠다”며 “한국을 설명할 수 있는 향기를 고민했고, 그런 향수는 커정도 니콜라이도 못 만들지만 나는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이 대체하지 못하는 나의 특성은 결국 향기 아닐까요. 나만의 체취, 그리고 어떤 향기를 맡았을 때 내가 떠올리는 감정과 기억이요. 그런 의미에서 향수는 내가 ‘나’인 이유를 말해주죠.”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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