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기차 배터리 관리 '구멍'…검사소 80%, 인력·장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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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화재 위험 노출경기 안성시 봉산동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35)는 최근 늘어나는 전기차 배터리 화재가 걱정돼 지역 민간 검사소 여러 곳을 방문했다. 그러나 지역 검사소 모두 관련 장비가 없다며 거부해 결국 충남 천안의 한 검사소까지 가서 검사를 받았다. 김씨는 “정부 홍보와 달리 민간 검사소엔 관련 장비와 인력이 모두 없었다”며 “정부가 전기차 화재 관리에 너무 소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배터리 정기점검 받으려면
민간 1833곳 중 313곳만 가능
"검사 의무 없어 안 지켜도 돼"
업계, 장비 비싸 도입 부정적
전기차 안전 관리법도 '미비'
과열·방전 안전검검 규칙 없어
전기차 보급률이 급격히 높아진 가운데 배터리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16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국 민간검사소 1833곳 중 313곳(17%)에서만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검사가 가능했다. 민간 자동차 검사소 열 곳 중 여덟 곳가량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검사소로서는 검사 장비에 투입되는 비용이 큰 데다 추가로 배터리 점검 비용을 받는 등의 유인책이 없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작년 1월부터 2년에 한 번 실시하는 자동차 정기검사에서 전기차의 배터리 안전성을 점검하겠다고 홍보해 왔다.
전기차는 일반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2년에 한 번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잇단 화제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의무 검사 조항은 없다. 배터리 절연 상태 점검 등 기본 검사만 하면 된다. 화재가 걱정될 경우 따로 검사소에 신청해야 한다. 업계에선 올해 16만2346대의 전기차가 자동차 검사를 받을 예정이지만 대부분 기본적인 검사만 할 것으로 보고 있다.검사소들은 전기차 배터리 화재 검사 장비를 도입하는 데 부정적이다. 정부에서 작년 8월께 개발한 전자장치진단기(KADIS)의 가격은 150만원. 하지만 관련 검사 서비스를 제공해도 추가 비용을 받을 수 없어 장비 도입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서울에서 자동차 검사소를 운영하는 신모씨(58)는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장비 도입 지원금도 없어 투자할 이유가 없다”며 “고객에겐 배터리 화재 안전성 검사를 원하면 정부 검사소로 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검사소 59곳은 전기차 배터리 검사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피해는 늘어나는 추세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9년 2억7000만원(7건)이던 전기차 화재 피해액은 지난해 9억700만원(44건)으로 3년 동안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의 열 폭주 현상으로 불이 잘 꺼지지 않고 초기 진압도 어렵다. 특히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를 충전할 때 화재가 발생하는 사례가 많아 피해가 커지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는 사전 점검을 통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며 “일단 불이 나면 소화수조 등의 특수 장비가 필요해 시민들의 초기 대응이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민간 부문 전기차 정비 인프라가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는 지난해 38만9855대로 5년 새 15.5배나 늘었다. 하지만 전기차를 다룰 수 있는 전기차 정비소는 부족하다. 전기차 판매 세계 1위인 테슬라는 국내 서비스센터가 9곳밖에 없다. 판매 대수에 비해 서비스센터가 부족하다 보니 기본적인 점검과 수리를 맡기면 수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전기차 정비가 가능한 서비스센터는 작년 기준 516곳이다.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민간 정비소들이 배터리 검사 장비와 인력을 늘릴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