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히잡 시위 반년…끝나지 않은 '여성·생명·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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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경찰' 영향력 위축…변화 촉구 내부 목소리 확대
근본적인 제도 변화 끌어내지 못해…"계기 생기면 다시 불만 폭발" '히잡 시위'로 촉발한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17일(현지시간) 6개월째를 맞는다. 지난 반년간 이란 사회에 울려 퍼진 슬로건은 '여성, 생명, 자유'였다.
시위 참여자들은 거리에서 이 세 단어를 외치며 변화를 촉구했다.
10·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시위는 국제사회로 퍼지며 파장을 일으켰다. 첫 시위는 작년 9월 17일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주 도시 사케즈에서 시작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경찰에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가 불분명한 이유로 숨진 다음 날이었다.
이날 아미니의 장례식에서 유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했고, 일부 주민이 동참하면서 당국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모였다. 아미니의 사연이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시위는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했다.
'테헤하쉬터디'(20대를 일컫는 이란어)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시위를 이끌었다.
이란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테헤란대와 샤리프 공과대가 시위의 중심이 됐다. 당국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했다.
격화된 시위로 사상자도 속출했다.
이란 정부 공식 집계는 없지만, 국제 인권단체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숨진 사람이 50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정부는 시위대의 폭력 행위로 보안군 60여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체포된 시위 참가자 수는 추산하기 어렵다.
다만, 이란 사법부는 지난 13일 구금했던 반정부 시위대 2만2천명을 사면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외신들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서 히잡 반대 시위가 이번처럼 광범위하고 긴 기간 일어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세계 각지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외신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해, 런던, 뉴욕, 파리 등 전 세계 160여개 도시에서 연대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 후 가장 큰 변화는 '종교 경찰'의 영향력 약화다.
사망 당시 22세였던 아미니를 체포한 것은 '지도 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다.
이들은 통상 남성 2명, 여성 2명으로 팀을 이뤄 공공장소 및 거리에서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풍속을 단속한다.
아미니는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해 머리카락이 보인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은 여성에 대해 형법으로 엄히 처벌한다.
외국인을 포함해 모든 여성이 의무적으로 히잡을 써야 하는 나라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면 이란이 유일하다.
이란 정부는 히잡 착용 문제로 광범위한 분노가 일자 이 지도 순찰대의 활동을 중단했다.
근래 수도 테헤란에서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거리를 걷는 여성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의회에서 지도 순찰대를 폐지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히잡 관련 규정 완화를 시사하는 지도층의 목소리도 잇따랐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란이 이슬람을 기초로 세워졌다는 점은 헌법에 못 박혀 있다면서도 "헌법을 유연하게 구현하는 방법들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하마드 하타미 전 이란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가 분명히 확인한 것은 이란에 광범위하게 불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면서 "이제 시민들의 비폭력적 행동으로 통치 체제를 바꾸고 (정권이) 개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혁파 정치인인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는 "반정부 시위가 국가 전반의 위기 속에서 일어났으며 현재 시스템은 지속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적지 않은 변화의 조짐이 보였지만, 이란 사회의 근본적인 법·제도 개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시위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사법부는 지난 6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여성을 처벌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시위는 주춤한 듯 보이지만 변화를 원하는 이란인들의 열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진압경찰을 피해 운전하면서 경적을 울리고, 집안에서 창문 밖으로 구호를 외치는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미국·독일 등 해외에 사는 이란인들의 시위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히잡을 불태우거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춤을 추는 영상도 온라인에 올라온다.
최근에는 이란의 새해 '노루즈'(3월 21일)를 앞두고 테헤란과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주민들은 겉으로 보이는 시위는 줄었지만, 어떤 계기가 생기면 수면 아래의 광범위한 불만은 다시 폭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인권단체 이란인권센터(CHRI)의 하디 가에미 국장은 "이란인들은 시위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만 자신이 나서는 것은 주저한다"며 특정 계기가 생기면 다시 집단행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근본적인 제도 변화 끌어내지 못해…"계기 생기면 다시 불만 폭발" '히잡 시위'로 촉발한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17일(현지시간) 6개월째를 맞는다. 지난 반년간 이란 사회에 울려 퍼진 슬로건은 '여성, 생명, 자유'였다.
시위 참여자들은 거리에서 이 세 단어를 외치며 변화를 촉구했다.
10·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시위는 국제사회로 퍼지며 파장을 일으켰다. 첫 시위는 작년 9월 17일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주 도시 사케즈에서 시작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경찰에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가 불분명한 이유로 숨진 다음 날이었다.
이날 아미니의 장례식에서 유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했고, 일부 주민이 동참하면서 당국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모였다. 아미니의 사연이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시위는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했다.
'테헤하쉬터디'(20대를 일컫는 이란어)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시위를 이끌었다.
이란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테헤란대와 샤리프 공과대가 시위의 중심이 됐다. 당국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했다.
격화된 시위로 사상자도 속출했다.
이란 정부 공식 집계는 없지만, 국제 인권단체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숨진 사람이 50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정부는 시위대의 폭력 행위로 보안군 60여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체포된 시위 참가자 수는 추산하기 어렵다.
다만, 이란 사법부는 지난 13일 구금했던 반정부 시위대 2만2천명을 사면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외신들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서 히잡 반대 시위가 이번처럼 광범위하고 긴 기간 일어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세계 각지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외신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해, 런던, 뉴욕, 파리 등 전 세계 160여개 도시에서 연대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 후 가장 큰 변화는 '종교 경찰'의 영향력 약화다.
사망 당시 22세였던 아미니를 체포한 것은 '지도 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다.
이들은 통상 남성 2명, 여성 2명으로 팀을 이뤄 공공장소 및 거리에서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풍속을 단속한다.
아미니는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해 머리카락이 보인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은 여성에 대해 형법으로 엄히 처벌한다.
외국인을 포함해 모든 여성이 의무적으로 히잡을 써야 하는 나라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면 이란이 유일하다.
이란 정부는 히잡 착용 문제로 광범위한 분노가 일자 이 지도 순찰대의 활동을 중단했다.
근래 수도 테헤란에서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거리를 걷는 여성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의회에서 지도 순찰대를 폐지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히잡 관련 규정 완화를 시사하는 지도층의 목소리도 잇따랐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란이 이슬람을 기초로 세워졌다는 점은 헌법에 못 박혀 있다면서도 "헌법을 유연하게 구현하는 방법들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하마드 하타미 전 이란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가 분명히 확인한 것은 이란에 광범위하게 불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면서 "이제 시민들의 비폭력적 행동으로 통치 체제를 바꾸고 (정권이) 개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혁파 정치인인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는 "반정부 시위가 국가 전반의 위기 속에서 일어났으며 현재 시스템은 지속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적지 않은 변화의 조짐이 보였지만, 이란 사회의 근본적인 법·제도 개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시위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사법부는 지난 6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여성을 처벌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시위는 주춤한 듯 보이지만 변화를 원하는 이란인들의 열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진압경찰을 피해 운전하면서 경적을 울리고, 집안에서 창문 밖으로 구호를 외치는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미국·독일 등 해외에 사는 이란인들의 시위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히잡을 불태우거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춤을 추는 영상도 온라인에 올라온다.
최근에는 이란의 새해 '노루즈'(3월 21일)를 앞두고 테헤란과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주민들은 겉으로 보이는 시위는 줄었지만, 어떤 계기가 생기면 수면 아래의 광범위한 불만은 다시 폭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인권단체 이란인권센터(CHRI)의 하디 가에미 국장은 "이란인들은 시위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만 자신이 나서는 것은 주저한다"며 특정 계기가 생기면 다시 집단행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