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침대 사건' 아시나요…'더 글로리' 보다 더 잔혹한 현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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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논란 재점화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를 끌면서 10대 시절 학교폭력(학폭) 범죄에 대한 사회의 공분이 촉법소년 논란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여기도 저기도 '현실판 더 글로리'
"언제까지 촉법 운운할 건가" 네티즌 분노
촉법소년 연령 인하, 국무회의 통과됐지만
숱하게 놓인 반대 의견에 통과 '험로' 전망
형법상 미성년자는 △범죄소년(만 14세 이상 19세 미만)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범법소년(만 10세 미만) 세 가지로 나뉜다. 범죄소년은 범죄를 저지를 경우 성인과 동일한 형사처벌을 받는다. 촉법소년은 형사처분 대신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을 받는다. 촉법소년 사건은 매년 증가세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 법원의 촉법소년 사건 접수 건수는 ▲2016년 7030건 ▲2017년 7897건 ▲2018년 9051건 ▲2019년 1만22건 ▲2020년 1만584건 ▲2021년 1만2501건으로 나타났다.최우성 수원교육지원청 학교폭력 전담 장학사는 최근 MBC 라디오에 출연해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라 처벌이 제한적이었던 사건들을 재조명했다. 그는 "더 글로리 속 학폭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지만, 현실 속에 있는 부분도 있고 과거에 있었던 소재"라고 말했다. 그는 '2022년 경기 북부 눈 침대 폭력사건', '2021년 양산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 등을 언급하면서 "사건 모두 일부 가해자 또는 가해 당사자가 14세 미만 촉법소년이라 처벌이 제한적이었다"고 전했다.
'눈 침대 사건'은 2022년 12월 경기 북부에서 13세 초등생이 하굣길에 9세 여자 어린이를 아파트 옥상으로 유인해 눈더미로 침대를 만든 뒤 성추행한 사건이다. 가해 학생은 촉법소년이라 형사 처벌이 제한되며 학교에서도 별다른 징계 없이 졸업했다. '양산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은 2021년 경남 양산에서 가해자들이 외국 국적의 중학생을 집단폭행하고 범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유포한 사건이다. 가해자 중 2명은 검찰에 송치됐지만, 다른 2명은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이어서 소년부로 넘겨졌다.최근에도 수많은 사건에 '현실판 더 글로리'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지난 2월 충북에서 만 13세 여학생을 또래 남학생들이 집단 성폭행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되자 언론은 일제히 이 사건을 '현실판 더 글로리'라고 보도했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하루 만에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폭 문제를 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더 글로리 현실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쏟아지는 10대 범죄 보도에 네티즌들은 "언제까지 촉법소년 운운할 거냐", "나이 상관없이 강력히 처벌하라"고 연일 성토하고 있다.이처럼 현재 만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의 연령 기준을 인하하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만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됐다. 촉법소년 기준 연령 인하는 윤 대통령의 공약으로, 정부가 법 개정을 강하게 추진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소년 인권 보호와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를 강화하는 등 소년 사법 체계를 개선·보완할 필요성이 제기돼 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시행되지만, 곳곳에서 반대 의견이 숱하게 제기되고 있어 통과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거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 일각에서 반대 기류가 감지되는 점이 첫 번째 난관이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은 법무부의 형법 개정안 입법예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또 국회입법조사처도 최근 '촉법소년 연령기준 현실화의 쟁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연령 조정을 통한 형사처벌의 확대는 소년범죄 발생의 근본적 원인에 대응하는 실효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신중론을 견지했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도 법무부의 입법 내용에 반대 의견을 냈다. 지난달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소년법 개정안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는 "촉법소년 상한 연령 하향 추진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법원행정처의 반대 의견이 담겼다. 행정처는 "13세 소년이 형사책임능력을 갖췄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과거의 범죄사실 확인(수사), 공소 제시 및 유지에 특화된 검사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소년보호사건의 특수성은 물론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통한 소년의 갱생 도모라는 소년사법 제도의 근본이념을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