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3380만원 뿐"…박수홍 울린 '친족상도례' 달라질까
입력
수정
박수홍 가족 계기로 논란 재점화된 '친족상도례'"30년을 넘게 일했는데, 내 통장에 3380만원이 남아있더라고요. 전세 보증금을 낼 돈이 없어서 결국 급하게 보험을 해지해 전세금을 냈습니다."
국민 85% "친족상도례 조항 폐지해야"
국회, 친족상도례 '적용 제한' 법안 발의
방송인 박수홍이 지난 15일 친형 박 모(55) 씨 부부의 '62억 횡령' 혐의에 관한 재판에 증인으로 직접 출석해 토해낸 울분이다. 박수홍의 친형 박 씨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회삿돈과 박수홍 개인 자금 등 약 61억7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기소 됐다. 박 씨의 아내는 횡령에 일부 가담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박수홍과 박 씨의 법정 공방이 이어지면서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는 단어가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다. 친족상도례는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재산범죄에서 친족 간의 범행에 대해 형을 면제 또는 감경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특례 제도다. 쉽게 말해 '친족 간 도둑질에 대한 특례'라는 뜻이다. 여기서 친족은 8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 및 배우자에 한정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의 관습이 현재까지 이른, 최소 개입 원칙에 따른 조항이기도 하다.
박수홍 사건에 친족상도례가 언급되기 시작한 건 박수홍의 부친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려고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부터다. 형은 비동거 친족으로서 범죄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 고소하면 처벌이 가능하지만, 부친이 횡령한 경우 친족상도례 대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려 했다는 게 박수홍 측의 주장이다. 지난해 10월 박수홍이 부친에게 폭행당해 응급실로 이송됐을 당시 박수홍 측 법률대리인인 노종언 변호사는 "부친이 모든 횡령과 자산관리를 본인이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친족상도례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파장이 거세지자 시대 상황에 맞게 법을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차서가 2021년 7월 발간한 '형법상 친족상도례 조항의 개정 검토' 보고서에 인용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친족상도례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 3만2458명 중 2만7702명(85%)에 달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친족상도례에 대해 "지금 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개정을 시사했다.다만 공권력이 지나치게 가정사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데다 법·제도상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친족상도례의 완전 폐지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헌법재판소도 2012년 헌법소원 당시 "가정 내부의 문제는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적 고려와 함께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입법 취지가 있다"고 친족상도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여전히 존폐를 두고선 갑론을박이 빚어지는 가운데, 최근 국회에서 '절충안'을 담은 법안이 발의돼 눈길을 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4일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친족상도례 제한 법안 3건은 각각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가중처벌 되는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사기・공갈 및 횡령・배임의 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가중처벌 되는 '5명 이상이 공동하여 상습적으로 범한 절도의 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가중처벌 되는 '2명 이상이 공동하여 범한 공갈죄'에 대해선 친족상도례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한 의원은 "친족상도례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에 비해 오늘날 가족 개념이 달라졌고 각종 부작용이 지적되는 만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면서도 "친족상도례의 완전 폐지가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있는 만큼, 이번 3법 개정안이 친족상도례 제도 개선을 위한 합리적인 절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