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경고용으로 쏜 軍 '우주발사체'…과기부는 "왜 허가 없이 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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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체연료 추진 로켓 놓고 국방부-과기부 갈등지난해 12월 30일 저녁 퇴근 시간대. 서울 경기 등 전국에서 오로라(태양 플라즈마가 지구 대기권으로 쏟아질 때 나타나는 풍경)와 비슷한 현상이 관측됐다. 구불구불 긴 꼬리를 단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상승하는 모습이 겹쳐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국방부가 충남 태안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종합시험장에서 오후 6시께 시험 발사한 고체연료 추진 우주발사체였다.
軍, 우주발사체를 무기로 분류
사전 협의 필요없다고 판단해
과기부는 "안전상 허가 필요하다"
발사체 법적 성격은 정의 못내려
일각 "컨트롤타워 없어 생긴 일
우주항공청이 역할 할지 의문"
이날 발사는 같은 달 15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고체로도 쏠 수 있다며 도발한 것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컸다. 발사 전날(29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전 ADD를 전격 방문한 것도 국방부의 시험 발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대통령까지 나서 격려한 이 발사를 두고 국방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갈등을 겪고 있다. 17일 한국경제신문이 확인한 2022년 이후 우주발사체 발사 허가 신청 내역에 따르면 국방부와 ADD는 작년 12월 말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시험과 관련한 발사 허가 신청서를 과기정통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우주발사체 발사허가권은 과기정통부 소관인 우주개발진흥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인공위성 등을 우주공간에 진입시키는 물체를 우주발사체로 정의하고, 발사하려는 곳은 과기정통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軍 “과기정통부 ‘우주 갑질’ 멈춰라”
과기정통부와 국방부가 우주발사체 발사허가권을 놓고 갈등을 빚는 이유는 작년 말 국방부가 발사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의 법적 성격에 대해 두 부처의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발사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는 고도 450㎞에 도달해 추진기관별 연소, 페어링(덮개) 분리, 단 분리, 탑재체(모의 위성) 분리 등을 수행했다. 국방부는 발사 직후 “소형위성이나 다수 초소형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투입할 수 있는 우주발사체로, 독자적 감시정찰 능력을 크게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국방부는 해당 발사체를 방위사업법과 국방전력발전업무 훈령의 ‘무기체계’로 분류했다. 이 경우 우주개발진흥법에서 예외로 인정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국방부는 우주발사체 시험 발사에 대해 과기정통부와 사전 협의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국방부는 또 발사체 허가권을 과기정통부 장관이 갖는 현행법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핵 탑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과 우주발사체 기술은 근본적으로 같다”며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미사일 시험을 일일이 과기정통부로부터 허가받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달 들어 복수 핵 탑재가 가능한 ‘괴물 ICBM’ 화성-17,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연달아 쏘며 한·미 연합훈련을 겨냥한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과기정통부, 발사체 성격 규정 못해
과기정통부는 안전을 위해 허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주개발진흥법은 발사체에 대한 안전성 분석 보고서, 탑재체 운용계획서, 손해배상책임 부담계획서 등을 포함한 발사계획서를 과기정통부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안전성 분석 보고서는 발사 준비 사항, 의사소통 계획, 임무 종료 시점의 안전, 임무 중단 기준, 발사 중단 기준 등을 세부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발사장 안전 관리대책의 경우 육·해·공에 대한 경계 및 통제, 발사 준비 작업 중 안전관리, 발사 후 안전관리 등을 적어야 한다.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들 서류를 토대로 우주발사체 사용 목적과 안전, 재정 등을 검토해 발사를 허가한다.그러나 소관 부서인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국방부가 작년 말 발사한 우주발사체의 법적인 성격을 시험 두 달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의 취재가 시작되자 그제야 이달 내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나로호(KSLV-1), 누리호(KSLV-1) 등 대형 액체 로켓만 우주발사체 허가 대상으로 봤을 뿐 국방부의 고체 우주발사체는 취급해 본 적이 없다는 게 이유다.
‘과기정통부 산하 우주항공청’ 우려
과기정통부와 국방부의 이번 갈등은 우주개발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가 맡고 있지만 비상설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조승래 의원은 “국방부 자체 판단에 의해 과기정통부에 통보하지 않았고, 과기정통부는 지금에서야 해당 발사체에 대해 판단하고 있다는 것은 부처 간 이견 조율이 전혀 안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연내 설립 예정인 우주항공청을 언급하며 “지금도 우주 업무를 추진하는 데 부처 간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추후 과기정통부 소속 외청 형태의 우주항공청에서 부처 간 혼선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고 했다. 우주항공청을 밑에 두려는 과기정통부 한 곳을 제외한 모든 부처에서 이 같은 우려를 하고 있다.군사적 목적의 우주발사체에 대해서는 발사에 앞서 과기정통부와 협의를 구체적으로 하도록 하는 내용의 우주개발진흥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사적 목적의 발사체에 대한 보안 유지가 필요하지만 안전관리 측면에서 과기정통부와 협의 절차를 대통령령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원/김동현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