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KT&G 경영권 분쟁 '혼돈'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이상현의 FCP, '막강' ISS를 우군으로
"모든 안건에 ISS 지지는 이례적"
백복인 등 KT&G 경영진 국내 펀드 지지 '호소'
차석용 LG생건 부회장, KT&G 이사회로 '컴백' 유력
포스코, KT와 함께 ‘민영화 3인방’인 KT&G가 ‘경영권’을 둘러싼 격랑에 휩싸였다. ‘주인 없는 회사’의 경영을 오랫동안 도맡아 온 KT&G 공채 출신 경영진과 이들에 맞선 플래시라이트캐피탈매니지먼트(FCP) 등 행동주의 펀드와의 맞대결이 28일 주주총회에서 펼쳐진다.

"ISS 전건 찬성은 이례적", 승기 잡은 이상현의 행동주의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가 FCP의 주주 제안에 100% 찬성하는 위임 의견서를 지난 16일 내면서 FCP측이 일단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체 주주 중 절반 가량(의결권 주식 기준)을 차지하는 외국계 패시브 펀드 대부분이 ISS의 자문을 추종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금융가에선 “ISS가 행동주의 펀드의 10여 개 제안에 모두 찬성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동안 ISS는 칼 아이칸의 공세 등에 대해서도 KT&G 경영진 편을 들었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는 의견도 나온다. 올해로 임기 6년째인 백복인 사장이 이끄는 KT&G 경영진의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3월 28일의 주총은 올해로 민영화 21년째인 KT&G의 경영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는 중대 분수령이다.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는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막강한 견제 기구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KT&G 공채 출신 중심의 ‘순혈주의’ 경영의 종식을 의미한다. 수조 원 어치의 자사주를 소각하고, 배당을 ‘더블’로 올리는 등 주주 가치를 올리기 위한 파격적인 조치도 예상된다.무엇보다 이번 경영권 분쟁은 KT&G의 글로벌 경영 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상현 대표가 이끄는 FCP는 KT&G가 궐련형 전자담배인 ‘릴’을 앞세워 ‘담배업계의 테슬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FCP가 KT&G와 필립모리스(PMI)와의 전략적 동맹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홀로서기’를 하라는 것이다.

KT&G의 100% 자회사인 KGC인삼공사 역시 주총을 기점으로 전에 없던 변화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FCP측 추천 사외이사(감사위원 겸직) 중 한 명인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이 KT&G 이사회에 입성할 경우 인삼공사 인적분할을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ISS 보고서에서도 차 부회장은 “마케팅, M&A,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이해가 밝은 전문가”로 거론됐다.

백복인 사장 등 반격 준비할까, 국내 의결권 자문사 우군 확보 총력

현재 KT&G 주주 구성에 근거한 판세는 FCP측이 우세하다는 것이 중론이긴 하지만,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글래스루이스는 ISS와 달리 KT&G 현 경영진이 추천한 사외이사에 찬성 의견을 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영향력은 대략 8대2 혹은 7대3 정도로 평가된다”고 말했다.하버드 로스쿨 기업지배구조포럼(2021년 5월 27일 발표)에 따르면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시장 점유율은 86% vs 14%다. IB업계 관계자는 “ISS는 FCP와 KT&G의 각종 의제에 대해 긴밀히 논의하고 의견서를 낸 데 비해 글래스루이스는 FCP의 설명 제안을 거절할 정도로 KT&G 경영진에 우호적인 편”이라고 전했다.

백 사장 등 현 경영진은 의결권 있는 외국인 지분 약 50% 중 3할이 글래스루이스의 의견을 따를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지분 중 15%를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자사주 처분 등을 통해 확보한 사내 우호 지분(KT&G 재단, 기금, 우리사주조합 포함)도 약 11%에 달한다.

IB업계 관계자는 “백 사장 측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무언가를 모색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국내 패시브 펀드에 대한 의결권 대행 자문사를 설득하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3대 의결권 자문사로는 한국ESG기준원(KCGS), 한국ESG연구소(대신경제연구소 100% 자회사), 서스틴베스트가 꼽힌다.사측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글래스루이스의 사례를 감안했을 때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도 KT&G 경영진 편을 들 가능성이 높다. IB업계 관계자는 “삼성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 등 국내 펀드 운용사들이 ISS의 견해를 추종할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기존 관례를 감안하면 국내 의결권 자문사의 견해를 따른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3사도 주총 직전에 의견서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관건은 1,2대 주주인 국민연금(3월 15일 기준, 7.44%)과 IBK기업은행(6.93%)을 비롯해 약 20% 정도로 추정되는 소액 주주 표의 향방이다. IB업계 관계자는 “KT의 경영진 교체와 관련한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를 감안하면 KT&G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조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그렇다고 행동주의 펀드의 편을 들 것이냐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2018년 2대 주주인 IBK가 KT&G 경영진을 바꾸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당시 ‘중립’ 의견을 낸 바 있다. 중립은 주주 제안에 대한 반대로 간주한다. 이와 관련, 국민연금은 KT&G를 포함해 기금운용본부가 최대 주주인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맡기기로 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