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 빨려들어간다…블랙홀 같은 '80m 나무터널'
입력
수정
지면A29
이선아의 걷다가 예술2016년 서울 마곡동. 1만㎡에 달하는 허허벌판에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땅의 이곳저곳을 한참 거닐었다. 땅을 둘러싼 초록의 나무와 울긋불긋한 꽃들을 살폈다. 그로부터 6년 뒤. 남자가 다녀간 이곳에 가로세로 100m 길이의 거대한 건물이 들어섰다. 나무로 만들어진 실내는 한없이 따뜻한 느낌이었고, 통유리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빈 땅을 서성이던 그 남자는 일본 건축의 거장 안도 다다오(82)였다.
타원형 모양의 '튜브' 걷다보면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
故 구본무 LG 회장이 직접 나서
세계적 거장 다다오에 설계 의뢰
지난해 10월 개관한 LG아트센터 서울은 문화시설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던 마곡 등 강서지역에 들어선 첫 번째 대형 공연장이다. LG연암문화재단이 ‘국내에서 가장 좋은 공연을 올리겠다’는 야심으로 2500억원을 들여 지었다. 좋은 공연을 올리려면 좋은 공간이 있어야 하는 법. 고(故) 구본무 LG 회장이 직접 나서서 안도를 아트센터의 설계자로 낙점한 이유다.안도는 일본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건축가다. 전문적 교육을 받은 ‘엘리트 건축가’는 아니지만 참신한 작품을 연이어 선보이며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건축 거장의 작품이지만 LG아트센터의 겉모습은 평범하다 못해 단조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두 개가 붙어 있는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기는 어렵기만 하다.
건물의 진가는 안으로 들어가야 느낄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안으로 들어가면서부터 느낄 수 있다. 지상에서 LG아트센터를 진입할 때 터널처럼 생긴 ‘튜브’(사진)를 통과해야 한다. 참 이상하게 생긴 공간이다. 길이 80m의 타원형 모양 튜브를 걷다 보면 거대한 미로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층고(13.8m)와 폭(8.4m)의 공간감이 매우 커서 우주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튜브는 안도가 LG아트센터를 설계할 때 가장 공들인 공간이다. 이유는 연결성에 있다. 튜브는 연구·교육기관 LG디스커버리랩, 서울식물원 등을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예술과 과학, 자연을 잇는 다리 역할의 중추가 바로 튜브라는 공간이다.튜브엔 ‘건축물은 자연과 어우러져야 한다’는 안도의 신념도 반영돼 있다. 안도는 콘크리트로 튜브를 만들었지만 최대한 나무의 느낌이 나도록 했다. 튜브 바깥쪽을 만들 때는 콘크리트를 나무 거푸집에 담아 나무 질감이 잘 느껴지도록 했다. 안쪽에는 콘크리트 위에 나무를 얇게 깎은 무늬목 합판을 덧댔다. 그냥 콘크리트로 제작하는 것보다 몇 배나 힘든데도 안도는 이 방식을 고집했다. 문명의 상징인 콘크리트와 자연의 상징인 나무를 한 공간에 조화롭게 녹인 것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